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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정말 전차경주 광(狂)이었을까?

조각과 전차경주장 도시 아프로디시아스

등록|2008.03.01 09:54 수정|2008.03.01 09:58
미의 여신이 사는 도시의 기념문

미녀는 무엇을 좋아할까? 잘 모른다. 미의 신 아프로디테는 무엇을 좋아할까? 아마도 전차경주인 것 같다. 터키 내륙지방에 있는 로마의 도시 아프로디시아스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아프로디테를 주신으로 모신 도시다. 이 도시에 전차경주장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아프로디시아스의 테트라피리온도시 입구의 기념문이다. 화려하고 섬세한 부조가 가득찬 2중문이다. ⓒ 신병철


아프로디시아스의 현존하는 유적의 백미는 도시 입구의 기념문인 테트라피리온이다. 눈이 부신다. 크게 기념문은 두 개의 문으로 나뉜다. 앞문이 조금 크고 뒷문이 조금 작다. 앞에 4개의 기둥, 뒤에 4개의 기둥, 모두 8개의 기둥 위에 삼각형의 박공을 올렸다.

앞문의 중앙의 반을 아치로 구성했고, 뒷면은 그냥 평문이다. 기둥들도 빗금무늬 직선무늬를 교차로 세워 단조로움을 피했다. 처마 밑, 아치 아래 부분, 박공 전면, 모두 정교한 무늬를 새겨 넣었다. 미의 신 아프로디테가 사는 신전 입구의 문인만큼 그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

테트라피리온 장식앞문 박공을 온갖 무늬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몄다. ⓒ 신병철


아프로디시아스는 옥타비아누스, 즉 로마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관련이 깊은 도시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세기에 아프로디시아스를 장악하였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로마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기원 후 3,4세기 때는 이 지역의 수도가 될 정도로 성장했으나, 비잔틴 시기에 점차 쇠약해졌다가 12세기에 들어와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조일루스 상가이우스 율리우스 조일루스는 옥타비아누스의 노예였으나, 해방되어 권력을 쥔 부자가 되었다. 고향 아프로디시아스로 돌아와 도시 건설에 앞장섰다. 왼쪽이 조일루스다. ⓒ 신병철


아우구스투스는 조일루스라는 노예를 해방시켜주었는데, 그가 이 지역 출신이었단다. 조일루스는 아우구스투스의 후광 아래 권력을 가진 부자가 되어 이 지역으로 돌아와 수많은 건축물을 지었다고 한다. 입구의 박물관에는 조일루스의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계획적인 도시 아프로디시아스

아프로디시아스는 대단히 계획적인 도시였다. 네모 반듯하게 도시가 짜여져 있었다고 한다. 아고라 지역은 다른 도시처럼 유적이 거의 없다. 원형극장과 목욕탕이 가까이 붙어 있어 목욕과 공연을 함께 즐긴 것을 알 수 있다. 대규모 전차 경주장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드라마를 공연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원형극장과 오데온위가 원형극장이고 아래가 오데온이다. 형태는 비슷하나 규모에 큰 차이가 난다. 오데온은 소규모 공연이나 귀족회의를 열었는데,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 신병철


아우구스투스 재위 기간인 기원전 39년에서 27년 사이에 만든 원형극장은 수용 인원이 7000명 정도 되는 로마시대 극장으로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이 원형극장과 모습은 비슷하면서도 규모가 훨씬 적은 건물로 오데온이 있다. 이것은 지붕이 덮인 실내극장으로 소규모 공연이나 귀족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 신전기둥이 제법 많이 남아 있다. 신전 안에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상이 있었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기둥을 연결하고 지붕을 올려 신전을 세워봐야 한다. ⓒ 신병철


아프로디시아스의 가장 중요한 건물은 뭐니 뭐니 해도 아프로디테 신전이다. 아나톨리아 지역은 예로부터 대모신 숭배가 강했고, 그래서 남성 제우스신보다 여성이면서 미의 대명사인 아프로디테를 신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신전도 허물어져 지금은 기둥과 자리만 남아 있을 뿐이다.

폐허가 된 신전을 그대로만 보는 것은 제대로 된 여행객의 자세가 아니다. 몇 남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없어진 기둥들을 상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도리를 걸치고 박공을 세워 지붕을 올려 본다. 앞에서 본 테트라피리온의 장식을 활용해서 박공에 온갖 부조를 새겨 넣는다. 직사각형의 거대한 신전의 끝을 현존하는 둥근 건물과 연결한다. 신전 내부에 아름답기 짝이 없는 아프로디테 신상을 적당한 높이의 단 위에 세운다. 천정의 모습은 어떨까?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아프로디테 경염을 벌인다면

미로의 비너스와 프레게의 비너스미로의 비너스가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로 인정받고 있다. 프레게의 비너스는 조금 수준이 떨어진다. ⓒ 신병철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신전의 전면에 세워야 할 아프로디테, 로마말로 비너스는 어떻게 생겨야 할까? 미의 여신인 만큼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어떤 용모에 어떤 몸매여야 할까? 김태희 용모에 현영의 몸매? 답은 터키의 박물관에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도 비너스 하면 파리 루부르 박물관의 미로의 비너스가 떠오른다. 8등신의 몸매에 흘러내리는 하의를 손과 팔이 없어져 보이지는 않지만 손으로 잡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에도 하반신의 몸매가 거의 다 드러났다. 균형 잡힌 몸매, 드러난 하반신과 주름잡힌 하의, 그 속의 하체가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아프로디시아스의 아프로디테 신상이 이 정도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아프로디시아스의 박물관에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신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에게해 쪽의 해변 도시였던 프레게에서 아프로디테 신상이 몇 개 발굴되었다. 사진의 2세기 로마 비너스는 사실 별로다. 머리가 너무 커서 균형이 일단 문제가 있다. 하의를 완전히 벗어 더 에로틱해져야 할 텐데 느낌은 그렇지 못하다. 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다.

