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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내 대문도 잠그지 않았는데..."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 어머니, 소식 듣고 통곡... 이웃주민 "예슬이라도 살아왔으면"

등록|2008.03.14 08:22 수정|2008.03.14 08:25

▲ 혜진이와 예슬이 ⓒ 최병렬


'무사귀환' 염원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면서 이혜진·우예슬 두 어린이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란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혜진이가 주검으로 돌아왔다. 예슬이는 아직 생사조차 모른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3일 오후 수원에서 암매장된 여아의 시신과 관련해 "토막 시신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감정 결과 이혜진양 어머니와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함께 실종된 우예슬양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대대적인 수색·발굴작업에 나섰다.

"우리 막내딸, 어쩌다 네가..." 어머니 오열

▲ 소식을 처음 접하고 오열하는 이양 어머니(이후 경찰의 통제로 가족 접근이 금지됐다) ⓒ 최병렬


13일 오후 5시10분께 찾아간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골목길에 위치한 단독주택 2층 이양의 집. 살아있기를 기대했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 이아무개(41)씨가 말문을 잇지 못하고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피살이 믿기지 않는 듯 이씨는 "우리 막내딸, 어쩌다 네가…"라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죽은 딸에게 "미안하다"를 되뇌며 오열하는 이씨를 함께 있던 이웃 주민이 위로했다. 안양경찰서 소속 여자 경찰관 2명은 취재를 삼가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은 "경황이 없어 이양 어머니는 취재에 응할 상황이 아니다. 부모들이 진정을 찾은 다음에 얘기를 나누도록 해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취재진의 집 출입을 막았다.

실종 79일 만에 혜진이의 죽음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자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 이양의 집앞으로 나온 이웃들도 충격과 비통함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스를 보고 나왔다는 주민 황아무개(52)씨는 "살아 있길 바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 그렇게 잔인하게…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말을 잇지 못했고 또 다른 주민은 "진짜 죽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안타까워서 어떡하냐"며 눈물을 흘렸다.

▲ 이혜진양 가족을 만나고 나오는 친척 ⓒ 최병렬


오후 5시30분께 안양경찰서 박종환 서장이 이양 집을 찾아 가족을 위로했으며 오후 6시이후 혜진양이 다니던 안양 명학초교의 이윤형 교장과 교사들, 경찰관, 친지, 주민들이 막내딸의 생존소식을 고대하고 있던 이양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특히 혜진이와 함께 실종된 우예슬양 어머니가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양의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함께 오열했다. 또 뉴스를 보고 왔다는 이양의 학교 친구들도 이양 집 앞에 모였다.

저녁 7시 막내딸의 피살소식을 듣고 뒤늦게 집으로 달려 온 이양의 아버지 이아무개(46)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린 채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9시 20분께는 이양의 오빠(18)가 귀가했다.

오후 9시께 이양 집을 찾아 40여 분간 가족들을 위로하고 나서던 안양시 만안구청장은 기자들의 취재에 "뉴스를 보고왔다. 너무 애통한 일이다"고 말한 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 13일 저녁 혜진이 집을 찾은 안양시 안정웅 만안구청장 ⓒ 최병렬


"아직도 아닐 거라고 믿어요. 혜진이는 다시 올 거예요. 우리집에 다시 왔다 갈 거예요. 겨울 내내 대문도 잠그지 않았는데. 엄청 명랑하고 활발한 아이였고 우리 집 효녀였는데…. 직장 다니면서 혼자 있게 한 게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밤 10시. 이양의 어머니 이씨가 집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씨는 단독주택 2층에서 힘들게 계단을 내려와 대문 앞 담벼락에서 기자들에게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어머니 이씨는 "말할 기분이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겨울 내내 고생들 많이 하셔서"라고 말문을 연 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올 줄 알았는데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씨는 "형사들이 (혜진이가) 머리카락이나 신발, 손톱에 매니큐어물이 들었는지 물어보기에 우리 딸이 아니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혜진이 머리끈 얘기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에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양 죽음이 사실로 확인된 이날 저녁 안양8동 이양 집 앞에는 신문, 방송사 등 언론 취재진들이 속속 몰려들어 비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밤늦게까지 북새통을 이뤘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 다시는 안 일어나야"

▲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았던 안양시민들 ⓒ 최병렬


실종된 어린이 이혜진양이 결국 토막 살해되어 유기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시민들과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반인륜적 범죄에 분노했다.

