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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학교사의 이유있는 답안지 제출 거부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희망 전하는 <경향> 이민숙 교사 인터뷰

등록|2008.03.10 08:53 수정|2008.03.10 09:08
아침 신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날은 기분 좋은 날임에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희망이 사라진, 절망뿐인 세상은 없다! 잘 살펴보면 희망은 항상 도처에 그 싹을 내밀고 있다.

오늘(3월 10일) 신문에서도 그 희망을 하나 찾았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서울 대영중학교 이민숙(40) 교사. 이민숙 교사는 지난 6일 전국적으로 치러진 중1진단평가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민숙 교사가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입학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줄 세워진 석차 성적표를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아래 내용은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입학 3일 만에 시험  석차백분율 공개 좌절부터 배울 것/중1전국 일제고사 후유증 확산' 에 소개됐다).

"서울시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석차백분율까지 다 공개한다니, 강남이나 목동의 잘하는 학생들과 비교하는 것인가."

"중학교에 올라와 새 친구, 새 선생님 만날 생각에 정말 설레고 좋았는데 3일 만에 시험을 치르고 4~5월이 되면 또 시험을 본다. 어른들은 요즘 학교·학원·숙제를 빙빙 도는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를 거다."

가르치지도 않고 시험부터 보는 학교

▲ 6일 전국의 중학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 서부원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컸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는가. 학교 들어간 지 며칠 됐다고 시험부터 볼까. 사실은 황당한 일이다. 가르치지도 않고 시험부터 보는 학교가 어디 있는가. 학생들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측면을 갖는다. 학생들의 학업 능력과 그 노력, 성취도의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을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하는 점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중학교 입학 자체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수 있는 계기일 수 있다. 그런데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성적으로 줄부터 세우고 본다면 이 아이들은 그런 의욕을 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될 개연성이 크다.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민숙 교사가 중1진단평가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학생들에게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선택권'을 주었다. 이민숙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일렬로 줄 세워진 성적표를 나눠주고 싶지 않다. 사회 과목에 한해서만 선생님이 직접 채점해 주겠다. 석차를 알고 싶은 학생은 제출하라."

3교시에 감독을 들어갔던 교실의 34명 학생 가운데 31명이 답안지를 학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민숙 교사는 학교에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의 답안지를 직접 채점해 자체 평가점수를 학생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틀린 부분과 취약한 부분에 대해 직접 설명을 해주고, 학부모들에게도 편지를 보내 이해를 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40살의 이민숙 교사는 교직사회에서 중견교사 축에 든다. 그런 중견교사의 '반란'이어서 사실은 눈길이 더 간다. 무엇보다 교직단체가 주도한 '단체행동'이 아니라, 이민숙 교사의 개인적 '결단'에 따른 행동이어서 사실은 더 관심이 간다. 그렇다고 이민숙 교사가 외로운 것은 아니다. 이민숙 교사처럼 시험 당일 답안지를 내지 않은 교사들이 서울에서만 '20여명'이나 된다.

"소신대로 했기에 후회는 없다"

당연히 징계 이야기가 나올 법 하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장 지시에 불응하고, 교사의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로 이 교사 등에 대한 징계를 논의할 태세"다.

이민숙 교사는 이에 대해 "중간·기말 고사와 같은 정기고사 성적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보지만 징계를 받게 되면 일단 참담한 심정일 것 같다. 하지만 소신대로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한 길'이기에 있을 수 있는 불이익까지를 감수할 작정을 한 교사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희망을 찾게 된다. 그 희망을 지켜내는 일은 이들 교사들만의 몫이 아닐 것이다. 이들 교사에게서 희망을 찾은 모든 이들이 함께 키워나가야 할 희망일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민숙 교사 인터뷰 기사 이외에도 관련 기사와 논평을 1면 머리기사와 사설로 실었다. 1면 머리기사에서는 중학교 1학년 전국 일제고사의 문제점과 그 후유증을 지적했다.

사설(변칙 일제고사, 비겁하고 비교육적이다)에서도 "학습부진학생을 측정하기 위한 평가가 성적 줄세우기의 일제고사로 변질"됐다며 "교육당국이 진단평가란 이름으로 비겁하고도 비교육적인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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