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치매 어머니가 쓴 '삐뚤삐뚤' 글씨

1년 만에 이룬 꿈...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등록|2008.03.06 16:43 수정|2008.03.06 16:46
신경성 치매(일명 노인성치매, 알츠하이머)의 특징은 '세포의 자살'로 일컬어지는 뇌세포의 망실이다. 뇌세포가 파괴 되는데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흐트러진 퍼즐 조각처럼 기억이 흩어지고 합리적 사고와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다. 이 중 쓰기와 읽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포함된다.

어머니가 1주 쯤 전에 글씨를 쓰셨다.

오랫동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던 글쓰기를 어머니가 해 내신 것이 여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책 읽기를 여기 오신지 서너 달 만에 회복하셨는데 쓰기는 끝내 불가능해 보였었다. "다 까먹고 모른다"고 하시거나 "이 나이에 그까짓 거 배워 뭐해?"라면서 글 쓰는 것을 외면하셨다. 실제 다 잊어 보였다.

지난 주, 아주 우연한 기회가 왔다.

어머니 이야기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함양군수'다. 평생을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나고 자라서 시집갔으니 함양군수라면 어머니 생에 최고의 권력와 위세를 가진 상징적 인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 집에 있는 귀한 것들은 다 '함양군수'가 보낸 것이고, 자식을 내 세우고 싶을 때도 '함양군수 상'을 받았다고 하실 정도다.

무슨 얘기 끝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 컴푸타도 함양 군수가 사다 줬고, 마늘 찧는 믹스기도 다 함양군수가 사다 준기라. 그래서 내가 시원한 삼배적삼을 한 벌 지어 줄락 카는데 시간이 없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때다 싶어서 바로 종이와 볼펜을 꺼내 놨다.

어머니 글씨고향마을 이름과 식구 이름들이다. ⓒ 전희식

"어머니. 함양군수가 전화가 왔는데요. 컴푸타랑 잘 받았냐고 전화가 왔어요."

"아하! 그래? 아이구 군수영감이 전화까정 다 했구나. 그래 잘 받았딱켔나?"

"예. 그런데요 어머니. 군수님한테 편지 좀 써 보내요. 제가 우체국에 부칠 테니까 편지 좀 써 보내요."

이 순간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글씨를 쓸 것 같은 직감이 있었다.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어머니는 글씨를 썼다.

한 자, 한 자… 글자를 쓰시는 모습을 보며 걸음마를 막 시작하는 갓난애 추임새 넣듯이 옆에서 응원을 했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글씨 잘 쓰시네에. 군수영감이 좋아 하시것네."

"그렇지이. 안 까묵고 잘 쓰시네에."

한자 쓰고 나를 쳐다보고 또 한자 쓰고 내 판별은 기다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쓴 글씨가 총 다섯 개였다.

내가 태어난 고향마을 '봉전'과 우리 일가친척 모두의 고향 '함양', 그리고 내 이름을 아주 정확히 쓰셨다.

어머님 이름과 큰 형님 이름은 철자가 하나씩 틀렸다. 어머님은 '님'이 아니고 '임' 인데 이것을 틀렸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동안 어머니가 써 오시던 글자는 분명 '임'이었다.

큰형님 이름도 '항'이 아니고 '행'인데 모음이 하나 틀린 셈이다.

어머니 쓰신 글자가 맞고 틀린 것을 두고 뭐라 분석할 능력에 내게 없기도 하려니와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도리어 내 관심은 올해 어머니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고 주문처럼 외는 소원처럼 '벌떡 일어나 쫒아 댕기는' 기적에 있다.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니 그 날이 오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카페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http://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똥꽃> 이라는 책이 나왔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