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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재정, 왜 없는 사람이 더 내야 하나

100여년 전 무상교육 지원기구 양현고가 지금 필요한 이유

등록|2008.03.18 14:58 수정|2008.03.18 21:24
학부모는 봉이다. 월급쟁이도 봉이다. 너도 봉이고, 나도 봉이다. 세금 낼 때도 봉이고,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고 수업료나 등록금 낼 때도 봉이다. 부자나 고수익 전문직보다 많이 거둬가도 그냥 징수당하고, 학교에서 내라면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납부하니, 영락없는 봉이다. 그래서 우습게 안다. 학부모를 우습게 알고, 유리지갑을 우습게 안다. 정작 걷어야 할 곳에는 황송해 하거나 줄여주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노동자 서민의 호주머니만 턴다.

고려 말이나 조선 후기에 수취체계가 문란하여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만연하였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어쩜 후대의 역사가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그렇게 말할지 모른다.

없는 사람이 많이 내는 교육재정

[표1] 교육세 부가세율교육세, 어떻게 거두나 ⓒ 송경원


교육재정을 조성할 때에도 없는 사람이 많이 낸다. 일단 내가 내는 내국세 중에서 20%가 학교에 간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금은 간접세가 많다. 같은 액수라도 월 600만원 버는 사람의 1000원과 180만원 버는 사람의 1000원이 다른데, 부자나 서민이나 똑같이 천원을 낸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서민이 더 많이 내는 셈이다.

교육 목적세인 교육세는 좀 더 웃긴다. 맥주 마시면서 60원 내고, 담배 피면서 320원 내고, 차에 휘발유 넣으면서 80원 내는 식이다. 재산세나 특소세에도 교육세가 부과되나, 담배와 휘발유․경유에서 걷는 교육세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낮부터 열심히 술 마시고, 담배 많이 피고, 쉼없이 주유소를 찾아가야 한다. 참, 가까운 경마장 가서 도박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이것으로 끝나면 그나마 낫다. 학부모라면 성실히 납부하는 세금의 20%와 교육세 외에도 추가로 학교에 또 내야 한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는데, 누가 수익자일까

여기다 수업료나 등록금을 또 낸다. 세금 냈으면 그만이지, 또 낸다. 서당처럼 모든 학교가 사적인 교육이라면 수업료나 등록금을 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육 체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대신 그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는게 공교육이지 않은가. 그래서 공교육 체제에서는 웬만하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따로 손을 벌려서는 안 된다. 의무교육이냐 아니냐에 따라 정도는 다를 수 있으나, 세금을 걷는 이상 별도의 경비를 요구하는 것은 극히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또 낸다. 학교운영지원비도 납부하고, 학교급식비나 현장학습비도 낸다. 대학은 등록금을 요구한다. 사학의 경우, 재단은 생색내기 껌값만 내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주머니에 큰 손을 쑤셔 넣는다. 안 내거나 못 내면 학교를 다닐 수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마련하여 낸다. 교육부가 발표한 한 해 평균 등록금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2005년에는 9조원, 2006년엔 10조원, 2007년엔 11조원을 갖다바친 셈이다.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상관없다. 

이렇게 된 논리는 간단하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란다. 교육을 받으면 개인에게 이득이 돌아가니, 수익자에게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럴 듯하다.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많이 버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교원대학교 장수명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상위 5개 대학 졸업생이 그 다음 5개 대학 출신자보다 월 50만원 더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등록금에서 그만큼(월 50만원 × 12개월 = 년 600만원) 차이나는 건 아니다.

물론 학벌간 임금격차에 따라 대학간 등록금이 다른 일이 실제로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자꾸 이야기하는데, 수익자가 과연 누구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 고등학교만 마친 경우보다 월급이 많은 건 사실이다. 대학교육으로 개인이 이득을 본다. 하지만 개인만 그런가.

대학 졸업하면 보통 공무원이 되거나 기업에 취직한다.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교육받은 인재를 공급받는 격이다. 아니 정부야 공교육체제를 운영하니 비용과 효과 면에서 정부보다 기업이 더 나을지 모른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다. 사람만 있다. 교육이 잘 돼야 경제도 좋아지고 사회가 발전한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교육의 결과가 직간접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그럼, 교육의 수익자는 누구인가? 개인 만인가. 아니다. 사회도, 정부도, 기업도 많은 이득을 본다.

