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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 잃고 4년제에 잠식되는 전문대의 현실... 가야할 방향은?

등록|2008.03.03 16:28 수정|2008.03.03 16:48

▲ 서울의 한 전문대학 홍보물. ⓒ 김혜민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교수, 연구하고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교육법 제47조에 명시된 전문대학의 설립 목적이다. 학문을 탐구하는 4년제 대학과 달리 전문대는 직업 훈련을 위주로 하는 전문적인 '직업교육기관'이다. 명지전문대 정태욱 취업마케팅과 과장은 "전문대는 4년제 대학과 병렬적·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완성된 교육기관"이라며 "단기간에 실질적인 현장 기술을 습득하여 일선 산업기관으로 바로 진출하는 중견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전문대학의 교육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2류 인력'이라는 낙인과 취업시장에서의 차별만이 존재할 뿐 '직업교육기관'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극히 드물다. 청년실업이 극심한 상황에서 4년제 대학도 적극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전문대학이 기존에 차지하던 차별화된 직업교육마저 잠식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년제 대학과 병립하며 차별화된 직업 교육을 한다"는 본래의 취지가 퇴색하고, 정체성의 위기마저 겪고 있다. 고등교육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은 기능과 목적이 다른데도 학벌주의 정서에 매몰돼 전문대에 대한 정책적 차별이 심화되면서 직업교육의 중심축인 전문대가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화려한 광고와 취업률... 그 뒤에는

"전문대 정규직 취업률 4년제 추월"
"취업률 최우수대학, 전국 취업률 1위 대학, 취업보증수표!"

수많은 전문대학들이 취업률 순위를 앞다투어 내밀며,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레이싱모델과' '애견미용과' 등 특성화된 학과를 개설하여, 취업률 90%의 졸업생을 배출한다는 전문대학 광고도 쉽게 눈에 띈다.

신입생들은 간판보다 안정적인 취업을 목표로 전문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실제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2007년도 전문대학의 취업률은 85.2%로 2004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4년제 대학 취업률의 68%와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이를 반영하는 듯 서울권 전문대학의 수능 커트라인은 이미 지방 4년제 대학을 뛰어넘었다. 2008년 수능 전 과목 6등급을 받은 김모군은 지방 4년제 대학과 수도권 전문대학에 합격하였지만, 서울 내 전문대학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또한 청년실업이 가속화되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는 '학력 U턴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유망학과에서 전문 기술을 익혀 취업난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전문대학에 몰리고 있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TV를 통해 자주 들린다.

그러나 전문대의 현실은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과 달랐다. 학령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4년제 대학과 차별화된 '직업교육기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 못한 채, 전국 150여개의 전문대학은 백척간두의 위기 아래 놓여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입학 후 동기들 뿔뿔이 흩어져... "신분의 벽 느낀다"

▲ 4명의 친구들이 함께 입학한 서울의 한 전문대 풍경. ⓒ 김혜민


지난 2002년 서울의 한 전문대학 컴퓨터과에 입학한 4명의 학생들. 이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이 학생들이 전문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취업이 잘 된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받는 전문대학이 더 실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입학 후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전졸'이라는 꼬리표가 그들의 등급을 매겼고,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원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또한 교육 커리큘럼도 전문화 특성화된 과정이 아니라 4년제 대학 과정과 비슷한 과목을 2년, 혹은 3년 연한으로 줄여서 배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무 능력을 배양하고, 여러 직업 기술을 연마하여 4년제 대학생들이 가질 수 없는 전문화된 직무 능력을 가지고 취업전선에 나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차별화된 교육은 없었고, 사회는 그들을 차별했다. 그리하여 6년이 지난 2008년 2월. 이들은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4명의 친구 중 한 명인 S씨는 군대를 제대한 후 다시 입시에 도전하여 타 4년제 대학으로 새로 입학을 했다. 그리고 L씨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학점은행제를 통하여 단기간에 학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은 서울의 한 편입학원에서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L씨는 "제대 후 용인에 있는 IT업체에서 약 1년간 일을 했는데, 아무리 능력이 좋고 일을 잘해도 '전문대'라는 학력 때문에 한계를 느꼈다"면서 "꿈인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실무 교육을 하는 전문대 컴퓨터과에 입학했지만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학교 선택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며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위해 편입학에 도전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한 친구인 J씨는 명목상으로만 학교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을 뿐,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유일하게 학교에 남아있는 C씨는 며칠 전 졸업을 했지만 원하는 취업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C씨는 "재학 중에 여러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 '전문대생'이라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례가 허다했다"면서 "원하는 기업의 인턴사원·홍보 대사, 그리고 해외 연수 등의 기회도 4년제 대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허탈해 했다.

