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원소스 멀티유즈' 이끄는 '고선지'를 주목하라

[문화원형 활용사례 - 4도서·에듀] 소설 <영웅 고선지> 외

등록|2008.03.05 17:24 수정|2008.03.05 18:00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 콘텐츠 형태로 가공, 문화콘텐츠산업과의 접목을 꾀한 문화원형콘텐츠. 역사 다큐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한 장면의 그래픽에서 교육교재, 드라마 소재에까지 우리문화원형을 디지털화한 문화원형콘텐츠가 활약하고 있다. 문화원형콘텐츠 활용 실사례를 분야별로 살펴본다. <기자 주>

글 싣는 순서
1 방송
2 디자인
3 전시
4 에듀·도서_소설 <고선지> 외

▲ 고선지를 활용, 탄생한 2종의 소설책. <영웅 고선지>(사진 왼쪽)와 <실크로드의 왕 고선지> ⓒ 솔지미디어


사라센은 탈라스 전투 이후 약화된 당을 대신해 중앙아시아 지역을 잠식했고, 결국 이 지역은 점점 이슬람화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고선지와 싸리흐가 맞붙은 탈라스 해전은 역사상 최초의 동서양 전투로 기록됐다. 더욱이 이 싸움에서 패한 안서군(안서도호부군) 중에 있던 제지장이 사라센의 포로로 잡히며 당의 제지술이 아라비아로 전파됐다. 이 역시 세계 최초로 동양의 제지법이 유럽으로 전해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종이는 신 중심의 유럽 문명을 인간 중심으로 돌려놓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는 유럽 대륙에 불어닥친 ‘문화대혁명’이었다. - 소설 <영웅 고선지> 하권 중에서

최육상 하트코리아 대표는 2002년 어느 날 모교 은사님을 찾았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우리 문화원형의 디지털콘텐츠화 사업’(현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화 사업’)에 적당한 소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면 소재는 많지만 특별한 소재를 찾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 스승은 제자에게 기다렸다는 듯 ‘고선지’ 자료를 내놓았다.

“초등학교 때 ‘고선지 위인전’을 읽어 고선지를 알고 있던 터라 사업화에 대한 감이 바로 오더라고요. 운명적인 만남이었지 싶어요.”

일반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 고선지. 하지만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이 20세기 초 파미르 고원 등을 탐사한 후 “고선지야말로 나폴레옹과 한니발을 뛰어넘는 위대한 장군”이라 극찬한 바가 있듯 세계사와 궤를 같이한 거대한 인물이었다.

고선지는 고구려 멸망 후인 700년대 초·중반 당나라에서 활동한 고구려 유민 출신 장군이다. 갖은 질시와 모함에도 굴하지 않고 당나라 서쪽을 총괄하는 안서도호부의 제1인자로 오르며 인간승리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로, 당시 고구려인을 개나 돼지쯤으로 취급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분명 특출난 존재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선지 장군의 특별함은 이뿐이 아니라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인류 최초로 5천m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을 정벌한 점, 전략과 지략을 갖춘 덕장으로 72개국을 다스리며 실크로드의 왕으로 우뚝 선 점, 역사상 최초의 동서양 전투를 치르며 제지술을 유럽으로 전파해 유럽문명을 깨우는 계기를 만든 점, 당 현종과 양귀비, 안록산, 이븐 샤리프 등 당대의 영웅들과 겨루면서 광활한 대륙을 호령한 점 등은 세계사의 위인으로 평가하고도 남을 업적이에요.”

