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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아줌마 유령, 로자 리들

[서평] <수호유령이 내게로 왔어>를 읽고

등록|2008.02.26 22:04 수정|2008.02.26 22:04
어릴 때 심하게 약골이었던 나는 팔씨름이건 달리기건 몸으로 하는 시합에서 누굴 이겨본 적이 없다. 몸은 약해도 성깔은 있어서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고 맞붙긴 했다. 당연히 상대가 누가 됐든 머리카락을 뽑혀도 내가 더 뽑혔고 얼굴이며 등을 얻어맞아도 내가 훨씬 많이 맞았다. 실컷 얻어터지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또 한 차례 야단맞고 울고 있을라치면 참담하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억울함 서러움이 분노와 뒤섞여 밀려들었다.

안 당해 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면 나는 나를 지켜줄 존재, 이른바 수호천사를 공상 속에 등장시키곤 했다. 등장횟수로 치면 쌍절곤의 이소룡이나 벰 베라 베로 요괴남매, 감쪽같은 투명인간이 손가락 안에 꼽혔다. 물론 그 누구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말이다.

▲ ⓒ 풀빛

나스티, 수호유령을 만나다


내가 만나지 못했던 수호천사를 나스티라는 열한 살짜리 소녀는 쉽게 만난다. 수호천사를 꿈꾸는 사람이 대체로 그렇듯 나스티는 겁이 많고 소심하며 자신감이 없다. 단짝인 티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일들을 나스티는 엄두도 못 낸다. 개가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도 소름이 끼쳐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우고 나가면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다. 그런 나스티 앞에 수호유령 로자 리들이 불쑥 나타난다.

나스티의 이름을 가지고 짓궂게 놀리는 티나를 혼내주면서 나타났으니 수호천사인 게 분명한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무엇보다 로자 리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천사’가 아니라 귀신이나 다름없는 ‘유령’이다. 거기다 가진 능력도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영계의 존재라면 기본으로 다 할 것 같은 날아다니기를 못하고 몸을 줄이고 늘이는 게 시원찮아 열쇠구멍을 통과할 수도 없다. 평발이라서인지 밖으로 나가는 걸 귀찮아하고 흙더미에 깔려 2년 넘게 파묻혀 있었던 탓에 좁은 데 갇히는 걸 엄청 무서워한다.

그렇지만 약점투성이 유령인 로자 리들에게는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로자 리들은 누구보다 사려 깊고 다정하며 현명하다. 웃고 수다떨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나스티의 부모와도 금세 친해진다. 게다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힘닿는 데까지 부지런히 도와주고 잘못을 저지르는 이웃을 골려주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진짜 나쁜 사람에게는 비분강개하며 대적한다.

사실 로자가 유령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해 정권을 잡았던 1938년, 로자 리들은 남의 집 일을 마치고 오던 길에 나치돌격대가 마을의 시계공인 유대인 피쉴씨를 끌고 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나치돌격대원이 피쉴씨를 발로 차고 피쉴씨가 길바닥에 쓰러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 꼴을 구경하며 낄낄 웃는다. 분노와 노여움으로 속을 끓이던 로자 리들은 피쉴씨를 도와주러 길을 건너다 그만 전차에 치여 죽는다.

나스티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로자는 절실하게 뭔가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제대로 죽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편히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로자 리들이 유령이 된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였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로자는 결심했던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수호유령, 로자 리들 

로자가 등장하면서 나스티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선생님 말이면 옳건 그르건 상관하지 않고 따랐던 나스티는 자기 주장이 분명한 태도를 취한다. 미리 알려주지 않고 시험을 치는 영어선생님의 수업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를 묵인하는 반장을 바꿔야 한다고 아이들을 설득하고 나선다. 이에 반 아이들은 잘못된 방식을 두고보면 안된다는 나스티 편과 선생님 수업방식에 참견할 수 없다는 반장 토미 편으로 갈라지게 된다.

예고없는 영어시험은 이 동화에서 꽤 진지하고 비중있게 다뤄지는 사건인데 은근히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나스티의 태도가 마치 힘센 형을 두고 용기백배해서 설치는 아이 같기도 해서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자기편을 들어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로자는 토미 편 아이들을 대하는 나스티의 태도를 따끔하게 나무란다.

"나스티, 설마 너도 반 아이들 절반 이상이 멍청하고 바보 천치고 비열하다고 믿지 않겠지. 너와 몇몇 아이들만 얌전하고 친절할까. 네가 티나랑 하는 말을 들었다. 토미는 돼지야! 가브리엘레는 사팔뜨기야! 후버트는 아버지가 부자니까 밥맛이야! 요하나는 정신병자야! 잉게는 다리가 X자야! 너희들 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런 게 대체 예고 시험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로지 리들은 억울하다고 징징거리는 나스티의 잘못을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입바른 충고를 하지는 않는다. 섣불리 교훈을 주기보다는 나스티가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보게 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한다. 무조건 편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천사표가 아니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엄한 집안어른 같은 로자의 태도는 어쩌면 이 동화가 유대인 박해라는 암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 짐작된다.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193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으니 동화 속에서 로자 리들이 죽은 1938년도에는 네 살, 독일이 패망한 1945년도에는 열 살쯤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삶에 비춰 작품을 함부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 나치 통치하와 그 후의 현실을 극복해야 했던 오스트리아의 상황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전후 윤리적 잣대랄까 가치관의 혼란이 빚어졌을 당시 상황에서는 노동자 출신으로 나치하에서 상처를 입고도 열린 마음과 낙관의 미덕을 지닌 로자 리들은 삶의 지침 같은 것을 일러주기에 적합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동화가 끝나갈 즈음 로자 리들이 나스티의 집을 떠나 학교로 거취를 옮겨가는 것도 작가의 의도일 거라는 혐의가 짙다. 겁 많고 소심하며 약간은 이기적인 열한 살짜리 소녀 나스티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용기를 갖추자 로자 리들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곁으로 간다. 로자를 독점하고 싶어했던 나스티는 서운한 맘을 애써 접고 로자 리들을 떠나보낸다.

자신에게 수호유령이 필요한 거처럼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들을 수호해 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나스티의 어른스러운 태도는 자신에게 한정돼 있던 관심을 주변 친구들에게로 확장해 가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내 손을 잡아줄 수호유령이 나타났으면

로자 리들이 그렇게 반 아이들 모두의 수호유령이 되었으니 학교에 온통 난리가 날 법도 한데 그렇지는 않다. 수호유령은 시도 때도 없이 현실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자의 친구로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공상 속에 등장시켰던 수호친구가 이날 이때까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건 내가 또래에 비해 결코 약한 게 아니어서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들에 대한 내 기다림이 그리 절박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겠고.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 책 <수호유령이 내게로 왔어>에서 나스티의 엄마 아빠가 우연히 그 행운을 누렸듯 어른이 된 이제라도 수호친구 한 명쯤 있었으면 싶다. 어린아이였을 때처럼 어른이 된 지금도 내게는 사는 게 이해하기 어렵고 당혹스러운 퍼즐 같으니까. 그리고 도무지 마음에 갈피가 서지 않을 때도 많으니까. 그럴 때 상처 입은 사람을 다독일 줄 아는 뚱뚱한 아줌마 유령 로자 리들처럼 내 손을 잡아줄 그런 든든하고 푸근하고 현명한 수호유령이 나타났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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