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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책 읽기 습관은 어릴 때부터

[나만의 자녀 교육법 ①]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작한 '책 읽기'

등록|2008.03.07 17:46 수정|2008.03.07 18:42
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공교육과 가정교육만으로 일구어낸 일입니다. 대학에 입학했다 하여 '성공이다 실패다'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는 하나의 주체로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에서는 '성적'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써 '나만의 자녀 교육법'을 몇 차례에 나눠 싣도록 하겠습니다.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 주>

책.동화책을 읽던 아이가 이젠 아비가 읽는 책을 소화할 나이가 되었다. ⓒ 강기희


아이는 1989년 3월생이다. 음력으로 올렸으면 7살에 입학을 해야 했지만, 양력으로 신고하는 바람에 8살에 입학을 했다. 4살 때부터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6살 때 유치원마저 졸업하고 말았다. 더 다닐 수도 있었지만 3년간이나 다닌 탓에 유치원 가는 것이 지겹다고 했다.

책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되어야 해

그 일 역시 부모의 욕심이거니 하여 7살이 되면서 1년 동안은 집에서 놀았다. 그때부터 아이의 책 읽기는 시작되었다. 아이가 책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은 서너 살 무렵부터. 간혹 '레고' 같은 조립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지만 진득하게 가지고 노는 것은 아무래도 책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1년 동안 나는 시간만 되면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의 헌책방을 찾거나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들을 순례했다. 대형 서점에 가는 날은 내가 구할 책이 필요한 날이거나 근처의 출판사 등에 볼일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아이를 서점 귀퉁이에 놓아두고 할 일을 했고, 그런 때 아이는 아비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서점 아가씨에게 '저 아이 좀 챙겨주세요' 라는 부탁을 했기에 아이에 대한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어쩌다 볼 일이 길어질 때면 서점에 전화를 걸어 아가씨에게 '두 시간 후에 갈 것'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런 일도 익숙해지다 보니 아이나 서점 측에서나 서로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헌책방을 순례하는 날은 어쩌다 돈이 생긴 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헌책방이 많아 다 둘러 보는 데만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다. 헌책방에 가면 한 번도 펴보지 않고 버려진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헌책방에서 아이가 볼 수 있는 책들은 5백원에서 1천원 정도면 살 수 있었기에 마음껏 고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아이의 책과 내가 읽을 책을 찾았고, 아이는 만화책을 고르느라 신이 나 있었다. 당시 인기 있던 만화는 <드래곤 볼> 시리즈로 아이는 헌책방에서 집에 없는 것을 찾느라 먼지 속을 헤집었다.

헌책방에 가는 날은 아이도 신명이 났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원하는 만큼 고를 수 있는데다 만화책까지 덤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이 만화책에 빠져드는 것을 염려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는 만화책을 통해서 얻는 지식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산 교육장, 헌책방

아이와 함께 몇 군데의 헌책방을 돌면 책이 양손 가득이었다. 아이 책만 해도 50여권이 넘었다. 이 정도면 아이는 한 달을 신명나게 논다. 그 책을 들고 한 시간 가까이나 걸어서 집까지 왔다. 버스나 택시를 타도 되었지만 대부분은 가지고 있는 돈을 책 사는데 다 썼기 때문에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면 책을 걸레로 닦는 일부터 했다. 아이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먼지를 닦아냈다. 먼지를 닦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깨끗해진 책을 보면 굳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포만감이 들었다.

비록 헌책방에서 산 책이지만 나는 속표지에 '언제 어디에서 아빠가'라는 글을 적어 두었다. 나중에라도 그 책을 보면 아이와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기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책에 사인해서 건네주면 아이는 가장 읽고 싶은 책부터 집어들었다.

어떨 때는 책을 정리하다 보면 집에 있는 책을 또 사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가 먼저 알아차리며 "어쩌지요?" 하면 나는 "친구들에게 선물하렴" 한다. 그러면 아이는 "친구들은 학원 가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도 없대요" 한다.

"너도 친구들처럼 학원가고 싶냐?"
"아뇨, 그 시간에 집에서 책 읽는 게 좋아요."

이미 책 읽는 즐거움이 뭔지 알아버린 아이는 천진하게도 그렇게 대답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학원가는 시간만큼은 집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밖으로 나가 본들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아비를 만난 탓에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 것을 빼곤 학원은커녕 태권도나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등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 무렵 아이의 교육에 관한 것은 공교육에 맡겼다. 나는 대신 한 달에 두어 차례 아이를 데리고 헌책방을 순례했으며, 대형 서점에 데리고 가서 '살아가면서 읽을 책이 이렇게 많다'라며 책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거나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아비에게 물어왔다. 처음 몇 번은 이런저런 예를 들어 가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아비가 설명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꽂이.아이의 방은 도서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 강기희


아이에게 국어사전 넘겨주며 "사전이 아비보다 더 정확해"

사전을 스스로 찾게 되면 낱말 하나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뜻까지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나는 내가 사용하던 두꺼운 국어사전을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이제부터 모르는 말이 나오면 사전 찾아봐라. 사전엔 아비가 설명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나와 있단다."

그때부터 아이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사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이와 사전은 그렇게 하여 친구가 되었으며, 아이는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두 번 다시 아비에게 물어오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것이 책에 있다' 라고 자주 말해 주었다. 책이란 것은 시간 날 때 펼치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생활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도 해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읽은 책은 1천여권이 넘는다. 대단한 독서량이다. 나는 그 책을 거의 헌책방에서 구입했고, 나머지는 신간을 구입하거나 출판사를 찾아가 책 동냥을 했다.

