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하드려요......모두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며...박수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 ⓒ 이명화
신년 초부터 부모님 집에 불이 나서 아래채를 다 태워버렸고 거기 있던 가구와 옷, 가전제품, 책 등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어려운 일을 겪은 터라 부모님 마음이 요즘 말이 아니다. 집 한 채 태우는 것도 모자라 이웃집까지 불이 번져 옆집까지 다 태우는 일까지 당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 엄마, 아버지두 분이 손을 잡고 케이크를 자르고 계신다. ⓒ 이명화
여느 때 같으면 아래채에서 주무셨을 부모님은 그날 저녁 따라 위채에서 주무셨고, 뭔가 탁, 탁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불이 났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갔을 땐 이미 불길이 크게 번져 있었다. 소방차를 불렀지만 시골이라 소방차는 집이 다 타버리고 난 뒤에야 도착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경찰 감식반에서 나와 이틀 동안 감식을 했고 부모님은 이웃집에 돈으로 보상을 해주어야 했다.
신년 초부터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착잡했지만 엄마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이번 해엔 좋은 일이 많으려나 봐요,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겁니다"하고 위로하자 "암,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렇고 말고"하고 말씀하셨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엄마의 칠순은 조촐하게 지내기로 했다.
▲ 엄마~칠순을 축하드려요... ⓒ 이명화
▲ 함께 모인 자리에...동영상, 사진찍기에 몰두해 있는...ㅋㅋ ⓒ 이명화
식탁 앞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또 준비해 온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곡을 불렀다. 엄마의 칠순을 축하하는 모임에 카메라와 비디오를 찍느라 바쁜 나와 남동생, 그리고 넷째 동생 남편, 이렇게 사진 찍는 사람이 많으니 바로 밑에 재부는 ‘기자가 너무 많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조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뛰어다니느라 이마엔 땀이송글송글 맺혔다.
▲ 엄마~~~... ⓒ 이명화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인 기형도의 이 시를 읽으면 아주 어린 시절, 엄마를 기다렸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어둠이 찾아드는 저녁, 엄마를 기다리다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갔던 기억, 아주 작은 섬에 잠시 살았을 때, 배 타고 도시에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다, 비 오고 바람 불던 날 미끄러운 오솔길을 따라 멀리까지 나가 기다렸던 날들…. 돌아오신 부모님이 밀가루 한푸대와 먹거리 등을 사 오셨던 기억이 새롭다.
▲ 함께 하는 시간...... ⓒ 이명화
혼자 서 있는 모습은 참 쓸쓸하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어서 아버지가 서 있는 자리에 엄마가 그 옆에 가 서니까 두 분의 모습이 환했다. 홀로 있는 모습은 늙고 쓸쓸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서니까 일시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렇구나, 함께 함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두 분이 지금까지 함께 계셔 주어서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젊을 때야 서로에게 부족한 점과 잘 못하는 점들 때문에 많이들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나이 늙어서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의 칠순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모인 가족들이 부모님의 눈길 아래서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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