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김정일에 거부감 드러낸 부시... 왜 이러나

[정욱식 칼럼] 멀어져가는 북미 정상회담

등록|2008.02.29 17:30 수정|2008.02.29 17:30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공식적인 자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오랜만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언급했다. 그러나 발언의 내용은 북미관계 개선에 썩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2월 28일 백악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김정일과 개인적인 유대를 맺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관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북-미관계의 질적 전환을 원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목표와는 상충되는 것이다.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북한의 대미 외교전략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볼 때, 부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계속 갖고 있다면, '부시의 미국'에 핵폐기라는 선물까지 주면서 관계 정상화에 나설 동기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력한 대선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버럭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 이란, 쿠바, 시리아 등 적대국가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에 나설 뜻을 밝힌 상황이다. "김정일과는 개인적인 유대를 맺지 않겠다"는 부시 대통령과의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김 위원장이 부시의 임기 내에 대타협을 시도하기보다는 미국 대선을 관망하면서 차기 정부와 협상을 할 가능성이 언급되는 이유이다.

부시의 발언 '국내용'인가?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은 왜 느닷없이 북-미관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일까? 발언의 맥락을 보면, 점차 열기가 더해지고 있는 대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부시는 "당신의 후임자에게 러시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은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미국이 러시아와 유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부시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유화적으로 대한 것이 러시아의 위협을 키운 것이 아니냐는 반박성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해 부시는 러시아 정상과의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불쑥 김정일을 거론했다. 아마도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러시아 지도자와의 개인적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익을 위해서는 아무하고나 유대를 맺어야 하느냐'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바마가 미국의 이익과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재자와의 대화도 주저해선 안된다고 주장한 것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의구심을 일축하고 자신은 아무하고나 유대를 맺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일을 그 사례로 거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와 같이 미국의 국익에 필수적인 나라의 지도자와는 "당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유대를 맺어야 하지만, 이러한 외교정책이 북한에까지 적용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부시 대통령이 적대국 지도자와 대화하는 것을 '포용'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부분이다. 이 부분은 미국 대통령이 쿠바의 새로운 지도자 라울과의 대화에 나설 것인가의 여부에 대한 부시의 답변에서 드러났다.

한 기자가 오바마의 발언으로 미국 대선에서 쟁점으로 부상한 '독재자와의 대화'에 대한 견해를 묻자, 부시는 독재자와 대화하는 것(talking)은 포용하는 것(embracing)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독재자와 대화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그를 인정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대화가 곧 포용이라는 것이다.

부시의 발언, 부메랑 될라

이처럼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잣대에 따라 다른 나라 지도자에 대해 호불호를 갖는 것은 자신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것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지도자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과 국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은 스스로 임기 내에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말해왔다. 어느 시점이 좋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이 필수적이다. 북한이 핵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하면서 대외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없이 그 길로 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앞으로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외교적 자충수'라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 필요해진 시점에, "개인적 유대를 맺지 않겠다"거나 대화를 포용과 동일시 한 발언이 정상회담 반대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또 있다.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김 위원장이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북미 정상회담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부시의 임기 내에 대타협에 나설 동기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만약 김 위원장이 이런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큰 오판이 될 수 있다. 2008년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도 안갯속에 있고, 설사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북한에 반드시 유리한 것만도 아니다. 또한 북한이 1년여 동안 허송세월을 보낼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김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비핵화, 평화체제,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성실히 밟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북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부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업적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 부시 대통령 역시 "개인적인 유대"가 아니더라도 업적을 위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게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하지 않으면 본인에게도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