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마담슈머', 안방서 시장을 쥐락펴락

살림 노하우로 제품·서비스 모니터

등록|2008.03.10 11:08 수정|2008.03.10 11:08

▲ 더블유인사이츠(W.insights)에서 운영하는 ‘여성소비심리전문가과정’에 참여중인 40대 주부들이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우현, 홍은희, 김형숙, 한경미, 서승희씨. ⓒ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채혜원 기자] ‘마담슈머(madamsumer·주부모니터단)’ 열풍이 기업뿐만 아니라 아파트시장, 호텔업계 등 전 산업분야로 확산됨에 따라 지원자가 폭증하면서 ‘주부고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인삼공사 주부모니터 담당 김미성씨는 “지난해 20명 모집에 1200명이 지원해 지원서를 읽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여성을 뜻하는 ‘마담(madam)’과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친 단어인 ‘마담슈머’는 ‘주부 소비자 마케터’가 늘어나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주부모니터단’이란 이름으로 익숙한 ‘마담슈머’들은 기업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체험하고, 그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기업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파트시장에서도 모델하우스 방문 평가, 준공단지 방문 평가 등의 활동을 마담슈머들에게 맡기고 있다. 최근 주부모니터단을 모집한 회사만 해도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동부건설 등 10곳이 넘는다. 

지난해 주부커뮤니티 미즈(www.miz.co.kr)가 회원 10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5%의 주부들이 모니터활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주부모니터단 규모는 커지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주부모니터를 모집한 기업은 1600군데(2006년 기준)가 넘는다.

박유경 미즈 콘텐츠팀 이사는 “모니터 활동은 15년 전쯤부터 있어왔지만 단순히 제품을 사용하고 좌담회 자리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정도였다”며 “하지만 점차 소비문화가 발달하고 소비자군이 세분화되자 기업들도 온라인 홍보의 한 방법으로 주부모니터단을 운영하는 식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마담슈머가 온라인 홍보방법으로 자리 잡으면서 ‘주부들의 후기 사이트’도 뜨고 있다. 주부회원 수가 2만7000여명에 이르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cafe.naver.com/travelwithkids)이란 카페는 호텔업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영역은 화장품 후기 사이트로 화장발(cafe.daum.net/dalgun2n), 닥터윤주의 화장품나라(cafe.daum.net/cosmetic1), 유리거울(cosmeholic.cyworld.com) 등이 있다.

요즘 들어 기업들은 새롭게 ‘기업 마담슈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웅진코웨이가 오는 16일까지 모집 중인 ‘코웨이 마담슈머 1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6개월 동안 체험제품인 정수기(시중가 약 150만원), 음식물처리기(약 70만원) 등을 무료로 기증받을 뿐만 아니라 활동 성과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성과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김형권 웅진코웨이 마케팅본부 과장은 “생활환경 가전회사인 웅진코웨이의 가장 중요한 고객은 주부”라며 “단순히 주부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과정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통 마담슈머 활동기간은 6개월로 활동비는 평균 200만원 정도다. 활동비가 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의 체험이 자연스럽게 활동으로 연결되고, 해당 제품을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활동하고 있는 주부들은 만족하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미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모니터 활동을 하는 이유로 ‘부업’은 13%에 그친 데 비해 ‘무료 제품사용 기회’라는 응답이 64%를 차지했다. 주부들이 제품을 무료 사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데 모니터 활동의 의의를 두고 있는 것.

4년째 주부모니터단으로 활동해오고 있는 김영화(39·서울 강서구)씨는 “돈을 생각했다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봤을 것”이라며 “주부들의 살림 노하우가 깃든 모니터를 통해 나온 의견이 실제 기업 제품 생산에 반영될 때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기 때문에 이 활동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마담슈머 활동에 참여하려면 주부모니터(jubumonitor.paran.com)와 주무커뮤니티 미즈(www.miz.co.kr/monitor) 사이트에서 모집공고를 참고하면 된다.

이와 달리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훈련받을 수 있는 방법은 더블유인사이츠(W.insights.co.kr)에서 운영하는 ‘여성소비심리전문가과정(이하 여소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12주에 걸쳐 마케팅 기본개념, 여성 마케팅, 마케팅 조사실습으로 구성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활동을 시작한다. 20대부터 50대 여성으로 인터넷 활용이나 간단한 워드 작성만 가능하면 신청이 가능하며 오는 31일까지 제5기 여소심 과정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주부모니터 활동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현재 아동 요리지도자로 활동 중인 박성옥씨는 2006년 여소심을 통해 주부모니터단으로 처음 활동하다가 권명숙 요리치료협회 회장을 알게 되면서 ‘요리사’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된 경우.

