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원할 수 있지만, 파헤쳐진 강은 불가능하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참가기] 5년의 권력욕과 맞바꿀 수 없는 강과 문화재들
▲ 거룩한 순례남한강과 만나는 섬강을 따라 걷는다. 누가 저리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산하를 없애려 하는가. ⓒ 최종수
'강을 섬기는 사람들 종교인 100일 순례'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도 여주로 가는 중부고속도로에서 17대 대통령 취임식 생방송을 청취했다.
▲ 노식수녀님들과 시민과 아이, 강을 섬기는 성직자들이 노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 최종수
"미래 세대에게 환경재앙을 물려줄 순 없지 않는가"
▲ 이등병의 편지 작곡가인 가수 김현성 씨, 맑은 남한강과 살고 싶어 여주로 이사했는데..., ⓒ 최종수
"우리 국민들이 크게 당하지 않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임기 5년 동안 건설재벌들이 곶감 빼먹는 사이 일자리는 조금 늘 것이다. 그러나 강이 죽고 혈세가 낭비될 것이다. 뱀보다 느린 운하의 허구와 참상이 드러나 중단될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환경재앙을 물려줄 순 없지 않는가."
순례단 지원팀에서 만든 구수하고 따끈한 숭늉을 마시고 바위늪구비를 향하는 오후 순례를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어두웠다.
첫 번째 통과한 문은 영동고속도로 여주대교였다. 교각 밑이 2m 이상 깊이 파헤쳐진 구 대교와 새 대교가 나란히 서 있었다. '튼튼하게 건설되었을 고속도로용 대교가 왜 무용지물이 되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항진 집행위원장(여주환경운동연합)의 설명을 들어보자.
▲ 영동대교지원팀 명호 처장이 손을 들어보지만 다리 밑이 닫지 않는다. 골재 채취만으로 P10이라는 상판을 보강했지만 폐쇄해야만 했다. 운하의 현주소이다. ⓒ 최종수
80년부터 95년까지 무리한 골재채취로 인해 하상의 퇴적물과 지형이 변형되어 교각의 하부구조가 드러나 침하되었다. 골재채취로 최소 50cm에서 최대 2m가량이 낮아졌으며, 교각과 교각 사이가 흔들려 상판 하부를 보강하였지만, 결국 안전성 문제로 폐쇄되었다. 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전 지역에서 모래 준설을 통해 공사비의 절반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멀쩡하게 서 있을 다리가 몇 개나 될까. 수중폭파를 하는 하상굴착이 불가피한데 한강과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115개 교량 전체의 안전성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준설이나 하상굴착을 하지 않았는데도 성수대교가 붕괴되지 않았는가? 대운하는 제2 제3을 넘어 제10의 성수대교를 만들 것이다."
순례단은 남한강의 본류와 주변의 지류에서 밀려온 토사들이 퇴적되어 형성된 중하류 바위늪구비 습지를 걸었다. 맑은 강물을 따라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신에게로 향하는 영원한 순례의 길을 누가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옷에 닿는 순간 이슬로 맺히는 춘설을 맞으며 강바람을 따라 걷는 순례는 감탄사 그 자체였다. 아빠와 딸이 손잡고 거니는 길에 스님과 수녀, 목사와 신부들이 동행하는 순례는 거룩한 전례였다. 신에게로 향하는 영원한 순례의 길을 누가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더더욱 가당치 않다.
수녀와 손잡고 걸어가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와 30분 걷고 10분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른보다도 사리판단이 명쾌한 고백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명박 할아버지는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닙니다. 보통사람입니다. 대통령도 상식이 통하는 보통사람이죠. 그런데 보통 사람이 어떻게 강을 파괴하고 죽이는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착한 사람은 생명을 죽이는 운하를 찬성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빠랑 오빠랑 대운하 순례를 하고 있는 거예요."
