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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델, 고뇌하는 인간내면에 혼을 불어넣다

'활 쏘는 헤라클레스 부르델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8일까지

등록|2008.03.14 09:47 수정|2008.03.14 09:54

▲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활 쏘는 헤라클레스 부르델전' 대형홍보물. 아래는 1층 전시장 입구 ⓒ 김형순


'활 쏘는 헤라클레스 거장 부르델전'이 일본 순회전에 이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8일까지 열린다. 평생 심혈을 기울인 베토벤 연작을 비롯하여 조각 75점과 드로잉 및 수채화 48점 등 총 123점을 선보인다.
 앙투안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은 현대조각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프랑스 소도시인 몽토방에서 태어났다. 조각가 계보로 보면 그는 자코메티(1901~1966)의 스승이면서 동갑내기 조각가인 마이욜(1861-1944)과 함께 로댕(1840~1917)의 제자이고 브랑쿠시와 헨리 무어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툴루즈 미술학교에 이어 프랑스의 명문인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미술학교에 2등으로 입학했으나 학교의 기존 학풍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가 자기신념이 강한 조각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로댕의 수제자로 15년간 그의 공방에서 생활했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그만의 세계를 일궈낸다. 고대 그리스와 가장 프랑스적이라고 하는 중세조각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조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였다. 그래서 로댕으로부터 '미래의 등불'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활 쏘는 헤라클레스', 부르델의 자화상일수도 

▲ '활 쏘는 헤라클레스' 248×240×120cm 브론즈 1909. 도슨트가 관객들에게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1909년은 부르델이 로댕의 작업실에서 나온 지 1년 되는 해로 독자적 행보를 시작하는 중요한 해이기도 하다 ⓒ 김형순

 '활 쏘는 헤라클레스'는 1909년 그의 전성기 작품으로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는 자의 기상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물질과 정신을 균형감 있게 뒤섞어 최후에 승리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작가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일 수도 있다. 이처럼 부르델 조각의 많은 주인공은 자신과 싸우며 고뇌하는 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이 이전보다 근육도 더 과장되고 자세도 더 격정적으로 보이는 건 불멸의 의지를 가진 영웅과 그런 유형의 사람에 대한 추앙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 진정 인간이 뭐고, 산다는 것이 뭐고, 예술이 뭔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 로댕 '키스' 대리석 1901-1904. 부르델 '밤과 낮' 대리석 1903 ⓒ Rodin & Bourdelle

 그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그의 스승인 로댕과 비교해 보면 더 흥미롭다. 위에서 보듯 거의 같은 시기, 비슷한 주제이나 차이를 보인다. 로댕은 감정이입을 통해 조각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파리출신답게 우아하고 세련되게 표현했다면 부르델은 엄숙한 형식미를 통해 시골출신답게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투박하게 표현했다. 다시 말해 로댕이 시적 정신과 극적 연출을 통해 회화적 분위기를 살렸다면, 부르델은 기하학적인 정신을 기반으로 건축적 공간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할 수 있다. 부르델의 고전주의 풍과 앵그르의 신고전주의  

▲ '앵그르 흉상' 80×42×33cm 브론즈 1908. 이 여자 관객은 마치 앵그르와 교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김형순

 많은 사람들이 부르델의 조각에 등장하지만 앵그르(1780-1867)가 그의 모델이 된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부르델의 고전주의 풍과 앵그르의 신고전주의는 상통하는 점이 많았나보다. 둘은 동향(同鄕)인데다 앵그르는 또한 여성의 육체미를 조각적으로 완벽하게 구사한 화가였다. 앵그르는 당시 낭만파인 들라크루아와는 라이벌 관계였는데 이런 점을 보면 앵그르는 수구적이고 들라크루아는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르델의 취향은 전위적(avant-garde)이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소박한 아케이즘(archaism 古風, 古拙)에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비극적 감정 

▲ '메트로폴리탄 베토벤(습작)' 53×56×47cm 브론즈 1902.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베토벤' 54×44×33cm 브론즈 1905(아래). 눈은 멀었으나 신의 소리를 들으며 몰아지경을 빠진 작곡가의 장엄미가 느껴진다. ⓒ 김형순

