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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97호는 계속 안녕할까?

[주장] 진품은 보존하고 모사품 제작하여 사용하면 어떨까

등록|2008.03.05 13:37 수정|2008.03.06 09:39

▲ 국보 297호인 안심사 괘불탱은 둘둘 말려 목제 괘불함에 보관되어있다. ⓒ 임윤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전소되는 것을 티브이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내내 또 하나의 국보를 떠올리며 그 국보는 지금껏 안녕하고, 앞으로도 ‘안녕’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안녕을 염려하고 있는 국보 297호는 충북 청원군 남이면에 소재한 안심사에 보관 중인 영산회 괘불탱이다. 안심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구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이 괘불은 조선 효종 3년(1652)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756cm, 너비 468cm 크기로 현재 영산전 법당에 있는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다.

6년 전에 본 국보 297호 '안심사 괘불탱'

▲ 2002년 사월 초파일날 안심사에는 국보 297호인 괘불이 내걸렸다. ⓒ 임윤수



내가 이 괘불을 처음 본 것은 6년 전인 2002년 5월 19일, 석가탄신일인 사월 초파일을 맞아 철제로 된 당간지주(幢竿)에 내걸린 것을 본 것이다.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려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꺼내서 당간지주에 막 내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괘불이 가진 35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괘불에 그려진 석가모니부처님과 협시불로 그려진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대칭을 이뤄 좌우로 빽빽하게 배치되게 그려져 있던 제불보살님들 때문인지 저절로 두 손이 모일 만큼 감명을 받는 순간이었다. 흔치 않은 국보급 괘불을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었다.

곁눈질을 하듯 멀리 서서 전체를 훑어보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세세하게 바라보니,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미세하게나마 괘불이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 조금 전까지 마음에 와 닿던 감명이나 환희보다는 ‘이건 아닌데’하는 우려가 앞선다.

괘불을 그린 칠감 중 일부, 애초에 사용된 칠감인지 아니면 후에 보수하느라 덧칠을 한 안료인지는 모르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미 떨어져 나갔고, 그 순간에도 떨어지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괘불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더께처럼 붙어 있던 칠감이 떨어지거나 훼손될 건 번한 상황이었다.

▲ 안심사의 경내는 조용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 임윤수


국보 297호인 안심사의 괘불탱은 그 이후로도 야단법석이 있을 때면 당간지주에 내걸렸을 거고, 괘불을 내걸기 위해 펼쳤다 말다를 하는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순간마다 알게 모르게 훼손이 진행되었을 거란 생각이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방문하였고, 안심사를 방문할 때마다 나의 머리엔 ‘국보 297호인 안심사 괘불탱은 안녕할까?’하는 생각이 떨어지지 않았다.

포장도 뜯지 않은 소화기, 국보 옆에 놓인 방열기

▲ 포장도 뜯지 않은 소화기가 놓여있는 것으로 봐 숭례문 전소에 따른 대책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 임윤수



지난 3월 2일, 오후 4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안심사를 다시 찾았다. 다시 찾아간 안심사는 안심사(安心寺)라는 절 이름만큼이나 불편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에 충분할 만큼 조용하고 아늑했다. 포장도 벗기지 않은 소화기들이 전각 군데군데 놓여 있는 것을 봐 숭례문 화재에 따른 후속조치는 안심사에서도 어떤 형식으로든 있었던 모양이다.

질척거리는 마당에 꾹꾹 발자국을 남기며 대웅전에 들려 참배를 하고, 괘불탱이 보관된 영산전으로 가니 여느 때처럼 법당을 가로지르며 놓인 괘불함이 보인다. 조용한 오후이기도 했지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절집이라서 그런지 나가고 들어오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

텅 빈 법당, 덩그렇게 놓인 괘불함, 괘불함 한쪽에 놓여 있는 난방용 전열기구, 불을 밝힌 많은 꼬마전구들…. 누군가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괘불을 훼손시킬 수 있는 불안한 환경이다.

보관하는 자체가 훼손의 연장선이 될 수도

안심사의 괘불은 반드시 화재와 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만 훼손될 상황이 아니다. 괘불이 가진 본래의 용도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2002년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괘불을 내걸기 위해 펼쳤다 마는 자체가 훼손으로 이어질 거니 스님들이 제아무리 조심하며 극진하게 취급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350년이라는 세월을 가지고 있는 국보 297호인 안심사 괘불탱. ⓒ 임윤수

▲ 그냥 내거는 것만으로도 괘불은 훼손 되고 있었다. ⓒ 임윤수

▲ 불어오는 바람에 괘불이 흔들리니 칠감이 막 떨어지려는 순간이다. ⓒ 임윤수


괘불이 나라의 보물이기에 앞서 사찰과 스님들 입장에서는 지극하게 모셔야 할 예경의 대상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산사에서 이런저런 훼손 없이 온존하게 보존하거나 변형 없이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시설은 물론 인적 자원 또한 미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방치 아닌 방치, 훼손 아닌 훼손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안심사에 보관된 국보 297호인 괘불탱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너만의 보물, 나만의 보물이 아닌 나라의 보물을 그대로 방치해서 안 될 것이다. 훼손의 위험성이 있는 국보급 문화재를 규모가 작은 사찰에서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애로를 느끼거나 한계가 있다면 종단 차원에서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종단 차원에서조차 버거운 상태라면 국가에서 그 대책을 제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서류로만 하는 대책, 말로만 하는 모색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해결책이어야 한다.

진품은 보존하고, 모사품 제작하여 사용

▲ 괘불함 바로 옆에 전열기가 놓여있다. ⓒ 임윤수



안심사 괘불탱뿐만 아니라 같은 국보급인 장곡사의 괘불 또한 그렇듯 다른 괘불들도 괘불이 가지는 특성상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이 녹록치 않을 것이다. 보존에 따른 최적의 조건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시설미비는 물론 일 년에 한두 번씩 내거는 그 자체가 오래된 괘불에게는 훼손으로 이어질 만큼 무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보급 문화재를 규모가 작은 사찰에 보관,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면 종단 또는 국가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박물관과 같은 시설과 인력을 이용하거나, 현재의 여건으로 적당한 시설을 확보할 수 없다면 신설이라도 하여 국보의 진품은 집중 관리하고, 모사품을 제작하여 해당 사찰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대안도 검토할 때다.

문화재의 소유와 관리에 따른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관련법이라도 제정해 이해관계를 명명백백히 조율하고, 국가의 보물이니만큼 모사품의 제작 등에 소요되는 경비는 국가에서 전적으로 부담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조상의 혼이 깃든 문화재를 물려받은 국가로서의 도리며 문화재에 대한 예의다.

안심사에서 오랫동안 주재하고 계신다는 스님도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보급 문화재를 작은 규모의 사찰에서 보존,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며 어떤 제도적 해결, 예로서 진품을 조건이 좋은 곳에서 잘 보존하고 모사품을 제작하여 해당 사찰에서 사용하게 하는 방안 등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 영산전으로 올라가는 돌담처럼 철옹성 같은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 임윤수


일원상을 이루는 구봉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은 안심사는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만큼이나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지금까지는 안녕한 국보지만 언제까지 안녕할까를 염려하는 마음에는 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거나 ‘사후약방문’이라는 말로 조롱을 당하는  문화재 관리, 천박한 역사관을 가진 정부라는 말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아 역사 앞에 당당한 그런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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