▲ 고구려 유민에서 당나라 안서도호부의 1인자로 등극한 인물 고선지. 그의 이야기가 기록된 <신당서>다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최 대표는 즉시 사업에 착수했다. 고선지에 관한 역사기록을 철저하게 수집, 분석해 인물 고선지의 삶을 일대기로 풀어놓은 것은 물론 실크로드 관련한 사진과 동영상 자료 등 당시 역사적 자료를 복원했다. 고구려 관련 고분벽화와 무기, 건축, 복식 등 다양한 분야의 고구려 역사 유물도 함께 디지털 그래픽으로 복원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 대표는 깊은 아쉬움도 느꼈는데 자료의 대부분이 중국 것이었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균형을 잃지 않는 일이 필요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데,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등 중국의 시각에서 과연 고선지를 제대로 조명했을까 싶었죠. 다행히 베이징대학과 사회과학원 등의 현직 중국인 교수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공동연구를 통해 고선지에 관한 역사해석 등 개발자료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 충분한 ‘스타성’을 가진 인물을 사업화할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는 소설이었다. 최 대표는 처음부터 2종을 기획했다. 황인경 작가의 <영웅 고선지>(전 3권)는 8세기 실크로드를 배경으로 시야를 넓히고, 차경화 작가의 <실크로드의 왕 고선지>(전 2권)는 철저하게 고선지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5권을 모두 읽으면 당시의 역사 배경과 고선지의 삶을 동시에 알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이었다”고 최 대표는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출간된 소설 <영웅 고선지>가 화제였다. 문화원형콘텐츠가 직접적인 소스로 활용해 만들어진 소설로는 처음인 이 작품은 <소설 목민심서>의 황인경 작가가 집필해 큰 화제가 됐다. <소설 목민심서>는 1992년 출간 이후 500만 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 고선지가 개척한 8세기 실크로드 지도. 하트코리아에서 디지털화한 지도다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동서양 최초의 전투를 치르며 처음으로 제지술을 유럽에 전파시키는 등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할 수 있는 인물임에도 아직까지 고선지를 정통으로 다룬 소설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출판업(솔지미디어)을 등록한 뒤 드라마와 영화 제작 등을 염두, 철저하게 기획했습니다.”

황인경 작가를 섭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역시 일찍이 고선지에 관심을 갖고 집필에 매달려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 풍부한 취재가 필요한 역사소설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자료가 희박한 인물 고선지는 분명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다행히 하트코리아의 개발 소스들이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황 작가는 하트코리아의 문화원형콘텐츠에 대해 “고선지는 물론이고 그 외 등장인물의 성격분석을 포함한 줄거리, 그밖에 실크로드 관련 사진과 동영상 자료 등도 작품을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 “전문 교수들이 정리한 자료라 믿고 작업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높이 샀다.

▲ 고선지 이야기는 만화책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 솔지미디어

최 대표의 사업은 처음부터 밑그림의 크기가 달랐다. 그는 이름하여 ‘고선지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설(출판)과 연동해 영화,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문화콘텐츠산업 전반에 걸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마치 고선지가 일군 실크로드와 같은 이 작업을 위해 그는 2004년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과 끊임없는 미팅을 가졌다.

고선지 소설책 2종이 나온 데 이어 3월 중에는 만화책이, 6월경에는 동화책이 각각 출판될 예정이다. 또, 내년 상반기 방영을 목표로 드라마가 기획 단계에 있으며, 2009년경에는 스크린을 노린다.

최육상 대표는 “드라마와 영화를 (번역판) 원작 소설과 함께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안록산, 양귀비, 당현종 등 걸출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선지의 영웅적 일대기가 동서양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만한 매력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류와 고구려 사극 열풍도 힘을 보탤 거라 믿고 있다.

“고구려 사극과 한류 열풍 등 우리 것의 세계화가 주목받는 때, 그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 고선지라고 판단했어요. 신분의 제약과 온갖 핍박을 이겨내고 1인자에 오르는 전형적인 영웅의 삶이나 최초의 동서양 전투 등 극적인 시대 배경은 동서양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소설책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하는 것을 구상했어요. 이름하여 ‘고선지의 세계화’ 전략이죠.”

▲ 고선지와 당대 인물들을 캐릭터로 개발한 모습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그는 ‘잘 키운 문화원형 하나, 열 반도체 안 부럽다’고 말한다. 인문학과 디지털이 만나 개발된 문화원형과 관련 사업, 그에 따른 수익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력을 갖지 않는가. 그가 고선지 관련 사업을 벌이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다. 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매년 10조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고 아랍에미리트 등 다른 나라에 분관을 수출하면서도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라. 반만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고선지 사이트(www.kosunji.com) ⓒ 하트코리아


“현재 뉴욕에 본사와 전세계 70여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중화권 방송사인 NTDTV(New Tang Dynasty TV, 신당인TV)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세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요. ‘당나라를 배경으로 활동한 고선지’라는 공통분모를 활용하면 방송국을 통해 드라마와 영화, 원작소설 수출 등 세계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이에요. 최종 목표는 우리가 만든 고선지와 양귀비 캐릭터 등을 중국, 미국, 일본 등에서 파는 것입니다.”