아이의 경우 헌책과 새책을 동시에 놓아두면 만화책이 아닌 경우 헌책을 먼저 펼쳤다. 새책은 어쩐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아이는 신간을 사주면 당장 읽지 않고 한 달 정도 책꽂이에 둔 다음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읽고는 했다.

아이의 책 읽기 습관은 부모가 함께 만들어야

주변을 살펴보면 어른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만 하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잘 시키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어른 중에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게 되면 '집중력이 생기고, 지식을 쌓고, 책상에 앉아 있는 버릇을 키울 수 있다' 라는 등등의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정작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근본이 되는 철학을 만들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효과가 있음은 간과한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은 어른으로 성장하여서도 그 삶이 곧고 바르다. 성장하면서 잠시 다른 길로 빠지는 사람이라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속도가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는 빠른 것을 많이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쌓은 '양심'과 '정신'이 그런 일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어떤 집의 이야기이지만 그 집은 아이들에게 책 읽기에 대한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 만화책을 선택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책을 권하면 금방 질력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선 만화책 한 권을 볼 때마다 1백원씩의 돈을 용돈으로 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용돈을 받기 위해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중엔 동화책까지 그렇게 읽혔다고 한다. 어느 정도 책 읽기가 즐거워졌을 땐 아이들이 받은 용돈을 모아 서점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다.

책 읽기는 습관이다. 아이에게 늘 말한 내용이지만 나는 '매일 밥 먹지? 책도 그렇게 밥을 찾아 먹듯 스스로 찾아 읽어야 하는 것이야' 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아이에게 지금도 하는 말이 있다면 책을 손에서 놓지 말라는 것이다. 학교 공부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 책에 관한 것만큼은 지금도 챙겨준다.

어쩌다 서점에 가게 되면 나는 스무 살의 나이에 읽어야 할 책을 찾는다. 그런 책을 발견하면 아이에게 선물할 마음으로 들뜨는 것도 사실이다. 더러는 문인들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아이의 이름이 적힌 책을 받아 온다. 저자에게 사인과 함께 아이에 대한 덕담도 부탁한다. 그 책이 아이에게 영혼의 비타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도현 시인은 아이에게 선물할 자신의 시집에 "아비 말 듣지 마라, 아비 말 들으면 아비 꼴 난다" 라고 썼고, 김준태 시인은 아이에게 "봉양리 흙으로 태어난 아들아" 라며 장문의 글을 책 속지에다 썼다. 그런 일들이 아이에게 어떤 영양소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지금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산다.

이 글을 읽고 "책 읽는 것 하고 대학 시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혹은 "그래서 아이가 수능시험을 잘 쳤다는 거야? 뭐야?" 라고 결론만 바라는 학부모께 아이의 말을 첨언한다. 수능을 끝낸 아이에게 "책읽은 것들이 시험에 도움이 되더냐?" 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러지 언어영역은 공부를 크게 하지도 않았는데 1등급 나왔어요."

이쯤되면 책읽는 목적이 수만가지 정도있다면 그 중에서 하나는 성공한 것 아니던가. 그러나 결론을 먼저 생각하고 출발한 계획은 어긋날 수 있으니 아이를 건강하고 깊이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책 읽기를 선택하면 직접 경험한 바 그 후회는 없다.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나만의 방법

1. 책은 전집으로 사지 말고 낱권으로 산다.
어른들도 경험한 일이겠지만 전집류의 책은 한두 권 읽다가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책읽기에 대한 부담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임을 인식해야 한다.

2. 집안을 도서관으로 만들자.
아이의 책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아이들 키에 맞는 책꽂이를 준비한다. 그 책꽂이엔 아이가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많게 한다. 언제든지 보고 싶은 책이 준비된 방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도서관 역할을 한다.

3. 아이와 함께 책방을 다닌다.
책을 구입할 때는 반드시 아이와 함께 간다. 단순히 책을 고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한다. 책을 고를 때는 아이에게 몇 권 정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가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고른다.

4. 책을 살 때는 몇 권씩 산다.
책을 한 권씩 사면 아이가 책 읽기에 대한 흥미를 지속시킬 수 없다. 가능하면 10권 정도씩 구입해 그 중에서 절반이라도 읽게 만들어야 한다. 읽지 않은 책은?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후에라도 꼭 읽는다.

5. 헌책방을 즐겨 이용한다.
헌책방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찾아보면 제법 있다. 가격이 저렴한 장점도 있지만 먼지를 털어가며 책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아이에게 책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산 교육장이 헌책방이다.

6. 책값 비싸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책값 비싸다는 말을 하면 아이가 주눅이 들어 보고 싶은 책을 마음 껏 고르지 못한다. 외식비를 줄이더라도 책값은 흔쾌히 지불한다. 아이에게 자장면 한 그릇과 책, 둘 중에서 책을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7. 책은 빌려보기보다 반드시 사본다.
책을 빌려보게 되면 반납할 때 그 내용까지 함께 반납한다. 가능하면 책은 구입한다.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 무척 많다.

8. 책은 아이와 함께 읽는다.
아이에게 책 읽으라고 하고 정작 부모는 다른 놀이에 빠져 있으면 아이 역시 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같은 공간일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 책 읽기에 대한 흥미를 가질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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