두 어린이의 무사귀환을 빌며 노란리본 달기운동에 나섰던 안양8동 주민자치위원회 박찬용 위원장은 "실종 어린이들을 찾을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니 너무 비통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혜진양이 다니던 안양 명학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 이화용(41)씨도 "혜진이가 범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길 기원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범인을 반드시 잡아 이 땅에서 더 이상 이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웃 주민 고아무개(63)씨는 "혜진이가 실종된 날이 크리스마스라서 부모가 케이크를 사다 놓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며 "어린아이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에게 똑같이 한들 부모 마음이 위로가 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실종된 이양과 우양을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안양문예회관옆 수입상품코너 주인 임아무개(41)씨는 "어제 수원 암매장 어린이 발견보도를 접하고 실종된 두 어린이일 거란 느낌이 들었다"며 "어떻게 이런 끔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오열하는 교사들과 이양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온 명학초등학교 이윤형 교장은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돼 안타깝다"며 "혜진이가 하늘나라로 잘 가기를 바라고 범인이 꼭 잡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혜진이와 예슬이가 다니던 안양 명학초등학교는 교사들에게 14일 출근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오도록 했다.

경찰, 시신 발견 현장 주변 수색 강화

▲ 두 어린이의 무사귀환을 희망했던 시민들 ⓒ 최병렬


이에 앞서 지난 11일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 과천-봉담 고속화도로 호매실 나들목 인근 야산에서 여아로 추정되는 토막시신이 훈련중인 예비군에 의해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시신의 DNA 확인작업에 들어갔고 13일 오후 이 시신이 이혜진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연합뉴스>보도에 따르면 시신은 10토막이 난 채 3군데로 나뉘어 암매장 돼 있었으며, 머리와 몸통 등 2개 부위와 팔 다리 등 나머지 8개 부위가 3m가량 거리를 두고 각각 30㎝ 깊이로 파묻혀 있었다.

경찰은 실종된 이양의 신원이 확인됨에 따라 시신이 발견된 현장 주변의 흙을 수거해 머리카락 등 용의자의 단서확보에 나서는 한편 우예슬(8)양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주변 현장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수색 및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경찰은 살해된 이양 예상 이동경로(안양시 안양8동→수원시 호매실동)를 분석해 수색지역을 확대하고 안양8동 일대에 대해서도 원점부터 재수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 아이들이 실종된 안양8동 위성 지도 ⓒ 최병렬


덧붙이는 글 [ 이혜진.우예슬 실종사건 일지 ]

2007년
▲12월 25일 오후 5시 = 이혜진(10), 우예슬(8)양,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문예회관 인근 상가주인에게 목격된 뒤 실종.
▲12월 26일 오전 0시20분 = 우양 모친, 안양경찰서 명학지구대에 미귀가 신고.
▲12월 27일 = 안양경찰서 합동심사위원회 결과 범죄피해 실종사건으로 규정, 전담팀(강력7팀) 구성.
▲12월 28일 = 안양경찰서 냉천파출소에 수사본부 설치 및 엠버경보 발령
▲12월 31일 = 경찰, 공개수사로 전환 및 안양·군포 등 수색 강화.

2008년
▲1월 5일 = 안양시민들 수리산 수색 등 경찰 지원 본격화
▲1월 8일 = 신고보상금 2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상향 조정.
▲1월 8일 = 안양YMCA 제안으로 무사귀환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 시작.
▲1월 8일 = 안양시장, 부서장 회의에서 전 행정력 동원 지시.
▲3월 6일 = 어청수 경찰청장, 실종사건 원점서 재수사 지시.
▲3월 11일 오후 4시45분 =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IC 인근 야산에서 암매장된 여아 토막시신 발견.
▲3월 12일 =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시신은 8~10세 여아로 밝혀져.
▲3월 13일 = 국과수 DNA 대조결과 숨진 여아는 이혜진양으로 확인.

최병렬 기자는 안양지역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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