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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하다 끌려나가고, 강 대표에 애걸복걸하고

'낙천' 한나라당 의원-지지자들, 최고회의에서 '마지막 호소'

등록|2008.03.10 11:52 수정|2008.03.10 17:15

▲ 6일 한나라당 4차 공천자발표에서 탈락한 고조흥 의원(경기포천연천 맨오른쪽)과 배일도(경기남양주갑 맨왼쪽)의원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이종호


18대 총선을 정확히 한 달 앞둔 10일 한나라당이 극심한 공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선 공천탈락자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고, 공천을 못 받은 전·현직 의원들은 국회 당대표실까지 찾아와 애원반 협박반으로 당 지도부에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4년마다 총선을 앞두고 되풀이 되는 광경이지만, 특히 올해는 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나라당 공천이 당선의 절대 조건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공천 낙오자들도 공천심사위 결정을 뒤집기 위해 당 지도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공천탈락자들, 당 지도부에 구제 호소

▲ 한나라당 총선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이원복 의원(인천 남동을)이 10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안상수 원내대표에게 공천 재심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인천지역 의원으로 유일하게 탈락한 이원복 의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당 대표실로 찾아와 "대통령 선거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 공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니 이게 뭐냐"며 강재섭 대표와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같은 사태를 예견한 듯 이 총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게 무슨 개혁 공천이냐. 한나라당이 오만해졌다"며 "10년 야당을 함께 한 충복을 이렇게 내치면서 한나라당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두고 보자"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는 당 대표실에는 고조흥(경기 연천·포천)·고희선(화성을)·이원복(인천 남동을)·배일도 의원(비례대표) 등이 일찌감치 나타났다. 이들의 손에는 최고위원들에게 전달할 재심 요청서 서류 봉투가 들려있었다.

경기도 남양주갑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배일도 의원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일주일 전만 해도 덤덤한 표정을 짓던 배 의원이었지만, 10일은 사정이 달라졌다. 배 의원이 서류를 돌리며 연방 고개를 조아리자 강재섭 대표는 "웬일로 나를 찾는가 했지…"라고 딴청을 부렸다.

자리마다 낙천자들의 재심 요청서가 수북이 쌓이자 최고위원들도 강 대표의 모두발언만 듣고 곧바로 비공개 회의로 전환했다. 강 대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민공천, 누구를 밀었느냐를 가지고 공천하지 않는 공정 공천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퇴장할 즈음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의원 문병열씨가 서울 영등포갑에 고진화 의원 대신 전여옥 의원이 공천된 것에 항의하는 구호를 회의장에서 외치다가 밖으로 끌려 나가기도 했다.

문 의원은 "표절 의혹이 있는 범법자를 공천하는 게 개혁 공천이냐? 전 의원은 공천을 반납하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상득 부의장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공천 재심을 포기하고 무소속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진화 의원, 재심 포기하고 무소속 출마 검토

충남 천안갑에 전략 공천된 윤종남 전 서울남부지검장에게 밀려난 전용학 전 의원도 "당이 지역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엉뚱한 사람을 공천했다"고 푸념했다.

반면, 박근혜계의 이규택·한선교 의원은 보좌관으로 하여금 서류를 대리 접수하게 해 이미 '마음의 준비'가 끝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했다.

안양 동안갑 공천에서 떨어진 송영선 의원도 <백지연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경선에서 박근혜 지지를 결정하자 굉장히 높은 분이 나에게 '네 눈에 피눈물이 나도록 만들 거다. 평생을 후회하게 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화로 직접 했다"고 말해 자신의 탈락이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당 지도부를 찾은 사람도 있었다. 이계경 의원은 서울 송파병에서 나경원 대변인·이원창 전 의원과 경합하고 있는데, 결국 나 대변인이 전략 공천될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부랴부랴 국회로 들어온 것이다.

이 의원은 여성계 원로인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까지 동행해 강 대표에게 "제발 한 마디만 들어 달라"고 얘기했지만 강 대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회의장을 떠났다. 이 의원은 "여성계에서는 '여성 의원들끼리 한 지역구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나 의원이 이를 어기고 (내 지역구로) 왔다"며 "가급적 둘 다 공천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힘의 논리, 계파의 논리로 공천을 결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나 대변인은 "지난주에 심의를 마치지 못한 지역구들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 오늘 오신 분들에 대한 얘기는 하지 못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당 지도부와 공심위가 본선 경쟁력을 들어 도덕적으로 논란 있는 인사들을 무차별 공천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한 당직자는 "강 대표가 '법조당 소리 안 듣겠다', '정치철새는 안 받는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제대로 지켜진 게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박근혜계를 대변하는 김무성 최고위원도 회의석상에서 최근의 공천 결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지만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 공심위가 공천을 결정해도 당 지도부가 결국 보류한 지역구도 있어서 앞으로의 논의를 지켜볼 만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공천자의 도덕성 문제가 제기된 서울의 두 지역구(은평갑·강북을)의 공천을 보류하고, 강북을과 중랑을의 경우 외부 인사를 전략 공천하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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