덧붙여 "지금도 취업 자리를 찾고 있지만 고민이 많다, 자격증·어학능력 등은 밀리지 않는데 학력이 걸림돌이다"면서 "조건이 괜찮고 가고 싶은 기업의 공채에서는 대부분이 4년제 졸업자만을 뽑을 뿐 전문대 학생들은 지원 자체가 안 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이른바 '스펙'을 많이 쌓아도 넘기 힘든 '신분의 벽'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4년제와 차별화 안 돼... 정체성의 위기 겪는 전문대

이처럼 4명의 대학 동기들은 입학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이 다니던 학교를 통해서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장래를 구상하고 있다.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전문대 학생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분절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취업 과정에서의 차별만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지전문대학 취업마케팅과 과장 정태욱씨는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은 명확히 2중 구조로 나눠져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전문대 학생들이 필요한 분야가 정말 많은데 수직적으로 단층화된 노동구조 속에서 학생들이 특성화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 측면이 있고, 임금 부분도 큰 문제"라며 산업구조 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서울 A 전문대학에 재학 중인 전순표씨는 "4년제 대학과 다르게 특화된 직업교육과정을 통해, 취업 시장에서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4년제 졸업자들과)독립적인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인 구조에서 '2류 직장'을 들어가는 것이 전문대생의 현실"이라며 씁쓸해 했다.

실제로 보건계열 학과, 미용관련 학과 등 전문대에 존재하는 '인기학과'들을 4년제 대학에서 도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전문대학의 특성화는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배화여대 고재경 교수는 "전문대만의 특화된 학과를 4년제 대학에서 벤치마킹한다는 명목 아래 마구잡이식으로 신설했다"면서 "예를 들어 애완동물학과 등을 4년제 대학에서 동물자원학과 등으로 명칭만 교묘하게 바꿔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한숨을 지었다.

▲ 지방의 한 4년제 대학의 학과 소개. 전문대학에서 사용하던 학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 김혜민



▲ 편입 현황을 보여주며 신입생들을 홍보하는 모습. ⓒ 김혜민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전문대의 모습을 반영하듯 많은 전문대학들이 문을 닫거나, 4년제 대학으로 통폐합되었다. 2008년도 입시에서 전문대학 모집 정원은 23만 2178명으로 지난 2001년 29만 2035명에 비해 6만여명이나 줄어 현저한 감소세를 나타냈다.

'전문 직업'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수많은 전문대 학생들은 4년제 대학으로의 편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A 전문대학에 재학 중인 조동식씨는 "주위를 보면 죄다 편입 준비를 하는 것 같다"며 학교 내 분위기를 전달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전문대학에서는 '편입이 잘 되는 대학' 등의 슬로건을 앞세워 신입생들에게 학교를 홍보하고 있다.

이렇게 '전문 직업인 양성'이라는 전문대학의 기본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에서 전문대의 존재 이유마저 의문시되고 있다. 독립적인 고등교육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서 차별화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채 단순히 '값싼 인력'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화여대 고재경 교수는 "전문대는 독립된 고등교육기관임에도 4년제 대학의 아류로 취급되어 왔다, 인식 자체도 '4년제에 진학하지 못한 낙오생'들이 전문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돼있다"면서 "대학은 언제나 '4년제 대학'과 동의어였고, 전문대학은 3류 백화점 창고에 수북이 쌓여있는 재고정리용 상품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며 무관심을 받고 있는 전문대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특성화된 ‘산업인력 양성 중심대학’으로 거듭나야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전문대 본연의 '전문기술인력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를 살리고, 특성화, 차별화된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 교수는 "전문대 자체적으로도 양적인 성장에 치중해 학생부터 모집하고 보자는 인식이 팽배했다. 등록금 의존율이 9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질적인 부분보다는 학생 수나 늘리고 보자는 식의 방향들이 많았다"며 전문대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것을 강조했다.

