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호철의 첫 작품집 <을지로 순환선> ⓒ 거북이북스
만화가 최호철(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이 최근 첫 작품집을 냈다. 10여 년간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작품이 살뜰히 모인 결과다. 책의 이름은 <을지로 순환선>(거북이북스). 만화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데 뭐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하여 책에는 ‘이야기그림’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우리 사는 풍경’, ‘일하는 사람들’, ‘큰 세상 작은 목소리’, ‘우리 집 이야기’, ‘스케치로 담은 기억’ 등으로 테마가 나뉜 책은 다녀본 곳, 봐서 아는 곳 그래서 친숙한 삶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작가가 “이 풍속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내가 다녀본 곳들이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 생활 반경이 빤히 들여다 보인다”고 부끄러워할 정도.
명상 혹은 잡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 보는 순간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도 좋다. 다른 곳 아닌 꼭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우리 이웃의 표정과 몸짓도 그대로 박혀 있다.
▲ ‘을지로 순환선’(2000년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최호철
작가는 승객을 한가득 실은 버스기사, 찜통같은 더위를 토해내고 싶은 지하철 가판대, 그저 한숨만 나오는 수해 현장까지 우리 이웃이 지닌 삶의 고단함과 정겨움을 모두 잡아내고 있다. 이 속에서 노인과 이주노동자, 여성, 어린이 등 더 힘없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특히 빛난다. 물론 이는 120여권에 이르는 스케치북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고, 단순 명료하지만 곰삭힌 듯한 메모를 조용히 읽어 보는 재미가 크다. 빼곡히 들어찬, 답답하게까지 보이는 일상이 손금처럼 자세한 반면 작가가 남긴 몇 줄 안 되는 손 글씨 메모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깊다.
이야기가 꽉꽉 밴 그림은 그 자체로도 분명 매력적이다. 만화와 회화의 경계에서 ‘현대 풍속화’라는 독특한 그림 장르를 구현해낸 작가에 대해 동료인 박인하 교수(청강문화산업대)가 ‘한 화면에 압축된 광각의 서사는 최호철 작품의 핵심’이라 했던 것처럼 한눈에 잡아끄는 그림의 구도와, 세세한 이야기가 곳곳에 들었다. 차곡차곡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인물과 배경 뒤로 숨어 있다.
▲ ‘와우산’(1995년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최호철
어린 시절부터 관찰하면서 그리는 것에 흥미를 가졌던 최호철 작가는 다큐멘터리 그림, 민중미술 등에 관심이 많았다.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에 ‘두벌갈이전’을 비롯해 ‘민중미술 15년전’, ‘앙굴렘 세계만화축제 한국작가전’ 등의 전시를 다수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생애를 담은 <태일이>와 <십시일반-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코리아 판타지> 등의 단행본이 알려져 있다.
▲ ‘이번 정류장’(2000년 작품, 개인 소장) ⓒ 최호철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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