▲ 황인경 작가 ⓒ 솔지미디어

- <영웅 고선지>는 15년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고선지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나?
“세계사에 명성을 떨친 고선지의 업적을 우리가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래 전부터 작품 구상을 했었다. 알프스를 넘었던 나폴레옹보다 파미르고원을 가로질렀던 고선지 장군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고구려의 황손으로 광활한 대륙을 호령한 고선지 장군을 세계에 자랑하며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었다.”

- 집필을 앞두고 가장 고민스러웠던 점이 있다면?
“출생 연도도 모를 정도로 고선지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았던 점이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것이 역사소설일진대) 역사적 사실과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고선지의 역사 기록에 빈 공간이 많아 상상력만으로 어떻게 채울까 고민이 많았다.”

- 충분한 취재가 필요했겠다
“그런 점에서 하트코리아의 문화원형콘텐츠 자료가 도움이 많이 됐다. 우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역사 해석이 가장 큰 도움이 됐고, 고선지는 물론이고 그 외 등장인물의 성격분석을 포함한 줄거리, 그밖에 실크로드 관련 사진과 동영상 자료 등도 작품을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전문 교수들이 정리한 자료라 믿고 작업할 수 있었고.”

- 어떤 자료가 가장 인상적이었나?
“고선지에 대한 정확한 역사자료들을 두툼한 책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는 점이다. <신당서> 등 많은 역사서들에서 고선지의 활약상을 연도별로 뽑아내 정리한 자료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혼자 수집하고 연구했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 소설 <영웅 고선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구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덕장 고선지’였다. 당나라 장수냐, 고구려인이냐는 구분보다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광활한 서역 72개국을 점령하면서도 무자비한 폭력과 약탈을 일삼지 않은 고선지의 인물됨을 부각시키려 했다. 당나라 사람들의 숱한 질시를 묵묵히 이겨내고 고구려 유민은 물론이고, 점령지 백성들까지 덕으로 다스렸기에 실크로드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 집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
“고선지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당 현종의 명에 의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역사 기록이기는 한데, 중국 역사서라 그대로 믿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역사 기록을 무시할 수는 없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어서 부담스럽진 않았나?
“고선지에 대한 기록은 지난 1978년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30년 남짓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고선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게 정말 고민스러웠다. 아마도 당나라 장수로 살다 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인류 최초로 파미르고원을 넘은 사람이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고선지의 역사적 과업을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독자들에게 한 마디?
“요즘 역사 드라마는 항상 고정 시청자를 갖고 있지만 끝나고 나면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역사소설은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어 독자들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것 같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일수록 역사의식이 더욱 분명해야 한다. 독자분들이 적극 격려해주신다면 ‘고선지’가 이룬 업적처럼 우리도 소설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재미있는 디지털 한국사 이야기 Ⅰ·Ⅱ>. Ⅰ편(사진 왼쪽)은 초등용, Ⅱ편은 중·고등 과정이다 ⓒ 시그이

“강단 있는 서희의 외교 담판을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우리땅 독도의 역사를 재미있는 퀴즈로 풀어나가니 지루하고 답답했던 역사 수업이 한결 즐거워졌습니다.”

도서와 에듀테인먼트 분야에서 문화원형은 더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우리 문화원형을 2D와 3D,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생생하게 살려낸 문화원형콘텐츠가 2006년 국정 역사교과서 속 이미지로 삽입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국사교과서 부교재로 만들어져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일제히 배포된 것.

이름하여 <재미있는 디지털 한국사 이야기 Ⅰ·Ⅱ>. Ⅰ편은 초등용, Ⅱ편은 중·고등 과정 내용을 담고 있으며, CD 형태로 일선 교사들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일선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부교재를 개발했던 디지털선일 조규보 이사(현 시그이 대표)는 “일선 현장의 반응을 설문 조사한 결과 활용도, 만족도 평가가 우수하게 나왔으며, 수업을 진행했을 때 학생들의 반응은 ‘흥미있다’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특히 인기 있는 콘텐츠는 탈 만들기, 국악 연주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과 중국 동북공정과 같이 사회적으로 이슈화한 역사왜곡과 관련한 부분들. 초등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명돼 있어 큰 인기다.

이 부교재는 ‘주입식’이 아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교육을 목표로 지난 2005년도에 기획됐다. 우리 역사를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새로운 개념의 ‘멀티미디어 교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 대표는 “<재미있는 디지털 한국사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교양 자료”라며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정서를 제공하는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로서, 교육 이상의 감동을 전달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