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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처럼 엉켜있는 개구리 알, 그 속에 담긴 봄

[북한강 이야기 284] 개구리 소리에 성큼 다가서는 봄

등록|2008.03.16 16:02 수정|2008.03.16 17:30

▲ 개구리알은 '젤'처럼 점액질로 엉켜 있습니다. 아! 생명은 신비롭습니다. 신비 앞에 내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 윤희경


봄비가 살짝 스치고 지나간 자리, 바람 한 점 없는 따스하고 해맑은 봄날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바람에 꿈쩍도 않던 땅 밑 손님들이 이제야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합니다. 어젯밤엔 개구리들이 봄밤을 자근자근 씹어내며 생명의 신비를 여는 설렘으로 한 잠도 못 잤습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다 그치고 그치다 또 들리곤 합니다. 여름 개구리 소리는 와글와글 시끌벅적하여 풍물장이 서는 시골장터 같지만, 봄날의 듣는 소리는 조신하게 앞가슴을 풀어헤칩니다. 땅 속을 조금씩 흔들며 봄바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만큼 봄날의 개구리 소리는 가녀린 숨소릴 조금씩 토해냅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은 '개구리가 맹자를 읽기 시작한다'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오늘 한낮 개구리 소리에서 두런두런 글 읽는 소릴 듣습니다. 또 어린시절 코를 흘리며 어머니 앞에 무릎 꿇고 한글을 처음 배울 때 목소리가 환청 되어 귓가를 맴돕니다. 그런가하면 아기가 젖을 달라 칭얼대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 개구리가 수많은 알을 낳느라 힘이 든건지, 추운건 지 돌멩이 위에 앉아 왕눈을 스르르 감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며... ⓒ 윤희경

감자 눈을 따다 카메라를 들고 일어나려니 일하다 말고 어딜 도망가느냐는 옆지기의 눈총이 따갑습니다. 봄을 일으켜 세우는 소릴 듣고 앉아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소리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떨림이며 놀라움이고 환희입니다.

요새는 시골에서도 개구리 소리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 소리는 분명 개구리 소리입니다. 산 밑 뜰 밖 샘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우물 속엔 개구리 알들이 가득합니다. 해맑은 봄볕 아래 반들거리는 개구리 알들은 만지면 금세 터질 것만 같습니다.

개구리들이 놀랄까 조심스레 두 손에 담아봅니다. 미끈미끈 호로록 이내 흘러내립니다. 마치 젤처럼 엉켜있는 점액질 속은 검은 깨알 같기도 하고 잘 익은 포도 알, 구슬 풍선을 닮았습니다.

▲ 개구리가 알을 낳느라 살이 쪽 빠졌습니다. 허리가 사뭇 잘룩해 섹시하기까지 합니다. ⓒ 윤희경



도롱뇽도 개구리 알 옆에다 동그랗게 알을 낳아놓았습니다. 알들이 샘물 속에 똬리를 틀고 조금씩 움직거리는 모습이 참 신비스럽습니다. 놀라운 광경에 목울대가 저절로 들먹거립니다. '와, 세상에! 고맙다' 소리가 자꾸만 튀어나옵니다.

▲ 도롱룡 알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나무가지에 달아 놓았습니다. 도롱뇽의 아이큐는 얼마나 될까 ⓒ 윤희경

무엇이 고맙단 말인가, 따사로운 봄날에 자연이 주는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겠기 때문입니다.

도롱뇽은 제근, 꼬리치레, 네반가락, 고리 등 환경부 지정 특정 생물로 청정 환경 가늠자라 그만큼 귀한손님입니다.
 도롱뇽 어미는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질 않습니다. 야행성이니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 때입니다. 알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낌새가 보입니다. 모래 속을 톡톡 헤집는 순간 도롱뇽 어미가 화들짝 튀어나옵니다. 다리가 네 개, 틀림없는 물 속 도마뱀처럼 생겼습니다. 암컷 도롱뇽은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이 언제냐 싶게 아랑곳없이 알들을 지키며 혼자 살아갑니다.

개구리와 도롱뇽 알을 구경하느라 많은 시간을 샘터에서 보냈습니다. 감자 눈을 따다 소식이 없으니 이 사람이 미쳤나 하겠습니다. 일상이 늘 보잘 것 없는 시골 생활이지만, 봄을 열고 일어나는 우물 안 풍경과 작은 생명들의 꼼지락거림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 도롱뇽은 알을 낳으면 늘 솔로로 외롭게 살아갑니다. 알이 부화될 때가지.. ⓒ 윤희경

봄이 오는 소리가 예서제서 감지되지만 개구리 소리는 봄을 일으켜 세우는 마지막 합창입니다. 개구리가 한 번 입을 벙긋거릴 때마다 작은 생명들이 움직거리고 세상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개구리 성화에 못 이겨 달래, 냉이, 꽃다지는 물론, 급기야는 개나리 진달래 버들강아지도 눈을 뜨고 다투어 피어납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점점이 들려오는 속삭임에 봄이 축복처럼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를 클릭하면 고향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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