▲ 아이와 시인초등학교 1학년 김여진, 여주로 귀농한 홍일선 시인 ⓒ 최종수
"이곳은 경기도와 충청도와 강원도가 만나는 곳이다. 귀농한 지 3년이 되었다. 와서 보니 강변지역 대부분의 땅이 외지 투기꾼들의 것이었다. 이곳은 물류거점지역이다. 이사한 지 3년이 되었지만 강을 따라 갈대숲을 처음 걸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습지와 강을 파헤쳐서 운하를 건설한다 생각하니 인간이 무섭다.
서울시민들의 식수인 상수원 보호구역이 풀리면 이곳에 투기꾼들이 몰리게 되고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될 텐데, 주민들은 '개발이 되면 고향을 정말 떠나야 합니까?'라고 묻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건설재벌과 투기꾼들의 잔치에 불과한 운하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
민족의 젖줄인 남한강은 보존가치가 높은 지류와 다양한 습지가 분포되어 있다. 특히 바위늪구비 습지는 시급한 보전대책이 요구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이 선정했다. 강을 따라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옹기종기 살고, 습지에는 환삼덩굴과 갈대 같은 여러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꾀꼬리와 물닭은 물론 천연기념물인 매와 원앙들도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베푸는 사랑보다 탐욕스런 돈을 숭배하도록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
▲ 순례남한강을 순례하고 있는 성직자들과 시민과 어린이들 ⓒ 최종수
"올해가 60인데,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서 걷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픈 다리로 걸으며 알았다. 그리고 60년 동안 자연과 얼마나 조화롭게 살아왔는가. 성직의 길을 가는 구도자로서 신도들에게 자연과 함께 사는 행복한 삶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참회를 하게 되었다. 올바른 불자들이 많았다면 대운하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자비의 공생보다는 성장을, 베푸는 사랑보다 탐욕스런 돈을 숭배하도록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장로이지 않는가. 순례가 참회인 이유다."
오후 4시인데 어둑어둑하다. 눈송이는 하염없이 내려 나무와 풀잎에 앉아 꽃을 피우고 있다. 강을 따라 걷는 길이 어느새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처럼 오늘도 반만년 유구한 역사가 강과 마을을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 포옹엄마 김이수 씨와 초등학교 1학년 김미르. ⓒ 최종수
질퍽질퍽한 마을 골목을 따라 16Km 순례 일정을 마치는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마중 나온 엄마 품에 안겨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엄마, 힘들어 죽겠어. 대통령 아저씨가 운하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잖아. 집에서 책도 보고 TV도 보고 동생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왜 운하를 추진하는 거야. 어른들은 착한데 물고기를 죽이는 나쁜 운하를 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하늘과 땅, 강과 바람이 열어준 순례의 마무리 기도를 바쳤다. 자동차가 주차된 공원으로 갔다.
반만년의 역사·문화, 억만년의 미래 세대 희망 수장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 천년사찰 천년고찰 신륵사가 대운하에 잠긴다. 역사와 문화를 수장시키는 민족은 없다. ⓒ 최종수
홍수 때 일부가 물에 잠기는 천 년의 고찰 신륵사, 연중 평균수심 6~9m 운하의 물 때문에 조금만 비가 와도 범람해서 어김없이 물에 잠길 것이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었다. 실용을 첫 번째 국정 과제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 개방이 화재원인의 큰 축이었다. 대통령 말대로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파헤쳐진 강은 복원이 불가능하며 천연기념물들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반만년 동안 유유히 흘러온 강과 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의 보금자리로서 홍수를 막아주었다. 또한 인간이 오염시킨 물을 정화시켜주고 인간과 동식물에게 식량을 제공하며 지구온난화를 막아주는 파수꾼이었다.
대운하로 파괴될 강과 습지, 사찰과 문화재들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이지 않는가. 대통령 5년 임기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반만년의 역사와 문화, 억만년의 미래 세대의 희망을 수장시킬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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