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 지키고자 ‘산업도로’ 막는 몸뚱이
[배다리 산업도로 반대 천막농성] 이레째, 2008년 3월 5일
▲ 서로서로 집입니다아파트라고 더 나은 집이 아니며, 골목집이라고 더 나쁜 집이 아닙니다. 어느 쪽도 더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사람이 사는 집일 뿐입니다. 이곳에는 사람이 사는 길이, 사람이 사는 문화가, 사람이 사는 행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은, 산업도로 예정터 바로 옆, 거리로 치면 5미터 옆에 있는 달동네 골목집과 주공아파트. ⓒ 최종규
‘위(인천시)에서 지시를 했으니 강행한다’고 말하는 건설업체 사람들을 보면서,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 아저씨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이곳은 당신들 땅이 아니라 우리 주민들 땅이에요.” “우리는 시청에 가서도 몇 번이나 따지고 말하고 외쳤지만,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여기에 나와서 이렇게 막는 거지.”
▲ 공사예정터 3-B주민과 건설업체 사람들이 신경전을 벌입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이 넓은 자리에 찻길을 내겠다고 하니, 어느 동네 사람이 이런 길을 좋아할까요. ⓒ 최종규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산업도로가 그예 뚫리고 나면, 아이들 앞날이 위험해집니다. 지금으로도 골목집과 아파트 바로 옆에 울타리 하나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온갖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는 아이들 건강을 다치게 하고 위협합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말합니다. “걱정이 되어서 어떡해.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지켜야지.”
건설업체 사람들은 항의하는 주민들한테 말합니다. 당신들도 이 산업도로 공사가 잘못인 줄은 알고 있다고. 그러나 당신들은 ‘봉급쟁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 주민 항의자재에 올라타면서 공사를 막아서는 주민들. ⓒ 최종규
한편, 건설업체 사람들 스스로도 이 공사가 잘못인 줄 안다면, 이와 같은 공사를 따내어 월급받고 살아가고자 하기보다는, 잘못이 없는 공사를 따내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산업도로 공사가 잘못이지만 먹고살자면 어찌할 수 없다고 말하며 밀어붙이면, 이 잘못된 공사 때문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하고 당신들은 그저 남남,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까요. 오히려 건설업체 사람들이 인천시장한테 ‘왜 우리한테 잘못된 공사를 맡겨서 주민들하고 몸싸움을 하게 만들고, 우리들 공사도 못하게 하는 상황을 만드는가?’ 하고 따지며, 인천시청에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 건설업체 사람들은 ‘자기들이 따낸 공사가 잘못된 공사라고 해도 그냥 해야지, 손해배상을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잘못된 공사임을 따져서 손해배상을 걸면, 그때 한 번은 배상을 받을지 모르나, 그때부터는 다른 공사를 따낼 수 없는 미운털이 박힌다고.
▲ 주민 항의공사를 항의하는 주민들. ⓒ 최종규
그러고 보면, 아파트 창문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닫혀 있습니다. 여름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아닌 에어컨 바람을 쐽니다. 겨울이야 추우니 문을 닫겠지만, 난방기를 돌리고 집안에서 반소매 차림으로들 지냅니다. 빨래를 해도 햇볕이 아닌 세탁기로 물을 짜서 집안에 걸어 놓을 뿐입니다.
꽃그릇을 키워도 툇마루 안쪽이나 마루에 놓을 뿐, 이웃집하고 자기네 꽃그릇 구경을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아파트 이웃집은 단단한 쇠문과 도어록뿐입니다. 4구간 공사를 하고 있는 건설업체 일꾼한테 묻습니다. “여기 공사 다시 하시는 거예요?” “도로 넓히는 거여, 확장하는 거여.”
▲ 공사 항의 할머님할머님들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공사항의에 나오십니다. ⓒ 최종규
1구간으로 다시 갑니다. 한판 실랑이가 거세게 몰아치고 지나간 듯. 주민들은 공사터 자재에 올라가서 버티고 있습니다. 건설업체 사람들이 공사를 다시 하려고 하지만 주민들은 꼼짝 않고 버팁니다. 공사터 위쪽에 자전거를 세우고 내려갑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난 뒤 송현동성당 김덕원 신부님이 매일미사를 이곳, 산업도로 공사예정터에서 치르기로 합니다. 사십 분 즈음 매일미사를 올리고 나니, 송림동성당 신자 분들이 낮밥을 챙겨서 공사터로 찾아옵니다.
