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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자가 열 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미국] 4년 만에 돌아온 윤년 생일을 맞은 사람들

등록|2008.03.02 13:08 수정|2008.03.02 13:08
“오늘이 열 네 번째 생일이에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중년의 남자가 양 손을 치켜들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열 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아니 머리도 벗겨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보이는데 웬 열 네 살?

그럼 그렇지. 남자는 진짜 열 네 살이 아닌 중년의 신사다. 실제 나이는 쉰 둘, 아니 우리 나이로는 쉰 셋이다. 그런데 열 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 14번째 생일을 맞은 나입 선생님(53) 기사가 실린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신문. ⓒ 한나영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이 학교에는 생일이 2월 29일인 사람이 딱 두 명 있다. 영어교사인 짐 나입과 10학년인 블레어 헐비.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 생일을 맞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학교 신문에 실렸다. 나입 선생님은 1956년 2월 29일 생.

윤년인 해에 태어난 선생님은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생일 때문에 제대로 된 생일을 찾아먹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제 날짜의 생일인 윤년 생일만 찾아 계산을 해 보니 올해 겨우 열 네 살 밖에 안된 것이다. 이렇게 드문 드문 찾아오는 생일이 선생님은 혹시 서운하지 않았을까. 

“오, 천만에요. 서운하기는 커녕 기뻐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저를 딱하게 여겼지요. 4년에 한 번씩만 생일이 돌아온다고요. 하지만 진짜 생일 대신 보통 28일에 생일 파티를 열어 해마다 생일을 맞긴 했지요. 물론 진짜가 아니어서 느낌은 좀 달랐지만요. 그런데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윤년 생일이 더 좋네요. 왜냐고요?”

나입 선생님이 윤년 생일을 기뻐하고 예찬하는 이유는 뭘까.

“나이가 들면 생일이 돌아와도 별 느낌이 없어요. 흥분도 없고요. 오히려 생일을 맞을 때마다 조금은 쓸쓸해지지요. 이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생일 케익을 먹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흥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그러니 아예 속 편하게 해마다 생일이 돌아오지 않는 게 좋아요. 더 행복해요. 하하.”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들어도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온다는데 생일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오는 세월을 막을 수 있겠는가. 순진한 생각을 한 나입 선생님의 헛헛한 유머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윤년 생일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10학년생 블레어 역시 자신의 특이한 생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도 이제 겨우 네 살이에요. 실제로는 열 여섯 살이지만요. 남들은 ‘스위트 16 (Sweet 16)’이라고 무척 흥분하고 즐거워하지만 사실 제가 맞는 ‘스위트 4’는 더욱 짜릿하네요."

남들과 다른 윤년 생일이 좋은 이유에 대해 블레어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 진짜 생일은 이렇게 4년에 한 번씩만 돌아오니까 친구들이 더 잘 챙겨줘요. 잊지 않고요. 정말 멋진 선물을 사 주거든요.”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 마냥 4년 만에 찾아온 윤년 생일을 다룬 것은 고등학교 신문 만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데일리뉴스 레코드' 역시 윤년 생일을 맞게 된 아기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톱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 미국에서 태어난 20여만 명의 '2월 29일생' 가운데 하나인 애이든 드레이크 디아즈. 해리슨버그 지역 신문인 '데일리뉴스 레코드'가 윤년 아기를 톱 기사로 다뤘다. ⓒ 한나영

"애이든 드레이크 디아즈 덕분에 해리슨버그도 윤년 아기를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2월 29일 오전 10시 58분. RMH 병원에서 제임스 맥스웰(18)과 라나에 디아즈(19) 사이에 남자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 이름은 애이든 드레이크 디아즈 (Ayden Drake Diaz). 7파운드 11온즈. 

'애이든 드레이크 디아즈'는 신화를 좋아하는 디아즈가 아기 이름을 짓기 위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의 뿌리를 찾아 고민하던 중 '불타는'이라는 뜻을 가진 '애이든'과 '드레곤 수호자'라는 뜻의 '드레이크'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디아즈는 이 이름을 짓기 위해 백 번도 넘게 고쳤다고 한다. 아기 상태는 양호하며 이름과는 달리 아기는 아주 조용하다고 한다. 아기 부모는 윤년이 아닌 해에는 애이든의 생일을 2월 28일에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8년 2월 29일. 이 날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의 윤년에 따라 4년만에 찾아온 특별한 날이다. 이 날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20여만 명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4백10만명이고.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맞게 되는 특별한 윤년 생일. 본인에게는 좀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평범한 것은 싫다. 튀는 게 좋다"를 부르짖는 현대인에게는 윤년 생일이 누구도 잊어버리지 않을 매우 특별한 날이 될 테니 말이다.

더구나 미국 신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생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라면 특권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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