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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앞에서 속옷 쇼를 연출한 사연

아이들한테 가장 기쁜 선물을 받았습니다

등록|2008.03.05 16:39 수정|2008.03.06 09:22
오늘(5일)은 마흔아홉번째, 내 생일입니다. 나는 여느날처럼 새벽에 일어나 책을 봅니다. 지난해, 직장의 승진시험에 낙방을 하고 나서 이태째 책을 붙잡고 있으니 마음과 몸이 말이 아닙니다.

쉰이라 머리마저도 쉬어버렸는지 보고 나면 까먹고, 하나가 기억되면 둘이 머리속에서 빠져나갑니다. 때로는 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으나, 칠순의 연세에도 열정을 가지고 배움에 정진하여 끝내 졸업을 한 어르신들의 환한 웃음을 실은 기사를 보고 용기를 얻습니다.

얼굴을 씻고 출근준비를 하면서 올해 꼭 아흔이신 고향에 계신 엄니께 전화를 겁니다.

"엄니! 잘 주무셨어요?"
"오냐! 나는 괜찮다. 어제는 너희 형님들이 와서 거름을 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니께서 '생일밥은 챙겨주더냐'고 먼저 전화를 주셨는데, 올해는 그 기억마저 내려놓은듯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나는 전화를 끊지 못하고 속으로 울음만 삼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데, 밖에 나가시지 말고, 불 뜨뜻하게 넣으시고, 텔레비전 보세요. 조금 있으면 아침 연속극 할 시간입니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막내야! 오늘쯤이 니 생일이 맞제?"
"예. 맞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전화를 내려놓습니다.

아내가 차린 정갈한 생일상을 받는데, 아이들이 생일선물이라며 곱게 포장한 봉투를 내어놓습니다. 새학기가 되어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저희도 정신이 없을텐데….

내가 늦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 점이 있습니다. 우선, 술자리를 찾지 않으니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음이 처음이요, 공휴일에 배 붙이고 TV 를 보지 않아도 됨이 그 둘이요,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고등학생 딸애와 중학생 아들과 '죽기보다 싫어하는 공부'를 같이 하는 동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속옷과 아이들의 축하카드

선물로 받은 속옷과 아이들의 축하카드처음 받아서 놀랍고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네요! ⓒ 한성수


아이들이 아침수업을 위해 학교에 간 후, 나는 방으로 들어와 포장지를 풀어봅니다. 그런데 그 안에 깜짝 놀랄 선물이 카드 두 장과 함께 있습니다. 바로 제 팬티입니다. 색깔도 맞고 평소입던 사이즈의 사각이라 나는 아내 앞에서 속옷 쇼를 연출합니다.

"그리 좋소? 큰애가 야한 속옷을 고르려다가 봐 주었대요."

아내의 볼멘소리에도 나는 껄껄 소리내어 웃습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저 팬티를 사기위해 남자 속옷 가게 앞을 얼마나 서성거렸을까요. 

"빨리 벗어요!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씻지도 않은 새팬티를 입으려고 해요?"

아내의 핀잔에 나는 어설픈 모델역에서 벗어납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의 영향인지 참으로 생각이 열려 있습니다. 내가 겪었던 사춘기의 갈등과 방황도 우리 아이들은 쉽게 견뎌 내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딸아이가 여성이 되던 그날, 나도 열네송이의 장미꽃과 생리대를 쑥스러워하며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딸애는 활짝 웃으며 "아버지, 고마워요. 그런데, 기쁘시죠?"라고 물어서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나는 카드를 읽습니다.

중2, 아들의 카드
TO. 나의 큰나무!
아버지,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해요.
아들, 딸 뒷바라지 하느라 많이 힘들었을텐데 전, 너무 기대에 못 미친 것 같아요.
이제 2학년이니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아버지, 늘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큰나무에 기대선 아들 -

고2, 딸아이의 카드
TO. MY FATHER!
아버지! 아버지의 딸입니다. ㅎㅎ, 조금 쑥스럽네요.
선물도 솔직히 좀 쑥스러워요.(이런 선물 주는 것이 처음이네요.' 처음'이라는 단어가 정말 좋네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꼭 입으세요.
사랑합니데이~ ♡

…중략(공부이야기)…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이라도 가벼워보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PS. 건강이 최고니까 항상 몸관리!!!
아버지가 아프면 저도 아프답니다.
FROM. DAUGHTER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고 강조를 해도, 아이들은 아버지의 생일 축하카드에 어김없이 성적이야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어쩌면 그것 모두가 우리 부모들의 탓이겠지요!

아내는 '생일상은 저녁에 차리겠다'며 '일찍 퇴근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보통 밤 12시에 집에 오는데, 오늘 하루는 공부를 접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생애 최고로 기분좋은 생일입니다. 여러분도 축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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