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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밭두렁 널려 있는 시-16> 봄을 다시 맞으며

등록|2008.03.11 10:35 수정|2008.03.11 10:35
봄을 다시 맞으며

올봄은 작년 봄만 못하다
작년 봄엔 네 생각으로 내 마음도 꽃이 환하게 피었는데
올핸 작년만 못해
내 마음 꽃빛깔이 작년만 못해
시 쓰는 친구들 늙기 시작하고
같이 술 먹던 동료들 하나씩 퇴직해 나가고
지난겨울 빙판에 다친 다리 아직도 성치 못하여
지팡이 짚고 절룩거리며 빈 들녘 혼자 나선다
버스에서 종종 자리 양보 받는 걸 보면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너 마저 나를 늙은이 취급 할 거 같아
너 만나는 일도 이제 삼가야 하겠다
같이 늙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야 편하지
젊은 사람 만나 콧대라도 높이면 부담스러워
너를 사랑한다는 생각도 이제 접어야지
욕심이 끼면 사랑도 추해지기 마련인데
햇수로 한 3년 나는 사추기를 겪었네
젊은이 못지않은 뜨거운 연애시 십여 편을 썼으니
사춘기를 지나면 의젓한 청년이 기다리고 있는데
바야흐로 사추기를 지나 딛어야 할 땅이 이제 또 궁금하네   
- 최일화

시작노트

조금씩 내가 늙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에서 선배들이 자꾸 퇴직해 이제 내가 퇴직서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일이 그렇고, 여기 저기 친구들이 자녀 혼인에 오라는 청첩장이 줄을 잇는 걸 봐도 그렇다. 내가 기억 속의 할아버지 연세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첫사랑을 꿈꾸는 십대 청소년 같아 마음은 오늘도 푸른 하늘 푸른 들녘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것을.
덧붙이는 글 최일화 기자는 시인이며 수필가다.
현재 인천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에 <우리사랑이 성숙하는 날까지>(1985) <어머니>(1998)
에세이집에 <태양의 계절>(200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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