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장 <시골풍경> ⓒ 김홍식
3·1절 오전 10시. 우리는 북하면사무소 앞마당에 모였다. 회원 모두가 남자다. 차를 타고 떠나는 길, 마음 속에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왜냐하면, 벼르던 복수초를 보러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성호 상류를 한참 돌아, 생각지도 못한 물가에 섰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나는 왠지 좀 추웠다. 우리를 데려다줄 모터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보는 모터보트라 속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우리는 물위를 한참 돌아 호수 건너편에 내렸다.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돌보는 이가 멀리 있으면 이렇게 변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착찹하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집기들, 낡아서 이제는 쓸 수도 없는 물건들. 인간도 세월이 가면 그렇게 되겠구나. 나도 이제는 저런 물건 축에 드는가 보다.
우리는 그 길로 부리나케 산을 오랐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난다. 행여나, 행여나! 안경 속에서 눈이 번뜩인다. 있을까, 있을까, 보일까, 보일까. 한참을 올라가도 별 소득이 없다. 마음 속에서는 '혹시 오늘도 허탕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뭉게구름이 된다.
왜 그리 가는 길마다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등걸 투성이인지, 가시덩쿨은 왜 또 그렇게도 많은지, 힘이 빠져갈 즈음 종제가 내게 묻는다.
▲ 복수초2 ⓒ 김홍식
▲ 복수초3 ⓒ 김홍식
"형, 이런 걸 찾는 거요?"
"어디, 뭔데?"
노란 그놈이, 복수초란 놈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지 않은가!
"야호!"
"부회장님, 여기 찾았습니다아~"
모두가 모여들고 우리는 사진 찍기 바쁘다. 그런데 그 예쁜 복수초란 놈이 여기도 불쑥, 저기도 불쑥 솟아 있지를 않은가! 발을 아무데나 디디면 안 될 정도로 여기 저기 밭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놈, 반쯤 벙그러진 놈, 이제 막 땅을 뚫고 나오는 놈. 나는 생전 처음 야생의 복수초를, 꽃을 피운 복수초를 볼 수 있었고, 렌즈를 들이대는 감격에 가슴이 뛰었다.
잡목을 붕우삼아 낙엽을 이불 삼아
한 세월 잠들었던 복수초 한 뿌리를
오늘사 만나고 보니 그 감격이 남달라.
꼭 다문 그 꽃잎을 언제면 터뜨리랴
빠알간 굵은 대공 튼실히 잘 자라서
조화옹 담은 그 사연 화알짝도 펴리라
▲ 복수초1 ⓒ 김홍식
아, 글쎄. 고기를 다 구워놓고 보니 된장을 잊었다나? 어쩐다? 역시 '보스'께서 전화 한 방으로 해결. '시골풍경'의 장독대에 된장이 지천으로 있었던 것을…. 주인께서 얼마든지 잡수시랬단다. 또 감사. 우리 식탁 그럴 듯한가요? 거기다 창식 군이 한식조리사 실력을 발휘, 맛있는 삼겹살 요리를 선사했다. 또또 감사.
▲ 먹음직스런 야외식탁 ⓒ 김홍식
▲ 호수 위 청둥오리떼 ⓒ 김홍식
보스께서 말씀하신다. 살살 접근하면 날지 않는단다. 사진을 찍으라는 얘기다. 이윽고 돌발 출발. 그 많던 청둥오리 일시에 날아오르니 장관이다.
우리를 태우고 보스는 호수가를 한 바퀴 도신다. 부회장님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물가에는 고드름이 하나 둘 눈에 보인다.
▲ 개감수 세 녁석이 나란히 ⓒ 김홍식
▲ 아우를 데리고 나온 언니 ⓒ 김홍식
렌즈를 들이대고 내려오니, 창식 군이 헤어지기 섭섭한 모양이다. 그래서 동화에 있는 '과수원집'에서 약오리요리를 푸짐하게 대접받았다. 창식 군이 독특한 경영방식으로 이끌어가는 식당이다. "창식 군과 헤어지는 순간까지 즐거울 거야"라는 부회장님.
그곳에는 연못도 있었고, 숱한 옛 우리 돌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주인의 멋스런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탈 복, 눈으로 보는 볼 복, 입으로 먹는 복이 터진 날이다. 감사 아니하고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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