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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뽑더니 사람까지 뽑으려 드는 실용정부

친일청산 마다하고 진보가치 청산하는 것이 개혁인가

등록|2008.03.13 11:48 수정|2008.03.13 11:48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국회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느닷없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인적청산론’을 거칠게 제기하니까 때맞춰 청와대의 호응이 있었다. 이어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를 거들더니,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아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과거 정권 인사는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용정부와 한나라당이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일단 여론 지지율이 날로 내려가고 있어서 어렵고, 공천 후유증이 사뭇 심각해서 어려울 터이다. 서울 강남과 영남 공천을 앞두고 탈락자들을 보듬어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보상 수준의 자리 마련이 시급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일련의 발언들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사전 교감 속에서 '깜냥에는' 절실한 나머지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법으로 보장된 임기 도중에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첫째 법을 무시하는 것이고, 둘째 임기를 보장한 법의 취지를 간과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눈에는 마치 단체장들이 전봇대처럼 여겨져서 뽑고 싶으면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건물주 바뀌었다고 임차인 나가란 것

대통령이 바뀌었으면 이에 따라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바뀌면 되는 것이지, 산하 단체장들까지 나가라고 하는 것은 헌법은 물론 민법이나 상법에서도 찾을 수 없는 해괴한 논리이다.

단체장들은 일종의 계약직들이다. 물론 엄연히 계약 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나가라고 하는 것은 마치 건물주 바뀌었다고 임차인 나가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정작 큰 문제는 이런 속 보이는 짓을 하면서도 거기에 이념의 문제를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좌파정권'이라고 전제해 놓고 좌파적 법률과 제도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부에서 일한 단체장들이 좌파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들은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적이거나 개혁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 터이다. 민주나 개혁이나 진보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이념적 수준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이야말로 무지의 소치이거나 아니면 매카시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념이나 색깔공세는 진부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것의 약발은 옛날 같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것이 부도덕해서 혐오스러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예감 안 좋은 <조선>의 치고 나가기

▲ <조선일보>는 12일자 '팔면봉'에서 "말로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며 인사 교체를 즉각 행동으로 보일 것을 정부와 한나라당에 촉구(?)하는 의욕을 보였다. ⓒ 조선닷컴 화면 캡쳐

'좌파정부 인적청산론'이 제기되자 <조선일보>에서는 아예 인적청산 대상자들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한발 앞서 치고 나갔다. <조선일보>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코드 인사들은 물러나는 것이 관행이었다'며 교체 대상자들을 적시하기까지 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팔면봉'에서 "말로만 해선 안 듣는 것이 문제"라고 하며 인사 교체를 즉각 행동으로 보일 것을 정부와 한나라당에 촉구(?)하는 의욕을 보였다. 과거의 예로 보건대 조선일보가 앞장서는 일에는 언제나 모종의 의도나 배경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는 한층 예감이 안 좋아진다.

'3공과 유신의 추억'... 문화공보부는 정권 나팔수

▲ 지난 11일 제11차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부장관. ⓒ 청와대 제공

특히 이번 '인적청산론'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앞장선 사실은 우리를 더욱 불쾌하게 만든다. 옛날 박정희 독재 시절 문화공보부는 언제나 정권의 나팔수 일을 도맡아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재산 축적과 부인의 고액과외로 사퇴의 궁지에 몰렸던 유인촌 장관이 장관 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감히 '인적청산론'을 들고 나올 수가 있는지?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이다.

문화예술단체의 장들은 거의 유 장관의 스승뻘이거나 선배들이다. 그들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고 해도 빈말이나마 "더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이라도 표해보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라고 본다. 왜 연기자로서 유인촌이 정치가가 되어 자진해서 망가지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이미 과거사위원회 9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거기에는 친일청산위원회도 들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친일잔재야말로 우리가 화급히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끄러운 역사이다. 그런데 친일청산은 마다하더니 겨우 청산한다는 것이 과거 정권 10년이란 말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잃어버린 권력'을 얼른 찾고 싶다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무리 늦어도 1, 2년이면 모두 물러나야 할 인사들을 토끼몰이 식으로 내모는 일은 법과 도덕성을 운운하기 이전에 당장 목전에 닥친 한나라당의 총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본다.

그런 줄 알면서도 좌파척결 운운하며 자리를 뺏어내려는 무리수를 두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인격 자체가 '선천성 권력 기갈증'이 아닌 다음에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김갑수 기자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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