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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권력', 이웃 할머니에게 배우다

동네 공동 빨랫줄에 '내 미역' 한 가닥 나부끼네요

등록|2008.03.06 11:20 수정|2008.03.06 11:20
바다 채소(미역)는 피를 맑게 해서 머리도 맑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바다 채소, 미역이 이즈음에는 너무 흔하다. 시장마다 가격 차이가 있지만, 1000원어치만 사도 너무 많다. 생미역은 금방 조리해 먹지 않으면 안된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고 안심하다가는 버리게 되는 게 생미역이다.

동구(洞口)의 좌판 채소 장수 할머니의 청에, 미역을 두 묶음이나 샀다. "할머니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어떻게 먹어요 ? "하고 울상을 지으니, 할머니 말씀이, " 아무 걱정 말아, 동네 빨랫줄에 말렸다가 보관한 뒤 여름에 미역 냉국 해 먹으면 좋아. 미역은 피를 맑게 해서, 머리도 맑아져" 하신다. 그래서 나도 공동 빨랫줄에 미역을 빨래처럼 말렸다.

나도 미역 좀 말리면 안될까요 ?동네 빨랫줄에 가득 널린 미역 ⓒ 송유미



할머니들 생활을 화초처럼 가꾸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얘야, 사랑도 늘 화초처럼 가꾸어야 하지만, 생활이야말로 화초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야 사는 재미가 새록새록 난다"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직접 만들지 않아도 마트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든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는 행복감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을, 요즘은 이웃 할머니에게서 참 많이 배운다.

가만히 지켜보면, 어떤 물건도 함부로 버리는 것이 없는 이웃 할머니들. 빈터만 보시면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가, 그것을 팔다가 다 못 팔면 잘 갈무리 하신다. 내가 직접 씨를 뿌리지 않았지만, 이웃 할머니들이 가꾼 채소들을 사 먹으면서, 할머니들에게서 참 많은 '생활의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얻는 기쁨은 내 생활의 권력이 된다.

기장 미역이야, 좀 사다 말려미역이 얼마나 몸에 좋은데. 피가 맑아져... ⓒ 송유미


제 아무리 훌륭하고 제 아무리 진실이라 할지라도 실생활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기쁨과 권력>-'반 다이크'

바람에 날리는 미역들 싱싱한 행복의 냄새 ⓒ 송유미



공동 동네 빨랫줄에 나부끼는 행복 냄새

동네 할머니들이 힘을 합해 만드신 공동 빨랫줄. 이 공동 빨랫줄에는 빨래만 널리는 것이 아니다. 가을에는 고추, 호박 죽순이, 겨울에는 미역, 시래기가 바람에 나부낀다. 내 미역도 몇 가닥 바람에 보기 좋게 나부낀다. 아, 생활의 행복한 권력, 이런 것이 아닐까. 이래서 할머니들 힘든 줄 모르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화초처럼 생활을 가꾸시는가.

내가 말린 시래기겨우내내 집안에 옛 풍경 감상도 하고, 한가닥씩 뽑아서 된장찌개 끓여 먹었는데, 아직 많이 남았어요. ⓒ 송유미



생활의 기술, 큰 맛의 기쁨

지난 겨울에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혼자 먹기에 너무 많다 하셔서 무청을 주셨다. 할머니가 시래기 엮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내 방법으로 엮어서 햇빛 많은 베란다에 말렸는데, 할머니께서 그늘에 말려야 색깔이 좋다고 해서 생각 끝에 방안에 말렸다.

혹시나 썩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주 통풍을 해 주고, 전기 드라이로 가끔 말려주었다. 그랬더니 색깔이 내가 말려서인지 너무 곱다. 물에 오래 불렸다가 삶아서, 된장 한 숟가락 넣고, 고등어 통조림을 넣어서 끓였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동네 유치원 아이들도 할머니에게 배웠나봐요 ?비닐하우스 재배도 배우는 아이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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