이어 고 교수는 "특성화가 전문대의 성장 동력인데 이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보니 학과도 백화점 마냥 마구잡이식으로 신설이 되었고, 전문대는 큰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면서 "지금까지는 동대문 옷 가게에서 파는 프리사이즈 형 교육을 했다면 이제는 기본 취지를 살려 맞춤형 교육,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는 '연구인력 양성 중심대학과 산업인력 양성중심 대학으로 고등교육 체제의 이원화'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 체계의 특성화된 이원화를 통해 정체성이 모호해진 전문대학의 모습을 바로잡고, 비효율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산업 인력을 줄이자는 취지다. 4년제 대학 중 20~30%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지정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과 전문대·기술대·산업대 등은 유형을 통합하여 교육 체계를 목적에 따라 둘로 나누자는 설명이다.

전문대협의회 이승근 기획조정실장은 "연구중심대학, 산업인력 중심대학으로 이원화하여 효율적인 교육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연구와 기술의 교육기관은 분화되고 동일 학문 간 교육과정은 융합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영국과 핀란드는 폴리텍 대학 과정을 개설해 3·4년 동안 학사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후에는 석·박사까지 취득할 수 있다"면서 이원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전문대학의 위치를 확실히 다질 것을 주장했다.

이어 이 실장은 "인문계 고교 떨어지면 가는 곳이 실업계 고교, 4년제 대학에서 떨어지면 가는 곳이 전문대학으로 여기는 것처럼 직업 교육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면서 "학벌 중심 사회를 벗어나, 굳이 4년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능력개발을 통해 좋아하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며 직업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명지전문대 정태욱 취업마케팅과 과장도 "한번 못 살면 영원히 못사는 그런 사회구조가 아니라 앞으로는 전문대학을 발판으로 하여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고, 풍부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사회적으로 전문대학이 큰 역할을 담당하길 바란다"며 사회적인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 모 대기업의 인턴모집 공고. 4년제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 김혜민


 "전문대학은 직업기술교육의 산실... 더이상 홀대 말아야"
[인터뷰] 고재경 배화여대 영어통번역과 교수


- 현재 전문대학의 상황에 대해 어떠한 위기의식을 느끼는지 말해 달라.
"전문대학은 4년제 대학의 아류로 취급되어 왔다. 인식 자체도 4년제에 진학하지 못한 낙오생들이 전문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오인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적인 배경 이외에 전문대학의 고유 영역이던 직업기술교육 등 특성화된 학과를 4년제 대학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신설했다. 말은 벤치마킹한다고 했으나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학과 등을 4년제 대학에서 동물자원학과 등으로 명칭만 교묘하게 바꿔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렇게 인기학과를 싹쓸이 하는 상황에서 전문대학에 진학하려던 학생들이 4년제 대학으로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리고 전문계 고등학교(실업계 고교) 졸업자에 대한 정원 외 특별전형이 4년제 대학에서도 생기면서 우수한 전문계 고교 학생들이 이쪽으로 가고 있다. 사실 전문계 고교 학생들은 전문대학에서 많이 뽑아왔으나 4년제 대학에서 우수 학생들을 빼앗아가면서 전문대학의 입지가 많이 좁아지고 있는 상태다."

- 전문대학은 4년제 대학과 독립적이고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고등교육기관인데 지금처럼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80~90년대에서는 전문대학을 특정 계열로 특성화 하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전문대학은 공업계열로 특성화하여 차별화된 교육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대뿐만 아니라 공업계열 전체가 위기를 겪고 있다. 이렇게 '이공계의 위기' 상황에서 공업계열은 퇴색되고, 전문대학에서 이공계를 특화하여 발전하기가 참 어려운 구조다. 지방 전문대 같은 경우에는 거의 존폐의 위기 아래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명칭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다. 4년제 대학의 장은 총장이고, 2~3년제 대학의 장은 학장이라 부른다. 이는 같은 고등교육기관임에도 어폐가 있는 문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전문대가 되었든 커뮤니티 대학이든 종합 대학이든 전부 다 president라 대학의 장을 부른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학장/총장'을 나누어 부름으로서 전문대학 구성원들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끔 하고 있다."