프레게의 비너스와 에페스의 아프로디테왼쪽은 프레게에서 나온 비너스이고, 오른쪽은 에페스에서 나온 아프로디테이다. 오른쪽은 기원전 1세기때의 것이라 비너스보다는 아프로디테로 이름붙이는 것이 옳다. 어떤 비너스가 신전에 모셔졌을까? ⓒ 신병철


또 하나의 2세기 경 프레게에서 만든 비너스는 미로의 비너스에 필적할 만하다. 머리가 없어져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몸매 전체가 상당히 균형이 잡혔다. 양 손으로 방패 같은 둥근 물체를 잡고 있다. 그래서 흘러내리는 하의를 잡을 수 없었나 보다. 하의가 골반 아래까지 흘러내려 아찔한 모습이다.

옷이 왼쪽으로 치우치면서 오른쪽 다리 무릎이 드러났다. 아래 부분 옷 주름의 거친 표현과 위쪽의 부드럽고 매끈한 몸매의 표현이 조화를 이룬다. 몸매의 부드러운 곡선, 적당한 크기의 가슴과 그 곡선, 그리고 왼쪽의 둥근 방패가 한없이 우아함을 더한다.

기원전 1세기에 만든 것으로 알려진 에페스 박물관의 아프로디테상도 아름답기로는 미로의 비너스 못지않다. 머리와 팔 다리 모두 떨어져 나가 마치 토루소처럼 되어 안타까움의 도를 더하지만, 흘러내리는 하의와 드러난 여인의 하체 그리고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가슴은 보고 있는 나 같은 남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미로의 비너스는 너무 멀고, 프레게는 가까우나 시기가 맞지 않으니, 시기도 맞고 거리도 별로 떨어지지 않은 이 아프로디테상을 아프로디시아스의 신전에 있었을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그냥 내 맘이다.

시끌벅적한 시장의 소리 들리나요?

아프로디시아스의 아고라아고라는 광장으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시장과 정치 연설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이었다. 저 멀리 지금의 집들이 보여 과거와 현재의 대비가 형성되고 있다. ⓒ 신병철


실질적으로 로마의 도시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 것은 광장인 아고라였을 것이다. 상점이 즐비하고 화장실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목욕탕과 극장이 있는 생활의 중심이 아고라였을 것이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아고라도 여럿 생겨났다.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소규모 전차경주장 모양이 땅에 파묻혀 있기도 하다.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아프로디시아스의 아고라도 다른 아고라와 마찬가지로 광장의 기둥만 몇 남아 있고 폐허가 되었다. 이 폐허 속에서 2000년 전 로마 도시인들의 씨끌벅적한 소리, 노예 파는 시장의 모습, 권력자와 군인들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들리고 보인다면 당신은 최고의 문화인이고 예술가라고 단연코 나는 맹세한다.

벤허가 달린 전차경주장의 모습

아프로디시아스의 전차경주장가장 완벽히 남은 전차경주장이다. 로마의 나보나 광장의 경주장은 극히 흔적만 남았다. 길이가 축구장 3배 가까이 된다. ⓒ 신병철


아프로디시아스에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엄청난 규모의 완전한 전차경주장이 남아 있어 아름다운 조각만큼이나 유명하다.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장을 생각해보면 된다. 길이가 300m가 넘으니 지금 축구장의 3배에 가깝다. 넓이는 축구장 정도 되어 보인다.

경주장을 둘러싸고 스탠드가 위로 마련되었으니 수용인원도 현재의 웬만한 축구경기장보다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아프로디시아스 인구가 많아야 1만5000명 정도 되었다는데, 그렇다면 전차 경주하는 날이면 도시인 모두가 여기에 모였단 말인가? 제국 로마 도시인들의 삶이 느껴진다.

아! 제국주의

귀족들과 시민들이 약소국을 침략하여 노예와 재물을 약탈해서 흥청망청 살았을 당시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신전을 지어놓고, 그 안에 모셔놓은 최고의 미의 여신을 빙자해가면서 약한 민족을 장악하고 약탈한 로마 제국주의를 여기서 본다. 저런 로마의 모습이 19세기 말에 다시 나타났으니, 그래서 근대 열강의 침략적 약탈 행위를 우리는 로마제국에서 끌어와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테트라피리온참 아름답다. 왜 어떻게 아름답냐고? 그냥 멋있다. 저렇게 옛날의 모습을 그래도 간직하고 있고,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어 주었으니까. ⓒ 신병철


아나톨리아 내륙지방 파묵칼레에서 에게해 연안의 에페스로 내려오다 1시간 가까이 옆길로 들어가야 나타나는 아프로디시아스는 그냥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전차경주장에서 입구로 내려오니 테트라피리온이 다시 반긴다. 폐허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나타내고 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정말로 전차경주를 좋아했을까? 하기야 아름다운 여인일수록 용감하고 돈 많고 힘 좋은 남자를 좋아한다니, 미의 여신도 저 험악한 전차 경주에서 우승하고 나면 엄청난 부자가 되는 남자를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영화 <벤허>에서 벤허는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 전차 경주에서 우승했다. 미의 여신, 미인도 돈 많고 힘 좋은 남자가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 노력하는 정말 멋쟁이 남자를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이 이 황량한 고대도시 아프로디시아스에서 막 일어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1월에 터키지방을 여행하고 그 감동을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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