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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5000명의 진실

[取중眞담] 청와대 출입기자 눈에 비친 새정부의 장관 인선 파동

등록|2008.02.28 10:24 수정|2008.02.28 13:20

"몇 명이나 봤어요?"

"한 5000명 봤지. 장차관 (후보자들) 보는데... 이제는 사람 이름만 봐도 지겨워요."

지난 1일,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내정, 발표하던 날이다. 새 정부 장차관 후보자 등의 인사 검증 실무를 담당했던 당시 박영준 당선자 비서실 총괄팀장이 인수위 기자실에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 기용됐다. 그 만큼 이명박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측근이다. 

'인사'라는 중책을 맡다보니, 기자들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던 터라, 그는 금세 기자들로 둘러싸였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당시 취재수첩을 꺼내 들쳐보니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다.

- 인선을 하면서 지역 안배 등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지역, 남녀 등비, 연령, 학교 등을 따지고 보니까, 정말 힘들더라. 그렇게 하다가 한 명만 바뀌어도 전체(구도)가 다 무너진다. 능력과 실력 위주로 봤다."

- 이명박 당선인의 (고려대) 동문이 혜택 보나?
"그 학교가 피해를 많이 볼 거다. 하하"

- 여성 장관은 몇 명이나 되나?
"대한민국에 일반직 공무원 중 4급(서기관) 이상 여성이 39명밖에 없다. 지금부터 (기자들) 부인 (공무원) 공부 시키면 본인이 장관 되는 것보다 빠를 것이다. 하하. 여성을 빨리 키워야 한다."

- 이명박 당선인이 직접 면접한 후보자는 몇 명이나 되나?
"많이 본 것 같다. 각계에 그야말로 최고 전문가들이니까... 면접을 보는 방식은 좋은 것 같다. 게다가 자기(대통령)와 호흡을 맞출 사람들 아니냐."

"후보자 인생 전체 검증은 국가적 인재 낭비"

특히 박영준 비서관은 인재 풀에 대한 한계를 토로했다. 그야말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데, 이런 저런 기준을 들이대 탈락시키고 나니, 남는 사람이 없더라는 것이다.

"70-80년대 살면서 '내가 장관 하겠다'고 생각 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아무도 없다. 사람이 살다가 개과천선 할 수도 있지 않나. 망나니로 살다가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번에 이런 저런 기준으로 다 차단시키니까, 그야말로 무한검증이란 것을 하니까.... (어려웠다.) 지금부터 한 10년 전까지 만으로 (검증 기간을) 한정해야한다. (후보자의) 인생 전체를 다 (검증해) 본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인재 낭비다. 국가적 손실이다."

박영준 비서관은 검증 과정에서 부적절한 인사를 배제하는 방식에 대해 "자료를 대충 확인해 보면 다 드러난다"면서 "꼭 필요할 때는 직접 불러서 다이렉트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5000여명에 달하는 각료 후보군 가운데 검증을 거쳐 90명을 추려냈고, 이들로부터 개인정보 열람동의서를 받아 당사자는 물론 친인척의 과거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의혹 등까지 정밀 검증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열람에 동의하지 않은 후보들도 있었다는 것이 박 비서관의 전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해는 말라"며 "본인이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나중에 만난 당선인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모부처 장관 후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한 인사를 언급하며 "개인정보를 열람할 경우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아예 총선으로 진로를 바꾼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 90명 중에서도 불법적인 요소가 드러난 상당수 후보자들이 탈락했다는 게 당시 인수위측 설명이었다.

이러한 정황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연결되면서 '신뢰감'을 심어줬다. 경부운하, 영어 공교육 강화 등 '불도저식 리더십'으로 인해 논란이 됐던 사안이 없지 않았지만, 인사 스타일만큼은 '거북이'라고 측근들은 입을 모았다.

이 대통령의 철학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고 정평이 나 있는 류우익 실장은 당시 내정자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선인은 최고의 인재를 발탁하기 위해서 대단히 애쓰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선이 늦어지는 것이 기자들이나, 국민들께는 답답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빨리 속전속결로 해서 문제가 있는 인선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충분히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일을 잘 하고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일꾼을 뽑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13개 부처 및 국무위원 2명에 대한 조각명단을 발표 하기전 국무위원 후보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고소영' 비서에 '강부자' 내각으로 되살아난 오만

열흘 뒤, 이명박 대통령이 이른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으로 불리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내정자를 발표 할 때만해도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능력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비록 '국민정서법'를 무시한 편향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어차피 자신의 수족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니...'라고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내정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편향 인사를 넘어 논문 표절 시비까지 낳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논문 표절 건으로 사퇴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떠올랐다. 불길한 조짐이 청와대를 감쌌다. 다시 며칠 뒤 발표된 '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 내각 후보자들의 면면이 알려지면서 나쁜 조짐은 현실화됐다. 본인은 물론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부터 자녀 이중국적까지... 그야말로 한국 사회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는 비리라는 비리는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른바 '비리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과연 이명박 인사팀은 5000명에 대한 검증을 어떻게 한 것일까? 그 중에서 추리고 추려낸 2%는 무엇인가? '충분히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한 인선이 고작 이 정도인가? 무엇보다 정밀 검증까지 해가면서 뽑아낸 결과가 이 정도라면, 당초 5000명의 후보군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서울에서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김포에 농지를 구입하고, 강원도 평창에 아파트를 사뒀다면 한 번이라도 의심을 해봐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명박 인사팀은 상식 이하의 검증을 하고 말았다.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가 대통령 취임식 전날 전격 사퇴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각료 인사가 부적절했다는 것을 입증했고, 야당 강경론의 원동력이 됐다. 실용주의를 기치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이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박미석 내정자의 인사까지 강행하며 사태 수습의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문제가 제기된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대해 야당이 보이콧을 선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29일 새 각료들과 국무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단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청와대에서는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애초부터 국회 인사청문회의 의견은 염두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수위 두 달간 보여줬던 '오만'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5년... 기자의 취재수첩엔 무엇이 적혀있을까?

이 대통령은 인사에서마저 토목기업식 리더십을 발휘하고 말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 그리고 국민10명 중 7명이 문제 장관 후보자의 교체를 말했지만, 이 대통령의 귀에까지 전달되기에는 청와대의 벽이 너무 높았다. 급기야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도 받기 전에 또 다시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말이 좋아 자진사퇴지, 뒤늦은 경질이다.

야심차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입성 3일만에 인사 검증 시스템의 바닥을 드러냈다. 게다가 문제 장관들에 대한 인사 타이밍을 놓치면서 '국정차질'과 '여론의 비판'이란 이중고를 자초했다. 당장 야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필귀정'이라는 조롱이 터져나왔다. 정권출범 초기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판했지만,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만의 책임론으로 몰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되돌려보면 당초 5000명의 후보군이라는 것이 이토록 취약했던 데에는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신보수주의 정권이 탄생했지만, '부패'한 보수는 변하지 않았다. '부패한 보수'라는 고정틀 안에서 인사를 찾으려니,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반, 논문 표절 반'인 셈이다.

검증 기한을 10년 전까지만으로 한정하겠다는 '잔머리'를 굴릴 것이 아니라 무한검증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사들을 찾아야 한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 역시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의 몫이다.

때문에 이번 각료 인사 파동이 당장 4·9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보다, 향후 이명박 정부 5년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하고 있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는 이 대통령의 말을 이젠 어떤 근거로 신뢰할 수 있을까? 앞으로 5년 동안 기자의 취재수첩에 어떤 내용들이 채워질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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