박씨는 “모니터단 활동으로 다른 주부들과의 커뮤니티도 형성되고,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꿈을 이루게 됐다”며 “생활이 소비인 현대생활에서 모니터단 활동은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비타민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물품 구매시 소비자의 관점뿐만 아니라 판매자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줬다”고 말했다.

여성마케팅 컨설팅 전문기관인 더블유인사이츠 정근미 컨설턴트는 “주부모니터단은 여성소비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의식 있는 새로운 계층’으로 기업에 여성고객의 진실된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며 “주부들은 감성적인 부분까지 세심히 신경 써 모니터 활동을 하기 때문에 최근 기업들이 주력하고 있는 감성마케팅의 강점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주요 기업의 주부 모니터단 모집일정(3월) ⓒ 여성신문


가정 경영자 ‘주부’를 키워라

▲ 금천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반찬가게 창업 과정’ 프로그램에 주부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 주부들을 위한 직업교육은 주로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이뤄진다. ⓒ 여성신문


‘주부’는 가정살림, 육아, 교육 등 많은 과제를 해결하고 있는 가정의 최고경영자다. 소비재와 서비스 제품 중 주부들의 구매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부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재취업은 물론 육아, 보육문제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이제 주부들은 ‘억척스런 아줌마’로만 비하되는 현실에 맞서고 있다. 커리어 여성들처럼 취업전선에 100% 뛰어들 수는 없지만 살림, 육아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또 다른 전문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요리·인테리어 등 살림의 노하우를 블로그에 올리다 스타 주부로 알려져 사업가로 변신한 여성들도 있으며, 시민기자단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친숙한 소재로 눈길을 끄는 ‘아줌마 기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주부 3년차인 권미선 한샘 키친디자이너는 “살림뿐만 아니라 주부들의 주요 업무가 가족, 친척, 이웃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며 “이런 이유로 기업, 여러 기관에서 ‘여성’을 이해하려면 주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주부들의 활동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을 위한 연구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 6일 결혼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주부 재취업 도전직업 55’라는 책자를 발행했다. 최종 선정된 직업군을 보면 교육 분야가 17개로 가장 많았고, 판매·일반서비스 11개, 문학·디자인·예술 분야 7개, 금융·보험·경영사무 분야와 컴퓨터 분야가 각각 5개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정된 직업 중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체험학습 강사, 리폼 디자이너 등 이색직업들도 포함됐다.  

장서영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원은 “주부들은 다른 구직자와 달리 재취업하려고 해도 구체적인 직업군을 알 수가 없어 이번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며 “경력단절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주부들의 재취업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주부들의 다양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직업군 발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주부들을 위한 민간 차원의 지원제도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마케팅 컨설팅 전문기관인 더블유인사이츠(W.insights)에서 14일까지 모집하는 ‘제1회 FEMI 주부장학금’ 제도다. 다시 일을 하고 싶어도 자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할애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주부들을 위해 6개월간 매월 20만원씩 총 12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장학금을 마련한 김미경 W.insights 대표는 “가정에서 이미 많은 일을 해내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주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은 마음을 모아 주부장학금을 만들었다”며 “비록 적은 액수지만 주부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제1회 FEMI 주부장학생은 총 5명을 선발할 예정이며, 장학금을 희망하는 주부들은 FEMI 포털(www.femi.co.kr)에 회원 가입 후 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대학교에서 주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영동대학교의 경우 결혼한 여성에 한해 4년간 등록금의 50%를 면제해준다. 동신대학교는 매 학기 5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한다. 직장인과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대학들도 주부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 중 한양사이버대학교는 1년간 수업료의 20%를 장학금으로 제공하며, 경희사이버대학교는 입학금을 면제해주고 있다.

이 외에 주부들에게 실질적인 돈을 투자해 지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대개 ‘취업정보’와 ‘재취업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서울여성교육포털’(womancenter.seoul.go.kr)은 서울시내 여성발전센터와 각 지역 주민자치센터와 연계해 서울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여성 대상 강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YWCA는 노원, 금천 여성인력개발센터와 연계해 직업능력 개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마련해놓은 지원제도는 여성부에서 매년 진행하는 ‘전업주부 중소기업 취업지원사업’ 정도가 전부다. 여성부는 지난해 사업비 4억5000만원을 들여 미취업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교육해 791명의 주부들이 새로운 취업의 기회를 잡는 성과를 냈다.

주부들을 위한 제도가 미흡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부들을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으로 보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난주 연구원은 “전업주부 중에서도 고급인력인 여성들이 많은데 노동시장에서 ‘주부’는 취약계층으로 분류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여성고용 문제를 일자리정책의 중점과제로 채택했으니 결혼·자녀양육 등으로 인한 취업단절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대안들을 내놓을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박정옥 활동가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보면 전문성을 기르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단순 시간제 일이 대다수인 경우가 많다”며 “기혼여성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를 높여야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