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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 오른 라면값을 참기 어려운 이유

정부, 물가상승의 버거운 짐 서민에게만 떠넘겨

등록|2008.03.10 17:41 수정|2008.03.11 09:22
중국에서 3년 살면서 물가가 싸서 참 좋았다. 특히 과일·쌀·채소 등 농산물 가격은 한국의 1/10 이하였다.

그런데 한 편으로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농산물이 이렇게 싼데 그것을 생산하는 8억 중국농민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이나 연민 같은 거 말이다. 공산품도 마찬가지다. 'made in China'의 값싼 물건들은 대부분 하루 10시간 이상 짐승처럼 일하며 피땀 흘리는 중국노동자의 헐값 노동력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가파르게 치솟는 한국의 물가는 예사롭지 않다. 국제유가의 고공비행에다가 세계 공장인 중국의 올해 신노동법 발효 이후 노동시장 변화가 세계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글로벌 경제체제 하에서 세계 원자재가격 동향에 따라 국내물가가 자유롭지 못한데 국내의 작은 변화와 사건들로부터 물가는 더욱 직접적으로 반응하며 요동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삶의 작고 깊은 곳까지 기름떼가 태안바닷가를 덮치듯 물가인상이 일상을 덮치고 있다.학교앞 포장마차에 밀가루값 인상으로 만두값이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랐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김대오

어촌에서도 농촌에서도 시름은 깊어지고당장 태안 기름유출사건은 수산물에 대한 소비를 급감시켰고 고향 여수 돌산에서 가두리양식으로 고기를 키우는 친구는 소비감소와 사료값 인상으로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밀가루 보조사료는 4000원에서 8000원으로 두 배가 뛰었고 양식용 배합사료도 20% 값이 상승했다. 치어를 2~3년 키워 500g짜리 상품으로 만드는 데 사료비 등 생산원가가 약 8000원 정도 든다. 그런데도 현재 시세는 6000원에 그치고 있으니 고기를 키울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한다.

사료비 부담이 적은 조개류나 미역·다시마 양식으로의 전환을 고려해보고 있다고 하는데 ,해양수산부가 통폐합되는 마당에 미래에 대한 확신과 의욕을 갖고 일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50% 가까이 오른 농약과 비료값이 부담스럽다. 작년에는 20㎏ 요소 한 포에 8200원에 구입했는데 정부보조금이 없어지면서 올해는 1만2400원이라고 한다. 겨우내 갓과 시금치 농사로 번 돈 전부를 1년 비료와 농약구입비로 다 쓸 판이다.

정부에서는 마늘직불제 등으로 농민에게 농사를 짓지 말 것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래도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이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영세한 농민에게 과도한 농약과 비료 값 인상의 짐을 지우는 현실을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정부는 분명 농약·비료 인상분 50%가 쌀값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에만 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름값 80원 내리겠다던 정부, 군것질거리 가격 500원씩 올린 분식집들

학생들 매점 빵과 과자값도 100원씩 올랐다.빵과 과자값도 올랐다. 값이 오르지 않은 과자는 양이 줄었다. ⓒ 김대오



그런 차원에서 국제 곡물가 인상에 따른 라면·과자 등의 도미노 물가상승도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있다. 농업의 포기는 곧 식량의 자급화를 포기하는 것인데 이는 언제든지 세계 곡물가에 따라 국내물가가 요동칠 위험요소를 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가상승에 따른 물류비용 등의 증가로 인한 물가상승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등록금은 3%가 올랐다. 분기당 41만원이던 학비가 42만원이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들어가는 가계 부담이 꼭 3%만큼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당장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사먹는 매점의 빵과 과자값이 100원씩 올랐고 분식집의 김밥은 1000원에서 1500원이, 라면은 2500원에서 3000원이 되었으며 학교 앞 포장마차의 호떡은 500원에서 1000원으로, 만두는 2000원에서 2500원으로 각각 올랐다.

한 달에 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는 우리 학생들은 이제 군것질을 줄이거나 아니면 부모님께 더 많은 용돈을 달라고 요구해야 할 상황이다. 모두가 물가 상승에 신음하고 있는 가계에 또 다른 부담으로 되돌아갈 몫이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아주머니의 가방에도 물가가 오른 것들이 제법 있다. 130원하던 요구르트는 150원이 되고 350원 하던 우유도 500원이 되었다. 무엇 하나 오르지 않는 것이 없으니 정말 시장에 가서 물건 사기가 겁이 난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 정부가 서민경제 운운하며 기름값 80원 내린다고 생색은 잔뜩 내고 있는데 정작으로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카드할인율에 불과한, 그야말로 허울뿐인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물가 상승이 노동의 대가 치르는 것이라면 감내할 수 있지만

지금도 부모님과 친구들은 고향에서 농업과 수산물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물가가 오르는 것이 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당한 노동에 상응하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세계경제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경제여건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도 기꺼이 감내해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는 유가상승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요동치지 않도록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농산물직거래 등을 통해 유통비용을 줄여야 함에도 제도적 개선의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 FTA 체결 등으로 농업을 아예 포기하고 식량을 전량 수입해서 먹으려는 안일한 태도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라면값 100원 오른 것에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 재산이 몇백억에 달하는 대한민국의 1%에게 물가상승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겠지만 서민들만 또 등골 빠지게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가게 생겼다. 그게 정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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