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공시대, 개처럼 끌려나간 비정규직 노동자들
[取중眞담] 코스콤 농성노동자 폭력 연행..'법과 원칙'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앞에서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182일째 파업 중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이 구청 직원과 용역 직원 150여명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여성농성자들이 쇠사슬로 천막에 몸을 묶은 채 저항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이기태 제공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었다. 유난히 '법과 원칙 준수'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5일째였던 지난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 거리.
아직 해도 뜨기 전,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등포 구청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150여명이 182일째 거리에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60여명을 폭력적으로 끌어냈다.
욕설과 침을 내뱉는 것은 예사였다. 용역 직원들은 노동자들을 아예 짓이겼다. 용역 직원 3~4명이 노동자 1명을 넘어뜨린 후 현장 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 노동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6명이나 병원에 실려갔다.
입법·행정·사법부 모두 코스콤 쪽의 잘못을 지적했지만, '법과 원칙'이 적용된 곳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닐 천막뿐이었다.
법에 따라 정당하게 정규직과의 차별 시정을 요구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차가운 겨울 거리로 내몬 코스콤 회사 쪽에 '법과 원칙'은 먼 나라 얘기였다. 국정감사장에서 위증까지 한 이종규 코스콤 사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철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앞으로의 5년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절망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란 걸 느꼈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법과 원칙을 위장한 폭력이 집행되는 사회,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 낼 모습이 아닐까?
정부 출범 3일 만에 강제진압, 15일만에 폭력 연행
▲ 지난 달 27일 GM대우 해고 노조원인 이준삼씨가 마포대교 여의도 방향 다리 중간 지점에서 다리 난간에 매달려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구조대원이 줄을 타고 내려오자 한강으로 뛰어내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이 강제 철거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3일째였던 지난달 27일에는 GM대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마포대교 아래 한강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이 소방 당국의 반대에도 그곳에서 농성을 하던 노동자들을 강제로 진압하려는 과정에 사고가 벌어진 것.
당시 이를 지켜봤던 주봉희 비정규 담당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 정책을 배제하고 친기업 정책만 강조했던 이 대통령의 강제 진압 기조를 확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부르짖는 이 대통령에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가 말하는 국민이 아닐 것"이라고 성토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 증거는 참 많다.
GM대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여러 차례 고공농성을 벌일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곳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민주노총 방문을 취소하면서까지 GM대우 부평공장을 방문해 "노사 화합의 모범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뿐인가. 모든 국민에게 문이 열려 있어야 할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21명은 초대받고도, 식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정인열 코스콤 비정규지부 부지부장은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였다, 비정규직은 대통령이 말한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오는 7월 비정규직법 확대 시행, 이명박 정부의 대책?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포함한 노동 정책은 사실상 외면했다. "'이랜드 사태'의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리는 그의 노동관에 대해 우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노동계의 평가다.
특히 오는 7월 100~299인 중소사업장에 대한 비정규직법 확대 시행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올해 가장 크게 확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지만, 새 정부는 아직까지 이에 대해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법의 파급이 큰 중소기업에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되면, 분쟁이 속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큰 사회적 혼란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노동부 장관의 인식은 너무나도 안일하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원만한 합의가 중요하다"는 성의 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여당 소속의 홍준표 의원조차도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등 의원들의 허탈한 한숨만 남았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7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법과 원칙을 준수해달라"는 말만 했다.
새 정부는 지난 10일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때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세제지원을 하겠다는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다음날 폭력적으로 진압당한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그 대책은 진실성이 의심스럽다.
▲ 민주노총 공동투쟁단 소속 이랜드·코스콤·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법 전면 재개정'과 '노동자를 위한 경제정책 제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금처럼이라면,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절망의 5년
이명박 정부의 파업 현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노무현 정부 때와 큰 대비를 이룬다. "노동계와 재계간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 후 지난 같은 해 6월 조흥은행 파업과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 투입을 지시했다. 공권력 투입 결정에 3개월 이상 걸린 것이다.
하지만 친기업 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취임 15일 만에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이 폭력적으로 철거됐다.
이런 상황은 강경대응의 악순환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노동계에만 법과 원칙의 준수를 강요할 경우, 코너에 몰린 노동계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벌써부터 총파업 얘기가 나온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한쪽이 무릎을 꿇을 때까지 노정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절망만이 쌓여가고,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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