   부르델은 베토벤의 흉상이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나 되듯 평생 여러 모습과 다양한 버전으로 작업해왔다. 같은 예술가로서 부르델은 베토벤이 '고뇌를 넘어 환희'로 도달하기까지 그 과정에 공감하면서 창작하는 자의 번민과 고독을 담으려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르델은 조각가나 작곡가는 다를 것이 없다며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조각가는 양감(量感)으로 조형하고, 음악가는 음조(音調)로 작곡할 뿐 그 근본에 있어서 음악과 조각은 같다." 베토벤은 "나는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고 미래에 존재할 모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부르델은 바로 그런 그의 예술혼을 브론즈에 담았다. 그 속엔 삶에 대한 비극적 감정이 보이지 않게 스며 있고, 숭고하고 영웅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다. 생의 고뇌자들, 시인과 소설가 

▲ '사포(제2습작)' 브론즈 220×95×143cm 1887-1925. 부르델은 사포를 남성적 여성으로 투박하게 조각하여 눈길을 끈다. ⓒ 김형순

 그리고 그리스 최초의 여성시인 사포(Sappho·기원전 600년경) 역시 부르델 조각의 주인공이다. 그리스 고전을 좋아하는 그로선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녀는 솔직하면서도 대담하고 감미로우면서도 에로틱한 연시(戀詩)를 많이 발표한다. 또한 시대의 터부를 깨는 레즈비언의 원조로도 유명하다. '질투'라는 그녀의 시가 하프소리와 함께 관객들 귀가에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 그는 내겐 신과도 같은 존재/ 그가 너와 마주 앉아서네 달콤한 목소리에 홀리고/ 네 매혹적인 미소에 흔들리면  내 심장은 콩알만큼 작아지고/ 널 흠칫 보면 내 목소리엔 힘이 빠지고내 혀는 굳어져 할 말을 잃고/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 '아나톨 프랑스' 70×46×37cm 브론즈 1919. 부르델과 아나톨 프랑스가 같이 찍은 사진 1919(아래) ⓒ 김형순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1844~1924) 또한 그의 조각 속 주인공이다. 그는 192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로 부르델과 친했다. 그의 장편소설 '타이스'는 마스네가 명상곡으로 작곡하여 더 유명하다. 그의 단편을 읽어보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동정과 따뜻한 눈길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문장 곳곳에 재치와 유머가 넘친다. 부르델은 사람의 속을 헤아릴 줄 알고 꿰뚫어볼 줄 아는 그의 혜안에 반해 가까운 친구가 된다. 위에서 보듯 부르델은 그를 인간적 체취 물씬 풍기는 푸근한 이미지로 부각시킨다. 부르델에게 영감을 준 여인들 

▲ '과일' 226×102×57cm 브론즈 1902-1911. '베일의 춤(유희)' 70×55×26cm 브론즈 1910(아래) ⓒ 김형순


이제 끝으로 부르델과 여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위 '과일'은 원숙기 작품으로 이 전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아마도 신화나 성화 속 여인보다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여인을 조각하려 했던 마이욜과 극도의 단순화를 추구한 세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여성의 몸에 흐르는 에로스의 풍부함과 과일이 주는 열매의 풍성함이 상응하고 있다. 이런 조각에 영감을 준 것은 바로 그의 제자이자 두 번째 부인 클레오파트르 세바스토스였다. 그녀는 그리스 출신으로 부르델에겐 구원의 여신이었다. 그녀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향수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1909년 이후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여자는 바로 미국과 러시아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과 니진스키이다. '베일의 춤'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 제작되었다. 그의 긴장감 넘치는 조각에 자유분방한 몸의 언어를 얹혀 그의 작품세계는 더 폭넓고 깊어졌다.
덧붙이는 글 서울시립미술관 seoulmoa.seoul.go.kr·02-2124-8800
관람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평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8시까지(주말. 공휴일) 월요일 휴관
공식홈페이지: http://www.bourdelle.co.kr 성인 9,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관람문의 02-724-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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