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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서울'을 헤집고 다니다

[엄마하고 나하고 42회] 남원과 전주에서 '백운역할아버지'를 찾아다니다

등록|2008.03.04 09:26 수정|2008.03.04 09:26
'맛있는 집’.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이다. 아직 점심은 이른 시간이라 식당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차량들은 없었지만 소낙비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여유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늘이 쪼개졌나. 와 이락꼬?”

어머니는 캄캄해지는 하늘이 걱정이 되시나보다. 이래가지고는 백운역 할아버지를 찾아 갈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머니 걱정을 애써 무시하고 나는 씩씩하게 식당에 들어가서 먹을거리를 찾았다.

두부요리 전문 식당이었는지 두부를 삶아 건지고 있는 게 보여서 갓 삶은 두부 한모를 사 왔다. 따끈따끈한 두부에서 고소한 콩 냄새가 났다. 풋 김치도 함께 사 왔다. 두부를 본 어머니는 크게 반가워했다. 트럭 안에서 어머니랑 붙어 앉아 간장을 무릎에 흘려가며 두부를 먹었다. 트럭의 양철 지붕위로 떨어지는 장대비는 콩 볶는 소리를 냈다.

우민교회건물낮인데도 먹구름 끼고 비 내리니 어두웠다 ⓒ 전희식


누가 보면 늙은 우리 모자가 연인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고집불통의 노인네가 우물우물 콧물을 대롱대롱 매달고 두부를 맛있게 잡숫고 계셨다. 빤히 쳐다보는 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어머니가 두부를 한 젓갈 떼어내서 내 입에 넣어 주셨다.

두 사람 다 마음이나 배가 두둥실 불러 가지고 식당 주차장을 나왔다. 나는 남원 터미널 옆 한 건물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백운역 할아버지가 이사 가셨다네요”라고 보고를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눈치를 어머니가 내게 보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디로 이사 갔는지 제가 약도를 잘 받아 왔어요.”

건물 우체통에 꽂혀 있던 광고 안내전단을 보여 주면서 이사 간 곳으로 찾아 가자면서 차를 돌렸다. 나는 전주로 향했다. 어머니는 상당부분 백운역 할아버지에게서 풀려나고 있었다.

“나락 모감지가 커질라믄 나락 꽃이 들어왔다 나갔다 해야 되는데 비가 무장 더 오네?”
“그러게요. 햇볕이 나야 나락이 영글 텐데요.”

“내리 사흘이나 와서 인자 안 오지 시푸디마는 장마 끄트리가 기네.”
“비는 며칠 더 온대요.”

“산이 저거 맹키로 하늘에 닿아 있으믄 비가 오는 기라. 하늘이 높이 올라 가믄 맑아지는 기고.”
“그 보다도 백운역 할아버지가 어디 안 가고 집에 계셔야 할 텐데 비 오는데 어디 안 가셨겠죠?”

“그걸 누가 아노. 두 발 성한 사람이 오델 못 가건노.”

백운역 할아버지를 못 만날 수도 있다는 투였다. 어머니는 서울이 참 넓다고 하셨다. 한 시간을 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주에 들어와서 중앙 대로를 달리는데 큰 사거리 건물에 우민교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비가 멎고 터진 구름 사이로 햇살이 교회위로 내 비치고 있어서 우리를 그쪽으로 안내하는 듯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바로 저기에요. 교회 뒷집으로 이사 갔다고 했거든요. 다 왔어요.”

건물 뒤로 차를 대자 소낙비가 다시 쏟아졌다. 우산을 받쳐 들었지만 빗줄기가 옆으로 후려쳤다. 건물로 올라간 나는 화장실로 가서 볼일부터 봤다. 맥이 탁 풀어지는 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목욕탕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목욕탕 못 가 본지가 반년이 넘었지 아마. 어머니가 집에 오시고 단 한 번도 목욕탕이나 이발소에를 가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수염도 못 깎아 가위로 잘라 내고 머리는 바리캉으로 박박 밀고 있었다.

“집에 있더나?”
“아뇨. 저쪽에 있는 노인정에 갔대요.”

나는 교회건물에서 나와서 바로 차를 몰고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건물이 보였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이곳이 동네 노인정이라니 백운역 할아버지 계신지 찾아오겠다고 차에서 내리려하자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야야. 인자 우리 고마 가자. 장계 집으로 가자.” (43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똥꽃>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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