▲ 공사 강행을 막는 뜻으로, 송현동 성당 매일미사를 공사터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 현대제철노조
인천지역 신문에서 해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보도를 살피면, 인천은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에(거의 첫 손가락) 꼽히는 공해도시이며, 인천 가운데에서도 동구가 가장 공해가 끔찍하답니다. 이리하여 이 동네에 호흡기ㆍ기관지 환자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어찌 이곳 인천뿐이겠습니까. 공장 굴뚝은 안산에도 있고 충주에도 있고 울산에도 있습니다. 서울 구로에도 있고 대구에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릅니다만, 울산에서 솟아오르는 매연과 인천에서 솟아오르는 매연이 날마다 ‘잘 지냈니?’ 하고 인사하며 만나고 있지는 않은지.
▲ 어쩔 수 있겠는가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몸을 던져서 막을 수밖에. 얌전한 동네사람을 투사로 만들고 있는 인천시 행정... ⓒ 최종규
너무 많은 물건을 돈 걱정 없이 펑펑 써대며 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1회용품을 너무 가볍게 써 버리고 있지 않나요. 가까운 거리를 걷지 않고 자가용으로 다니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수 있을까요. 대중교통으로 다녀도 될 일터를 자가용으로 다니고, 자전거로도 괜찮을 텐데 귀찮다고 덥다고 춥다고 자가용을 끌고 다니지 않으신지요. 이런 우리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서 무엇을 바꾸어낼 수 있을까요. 지금 이곳 인천땅에서 끊이지 않는 ‘잘못된 행정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산업도로만이 아닙니다.
공사터 둘레를 걸어서 지나가며 학교로, 일터로 가는 발걸음을 봅니다. 이들은 이런 공사가 일어나는 줄 알까요. 알아도 몸으로 느끼고 있을까요. 어쩌면, ‘동네 한복판 꿰뚫는 산업도로’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집과 일터와 학교 둘레에서 일어나는 온갖 잘잘못에서도 팔짱을 끼거나 나 몰라라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이 다 해 주겠지 하는 마음은 아닐는지. 이런 일이 있어야 경제가 발돋움한다는 생각은 아닐는지.
▲ 학교 가는 아이들아이들은 학교를 갈 때, 이 "산업도로 예정터" 옆으로 지나갑니다. 집도 학교도 모두 산업도로 예정터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 공부에 바빠서 마음을 기울이지 못할 텐데, 시장님 딸과 건설업체 아저씨들 딸이 이곳 학교에 다녀도 그렇게 공사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 최종규
돌이켜보면, 이 모든 잘못을 인천시장 안상수씨 한 사람한테만 돌릴 수 없습니다. 주민들이 좀더 똘똘 뭉치지 못한 탓이 있고, 지역언론에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탓도 있으며, 중앙언론에서 ‘너네 동네 일이니까 너네가 알아서 해’ 하면서 구경조차 안 한는 탓도 있습니다.
▲ 아파트 옆 공장들과 산업도로아파트 바로 옆에 밀어붙이는 산업도로 공사.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제철소와 제강소들. 매연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이런 공사는 끝도 없이 밀어붙이려 하고. ⓒ 최종규
그렇지만, 이렇게 밀리고 밀리면서 산동네 달동네 쪽방살이를 하는 지금에 와서도 또 말없이 있는다면, 이 삶터에서마저 쫓겨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는 고향이고 뭐고 있을 수 없습니다.
▲ 4구간 공사4구간은 아무런 걸림돌 없이 술술 공사를 합니다. ⓒ 최종규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잘산다고 해도,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아이들이 어린 날 신나게 웃고 떠들며 놀 수 있는 터전이 사라져 버리는데. 매연과 폐수와 배기가스로 찌든 이 동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자랄까요. 풀숲도 흙 한 줌도 시원한 바람도 없는 이 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크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갈까요.
“이번주는 양반처럼 합니다만, 다음주부터는 얼굴에 철판 깔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건설업체 사람들 말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갈기갈기 찢어발깁니다. 자기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는 건설업체 사람 마음이 슬픕니다. 아니, 건설업체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를 망가뜨리도록 명령과 지시를 내리고 있는 ‘윗분’들이 불쌍하고 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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