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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조기의 귀환을 꿈꾸는 칠산도

[섬이야기 73]영광 칠산도와 칠산바다

등록|2008.03.10 18:08 수정|2008.03.11 11:03
마지막 겨울을 붙잡으려는 듯 북서풍이 매섭다.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듯 구름 속에 잠시 몸을 감췄던 노을은 칠산도를 거쳐 송이도와 안마도를 지나더니 슬그머니 숨어버린다. 바다로 지는 노을은 장엄한 자연의례다.

과거의 찬란한 기억을 훈장처럼 매달고 있는 칠산바다. 매년 이맘때면 황금갑옷을 입은 우두머리를 선두로 수만, 수백만 마리 조기가 무리지어 다도해를 휘돌아 이곳에서 혼인식을 치렀다. 후미진 둠벙에서 북북대는 동료들의 축하노래에 맞춰 갯벌과 모래를 파헤치며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장엄한 서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곳에 일곱 개의 섬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의 이름,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란다. 마치 자식이 많은 부모가 아이 이름 짓듯 붙여놓은 것들. 그래서 좋다.

▲ 영광 백수염전, 칠산도, 칠산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인 노을 ⓒ 영광군


칠산바다는 뱃사람들에게 녹록치 않은 곳이다. 깊지 않고 잔잔한 바다가 북서풍이라도 불면 뒤집어져 속살을 확 까 벌린다. 그 바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배를 삼킬 듯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파도를 빠져나오자 바다는 잠이 들었다.

사공이 잘 마른 사리나무를 꺾어 고물에 솥을 걸고 정성스레 밥을 지었다. 선주는 옷매무새를 만지고 방금 빠져나온 칠산바다에 절을 하고 밥과 술을 바쳤다. <영조실록>에는 “뱃사공들이 칠산의 위험을 지나면 술을 부어 살아난 것을 서로 축하한다”고 적고 있다.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칠산바다.

▲ 영광 법성포구 ⓒ 김준


그런데 어쩌랴. 저 바람이 칠산바다에 새로운 생명을 되찾게 해주는 것을. 하지만 요즘 칠산도는 쓸쓸하다. 조기잡이 배들은커녕 잡어 잡이 배들도 만나기 어렵다. 돛을 달고 노를 졌던 풍선 시절에도 조선팔도 배들이 조기를 잡기 위해 몰려들던 곳이었다. 오죽했으면 ‘칠산바다로 돈 실러가자’고 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곳 조기어장을 ‘파시평’이라 했다. 동해의 명태라면 서해바다는 조기였다. 조기는 겨우살이를 끝내고 산란을 위해 무리를 지어 서해로 북상한다. 마치 도요새가 군무를 이루며 우리나라 서해갯벌을 사이에 두고 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듯. 그리고 정착한 곳이 칠산도와 칠산바다다.

▲ 영광 법성포 굴비 ⓒ 김준


1960년대까지 칠산바다에 조기어장이 형성되었다. 영광 칠산어장 외 충청도의 녹도어장, 경기도 연평어장을 대표적인 조기어장으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칠산바다가 으뜸이다. 이곳은 적당한 모래와 펄이 넓게 펼쳐져 안정된 저층갯벌을 이루고, 새우를 비롯한 먹이가 풍부한 곳이다.

조기를 비롯한 회유성 어종들이 산란과 서식활동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칠산어장은 영광낙월도에서 고군산군도에 이르는 바다를 말한다. 고창과 부안의 섬과 바다가 한 시절 영광에 속했다. 그래서 위도 인근에서 잡았던 조기들도 ‘영광굴비’가 되었다.

요즘 조기잡이는 서해 최남단 가거도나 추자도 인근 어장에서 잡힌다. 추자도 인근어장은 제주 한림항을, 가거도는 목포항에 근거지로 두고 있다. 어디서 잡히든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갈무리를 해야 영광굴비로 제값을 받는다. 그렇다면 왜 영광굴비가 유명해진 것일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요약해 보면 해풍, 선도, 갈무리 세 가지다.

해풍이 자연이 준 선물이라면, 선도는 어장과 가공공장(법성포)이 가까운 지리적 요건 때문이다. 칠산바다와 법성포는 지척이다. 지금은 어민들의 고기잡이배로 반시간에도 못 미치지만, 바람을 이용하던 시절에도 바람만 잘 만나면 잠깐만에 들어올 수 있는 거리다. 그만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법성포 어민들의 지혜가 담긴 갈무리 법이 결합되어야 제대로 된 영광굴비 대접을 받는다. 소금간이 아닌 갯벌천일염을 이용한 간수와 건조방법이 굴비의 맛을 결정한다.

▲ 추자도 인근에서 잡은 참조기를 따는 모습(제주 한림항) ⓒ 김준


첨단장비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 무분별한 간척과 매립 등으로 칠산바다도 크게 변했다. 장엄한 자연의례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 동진강과 만경강도 막혔다. 당장 고군산군도는 물론 칠산바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칠산도가 기다리는 녀석, 누렇게 알이 밴 황금조기다.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뚫리듯 강과 바다를 막아 놓은 물길이 열리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식과 청명절에 북북 울어대며 갯벌을 헤집고 올라오는 조기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남쪽 섬마을에 동백꽃이 떨어지고 철쭉꽃 소식이 구수산에 전해질 무렵이 되면 조기들은 칠산바다를 건너 법성포에 이르렀다. 칠산바다는 그 기억을 간직한 채 기다리고 있다. 조기의 귀환을.

▲ 법성포 단오제 기간에 열렸던 풍어제, 황금조기의 귀환을 빌었을까. ⓒ 김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뜸(전남도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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