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헌병대의 금지조치에도 계속 이어온 대보름 행사
매년 정월 16일이면 볼 수 있는 용암리 강다리기
▲ 강다리기 모습남여 편으로 나누어 강다리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 이인옥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할 무렵 아름다운 고복저수지 주변에 위치한 용암리 마을을 찾았다. 이곳 마을에서 열리는 용암 강다리기 행사를 보기 위함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인가운데 취재열기도 대단하다.
▲ 제를 올리는 모습마을의 당산나무아래에서 마을어른신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 이인옥
언덕위에 자리한 당산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의 안녕을 지켜온 듯 신비롭게 마을을 굽어 살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례의식이 올려지고, 풍물패의 흥겨운 풍물소리가 용암리 마을에 울려 퍼진다. 신명나는 풍물패를 따라 마을사람들이 강다리기 행사장으로 이동한다.
▲ 풍물패의 모습제례의식이 끝나자 풍물패가 풍악으로 흥을 돋군다 ⓒ 이인옥
잠시 후, 화톳불이 훨훨 타오르는 강다리기 현장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남자, 여자 편으로 갈라 강다리기 행사가 펼쳐진다. 마을 이장님의 징소리에 따라 남과 여로 갈라진 팀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여러 갈래의 줄을 잡아당긴다. 이 강다리기는 여러 개의 줄이 연결되어 있는 색다른 줄다리기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 강다리기 하는 모습마을주민들이 강다리기 하는 모습 ⓒ 이인옥
▲ 강다리기하는 모습남녀 편으로 나누어 힘차게 강다리기를 하는 모습 ⓒ 이인옥
강다리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면, 왜란 중에 용암리에 쳐들어 온 왜군에 맞서 비암사 승병들이 항쟁을 하게 되는데, 왜군의 신식 무기와 수에 눌려 패하게 되어 많은 인명피해와 물적 피해를 보게 되었다. 당시 비암사 주변에서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많았지만 왜군이 우수한 도공을 모두 붙잡아 가는 바람에 도자기 생산도 중단되었다. 난을 피해 피신했던 주민들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마을에 정착하게 되면서 전란에 대비하여 힘을 기르자며 강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일제시대 동안 일본 헌병대가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꺼려해서 강다리를 중단시킨 일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동네에 불화가 겹치고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주민이 죽게 되고 마을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헌병대에 항의하여 계속 이 행사를 진행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마다 개최되는 강다리기 행사는 충남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민속행사로 1998년도 밀양에서 개최된 민속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으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민속예술 전승의 모범이 되고 있다.
▲ 뒷풀이 마당강다리기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이싸 ⓒ 이인옥
이곳은 연기군의 유일한 군립공원인 고복저수지가 위치한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연기군 유일의 강다리기 행사를 이웃마을서 열리는 정월대보름 축제와 연합하여 연기군 강다리 대보름축제의 형태로 만들어 체험마당으로 키워 가면 어떨까?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뜻 깊은 축제의 장이면 좋겠다.
▲ 제를 올린 마을어르신마을어르신이 강다리기를 마치고 흥겹게 어깨춤을 추고 있다.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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