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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인수위, 점령군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등록|2008.02.23 16:49 수정|2008.02.23 16:49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겠지만, 과거 군대에서는 지휘관이 바뀌어 새로 부임하게 되면 통상 전임자가 애써 쌓아올린 바람직한 업적들은 거의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앞 사람이 이룬 장점을 계승하여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지 않았다.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내용일수록 가능한 한 빨리 지워 없애버리려 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새롭고 기발한 일을 찾아서 추진함으로써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신임 지휘관의 주 관심은 '상급자의 눈에 띄어 마음에 들 수 있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이었다. 그러니 부대로 진입하는 도로를 새롭게 닦고 단장한다든지, 본부 주변의 나무를 다른 수종으로 바꾼다든지, 담을 보기 좋게 쌓아 윗사람이 방문할 때 기분 좋게 한다든지 등 거의가 겉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외형적인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신임 지휘관과 인수위

추운 겨울에 병사들이 마음 놓고 더운 물에 목욕할 수 있도록 어떻게 배려하여 운영하는지 고민하기보다는 목욕탕을 보기 좋게 잘 지어 보유하고 있다며 시설물만을 자랑하는 그런 식이었다.

전투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대원들의 사기 및 단결증진, 자부심 고취 등 내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이는 부하들의 애로사항과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지휘관들에겐 아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늘 부족했다. 당장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만이 숨 막히는 경쟁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정부권력의 인계인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파적 이익에 치우쳐, 전 정권에서 국민적 합의 하에 잘 추진해 온 좋은 정책과 제도까지도 건축물 부수듯이 일격에 허물어버리고 검증도 되지 않은 겉만 요란한 사업들을 내밀어 토목공사 하듯 밀어붙임으로써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단절케 하고 망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지휘관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부하들을 바라보듯이 국민들을 거짓 없는 진정한 마음으로 받들어야한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위함이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정부가 부와 권력을 한껏 쌓아 기득권을 누려온 사람들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여 앞 정부도 나름대로 성공한 업적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새 정부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무리 악의적으로 부정한다 하더라도 남북 간에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정착의 기틀을 마련한 '대북 포용정책'이야말로 민족 차원에서 성공한 사업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주의자들 구미만 맞추려 하나

미국의 국익에만 끌려 다니던 남북문제를 민족문제로 끌어들인 이 정책을 소홀히 하는 것은 민족자주성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공들여 쌓고 이어온 이 민족적 숙원 정책을 부정한다면 불신과 적대의식을 확대하여 전쟁도 불사하는 반통일 ‘신 식민국가’로 회귀하겠다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통일은 우리 국가, 우리 민족의 꿈이요 비전이다. '정권은 짧고 민족은 길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민족의 진로에 저해되는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인수위원회 활동을 보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새로 부임한 군 지휘관처럼 전임자가 세운 공적을 애써 부정하려 한 것 같다. 점령군이나 되는 것처럼 오만하다는 평도 있었는데 점령군이라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군에는 민사군정 업무를 전담하는 민사군정참모(G-5)와 민사군정부대가 편성되어 있다. 이들은 점령지에서 승전국 군대로 활동하지만, 피점령지 사람들의 자존심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배려하고 예의를 철저히 지킨다. 민심을 사로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국가경영은 원맨쇼가 가능한 제왕적인 CEO와 다르다. 새 정부는 민족적 자존심을 살리고 높이는 국가비전 수립과 ‘최대다수, 최대행복’의 거짓 없는 경제발전의 실천으로 지역과 계층에 편중되지 않고 국민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펼쳐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승자다운 겸손과 공평성이 있기를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표명렬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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