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와 <중앙일보>, 또 하나의 가족?
삼성특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4일 오후 소환... 에버랜드 사건 전모 추궁할 계획
▲ 지난 2005년 11월 16일 불법 대선자금을 정치권에 제공하는 데 '전달책' 역할을 했다는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은 홍 회장을 상대로 지난 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한 배경 등을 캐묻는 한편, 김용철 변호사가 작년 11월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삼성과 <중앙일보> 위장분리 의혹에 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윤정석 특검보는 이날 오전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에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홍 회장에게 확인할 부분이 있다"며 "(많은 의혹 중) 어느 분야를 조사할 것인지는 수사보안이라 말씀드리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건희-이재용 승계 구도 완성한 에버랜드 사건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왼쪽부터)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당시 발행된 전환사채는 7700원. 1주당 8만5천원 하던 에버랜드 주식의 1/10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결국 실권된 전환사채 전부는 96년 12월 3일 이 회장의 네 자녀인 이재용·이부진·이서현·이윤형에게 배정된다.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이후 2000년 6월 전국 법학교수 43명이 이 회장과 에버랜드 경영진 33명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2003년 12월 1일 공고시효를 불과 하루 남겨놓고 피고발인 33명 중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만 분리 기소한다. 그 후 2007년 5월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이사회 회의가 정족수 미달로 아예 성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기소 이후 주임 검사가 무려 11번, 부장 검사가 9번 교체된 사건이었다. 2005년 2월 선고 예정이었던 1심 판결은 무려 15차례의 공판 과정과 추가 심리를 위한 변론 과정, 재판부의 교체가 이뤄진 8개월 뒤에야 내려졌다. 2심에서도 담당 판사가 세 차례나 교체됐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그 이면에 이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룹 차원의 기획·집행이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홍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은 소환조사했지만 이 회장과 수혜자인 이 전무는 소환하지 못했다.
<중앙일보> 전환사채 발행...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너무나 닮아있어
▲ 중앙일보 ⓒ 오마이뉴스
"<중앙일보>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결의 직전인 96년 10월 26일, 3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주주배정 후 실권 시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하였는데 지분을 26.44%를 가진 1대 주주인 이건희가 위 전환사채를 인수하지 않음으로써 그 지분율이 20.34%로 하락한 반면, 지분율이 0.58%에 불과하던 홍석현은 제일제당을 제외한 모든 주주들이 청약을 포기한 전환사채를 전부 인수하여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21.51%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로 부상하였다."
너무나 닮은 전개다. 다만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고 배정받는 주인공만 바뀌었다.
결국 이 회장과 홍 회장이 똑같은 방식으로 지배권을 교환했다는 의심만 남는다. 곽노현 교수는 지난해 12월 <민주법학>35호 논문을 통해 "에버랜드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중앙일보>는 처남에게 물려주고 싶은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의심의 근거는 충분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보면 에버랜드는 월 단위, 분기 단위, 연 단위 자금조달 계획을 수립했는데 '96년 9월 25일자 96년 10월 자금계획서' 어디에서도 에버랜드가 당시 긴급자금을 조달해야 했던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에버랜드 신용등급은 최상급(A3)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번에는 밝혀지나
▲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관련 진술이 조작됐고, 삼성과 <중앙일보>는 위장계열 분리 의혹을 제기했다. ⓒ 권우성
김 변호사는 "태평로 삼성본관 옆 태평로 빌딩 26층에 에버랜드 수사에 대비해 검찰 조사실과 비슷한 방을 꾸며놓고 증인들과 연습을 했다"며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관련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구조본이 증인과 증언을 통째로 조작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추가로 밝힌 뇌물 검사 명단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수사에 대한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김 변호사가 밝힌 뇌물 검사 3명 중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이 불거진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연속으로 서울지검장을 역임했다.
곽 교수는 지난해 1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지검 재직 당시 현장 수사팀의 이건희 소환조사를 묵살해왔던 사람들이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이라며 "3차 기자회견에서 임 총장과 이 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이 삼성의 관리대상이었다는 내용을 밝힌 뒤로 정신의 공황을 맞이했다"고까지 말했다.
이 외에도 김 변호사는 "<중앙일보>의 삼성그룹 계열분리는 위장분리"라며 "<중앙일보>가 계열분리를 하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여러 차례 했지만 홍 회장이 대주주 지분을 살 돈이 없어 궁여지책 끝에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지분, 차명으로 된 지분을 홍 회장에게 명의를 넘기는 방식으로 계열분리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 근거로 "1999년 <중앙일보> 주주명의자는 홍 회장으로 하되 홍 회장은 의결권이 없으며, 이건희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 담긴 주식명의신탁계약서를 비밀리에 직접 작성했다"며 "이 부분은 검찰이 주식매입대금 출처를 조사하면 나온다"고 밝혔다.
"특검 수사의 본질인 그룹 차원의 경영권 불법 승계 공모 밝혀낼 기회"
▲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 ⓒ 남소연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관련해서도 2006년 8월 서울중앙지금에서 비공개 조사를 받았었다. 당시 홍 회장은 "96년 말 <중앙일보>가 발행한 전환사채 30억여원을 모두 인수해 자신의 지분을 20%까지 늘린 사실을 이건희 회장이 모두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당시 홍 회장의 진술은 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등 경영권 불법 승계를 지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했다.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특검의 홍 회장 소환 조사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상호간 경영권을 교환한 정황이 분명한 <중앙일보>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 사건, 김 변호사가 주장한 이면계약서의 진실. 모두 이건희 회장과 홍 회장이 연관돼있다. 특검이 이를 통해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한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는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건 등 해당회사 임원들의 배임 혐의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검 수사의 본질은 경영권 불법 승계가 그룹 차원의 공모로 이뤄졌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