- 전문대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기업 공채 지원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재학 중 인턴 사원 기회 등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한다. 지방 전문대 같은 경우에는 대기업 취업 의뢰조차 원천 봉쇄 되어 있다. 전문대 자체적으로도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전문대는 4년제의 아류고, 전문대생이라는 이유로 실력도 떨어진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 분들도 자격기준을 조금 완화할 필요가 있고, 전문대 자체 내에서도 보다 특화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같은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보완장치도 필요하다."

- 심지어 '편입이 잘되는 대학' 등으로 학교 홍보를 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문대학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가장 맞지 않는 것이 편입이다. 지금 마치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현상이다. 사실 그동안 전문대학 내 여러 학과들의 핵심역량이 부족했다. 특성화·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다 보니 이러한 특성화는 멀어져 버렸다.

전문대학은 허리역할을 하는 교육기관이다. 미드필더 없는 축구는 상상할 수 없듯이 전문대학 없는 고등교육기관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문대학은 이 허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재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했어야 했는데 잠깐 공부하고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편입은)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전문대 고유의 직업기술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지만 강한 대학, 내실있는 대학으로 전문대 구성원들이 합심해서 가야지, 편입으로 학교를 홍보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 정부·교육부 차원에서 담당하는 전문대 관련 정책이나 관련 예산 등이 차별적인 것이 많이 있나?
"정부 차원에서의 재정 지원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2006년도 전체 교육 예산은 27조 정도였다. 그 중 85%가 초중등 교육에, 15%가 고등교육과 유아교육에 들어가고 있다. 이 중에서 4년제 대학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이 3조7000여억원 정도이고, 전문대학에 지원되는 예산은 2100여억원 정도이다. 4년제 대학의 1/18밖에 안 되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전문대는 독립적인 고등교육기관이고, 전체 대학 입학생의 40%를 맡고 있는 중추기관임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수치다.

현재 사회 각 분야에서 양극화 문제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재정적인 차별은 자칫 국론 분열이나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그 동안 직업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한 전문대학이 이렇게 홀대를 받는다면 구성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직업 교육은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글로벌직업교육의 확대를 위해서도 지금과 같은 홀대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 전문대 수업연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수업연한이다. 수업연한은 전면적으로 자율화 해야 한다. 현재 고등교육법에 의해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이 2~3년으로 묶여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부분이다. 전문대 내에는 1년 과정의 교육이 필요한 학과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4년 정도의 심화교육이 필요한 학과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2~3년으로 수업연한을 국한시킨 것은 전문대의 다양한 학과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몰이해적인 발상이다. 이는 정부의 전문대학에 대한 홀대를 반영한 처사다.

캐나다 같은 경우에는 ‘University College’라고 해서 종합단과대학이 활성화 되어 있다. 이는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친 개념인데 수업연한이 1년인 초단기 과정에서부터 4년 정도의 심화과정까지 전면적으로 자율화 되어 있다. 그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넓게 가지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대적인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고등교육법 개정 등을 통해 과감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수업연한을 자율화 하고, 직업 교육의 활로를 터주면 현재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실업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전문대학 자체 내에서도 차별화된 학과나 특성화된 프로그램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대학 자체적으로도 양적인 성장에 치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학생부터 모집하고 보자는 인식이 팽배했다. 등록금 의존율이 9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질적인 부분보다는 양적으로 늘리고 보자는 식의 방향들이 많았다.

이러하다 보니 학과 자체도 백화점 식으로 마구잡이로 신설이 되었고, 돈이 되는 방향으로 학과를 양성했다. 전문대학의 기본 취지가 전문기술인력 양성인데 이를 도외시하고 학생만 모집하고 보자는 식으로 가다 보니 질적인 성장은 요원했다. 특성화, 전문화가 전문대학의 성장 동력인데 이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보니 전문대는 큰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전문대의 정체성을 무시한 채 지금까지는 동대문 옷 가게에서 파는 프리사이즈 형 교육을 했다. 전문대는 이제 맞춤형 교육, 특성화된 프로그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일부 전문대학은 이에 성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나 아직은 극소수다."

덧붙이는 글 김혜민, 송주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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