따라서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교육받는 개인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돈을 또 내야 한다면, 개인 뿐만 아니라 정부도 내야 하고, 기업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만 엄청난 대학등록금을 낸다. 학생과 학부모만 등골이 휜다. 정부나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코만 푼다. 대학교육의 효과를 직간접적으로 누린다. 나쁘게 말하면 놀부심보요, 저들의 논리로 좋게 말하면 최적의 저비용 고효율 상태다.

요즘은 기업이 기부하고 있으나

대학간 편차가 심하다. 상위권 대학은 신나지만, 나머지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한다. 기부금이 대학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의 기부금을 많이 받는 대학이 마냥 좋을까.

고려대에는 LG-포스코관과 100주년 삼성관이 있고, 이화여대에는 신세계관, 연세대에는 삼성관이 있다. 물론 지금은 기업 기부금으로 건물짓기도 유행이 지났다. 대신 기업이 직접 대학 캠퍼스에 들어간다.

고려대 버거킹, 이화여대 스타벅스, 연세대 그라지 커피숍, 서울대 투썸플레이스, 서강대 홈플러스 등이 최근 추세다. 이런 모습을 무조건 좋게 봐야 할까. 기업의 사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대학간 양극화가 초래되고, 운영원리가 서로 다른 이윤 추구 행위와 교육이 직접 만나는데, 과연 괜찮은 걸까. 

이럴 바에는 공적 자금을 조성하는 게 훨 낫다. 기업이 부담하지만 중간 단계를 거쳐 대부분의 대학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게 낫다. 영리행위와 교육행위의 운영원리가 전혀 다르니, 그 사이에 완충지대를 두는 게 현명하다.

각종 등록금 해결 방안들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표2] 교육분야 중기 재정투자계획교육부, 2008년도 교육부 예산 및 기금운영계획 개요, 4쪽. ⓒ 교육부



결국 재원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과도한 등록금에 대한 많은 해결방안이 제시되었다. 국가장학체제, 인상 상한제, 액수 상한제, 후불제, 사학 적립금 상한제 등이 나왔다. 어떤 건 문제있는 것으로 이야기 되기도 했고, 어떤 것은 괜찮은 방안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특히, 등록금 후불제와 상한제는 의미가 있다. 주택 문제 해결 방안에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재원이다. 등록금이 년 10조원이 넘기 때문에 방안만 가지고는 곤란하다. 년 10조원의 전부나 일부를 보전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 재원이 있다면, 그동안 나온 방안들로 최적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역으로 뚜렷한 재원이 없으면 좋은 방안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 만큼 대학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으로 법인세를 제안한다. 대학교육의 수익자가 기업이니 만큼, 기업의 법인세로 등록금을 줄여야 한다. 2007년 법인세가 35조원 걷혔는데, 그 10%면 3조 5천억원이고 20%면 7조원이다. 여기에 대학교육의 또 다른 수익자인 정부가 보태야 한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속할 정도로 고등교육 투자가 인색한데, 최소 OECD 평균 수준까지라도 차근차근 늘려야 한다. 마침, 2008년 1월 1일 교육부는 2008년 예산 개요를 발표하면서, 2011년이 되면 교육부 예산만 2007년보다 12조원 늘어날 계획이라고 하였다([표 2]). 12조원이 늘어난단다. 그럼, 그 중의 일부만이라도 등록금 문제 해결에 보태야 한다.

동시에 등록금 해법으로 건강보험료처럼 소득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달리 책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똑같은 300만원이라 하더라도 저소득층과 부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부자는 년 천만원의 등록금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힘겨운 사람은 아예 대학다니지 말라는 소리다. 잘 사는 아이들이 많이 들어가는 대학에서는 등록금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에서는 심각하다.

그런 만큼 소득수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책정해야 한다. 교육부가 학자금 대출의 이자율을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르게 하고 있는데, 이자만 그러지 말고 등록금 원금에도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서 후불제를 함께 시행한다면 등록금 걱정없는 나라가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집 소득수준에 따라 등록금 다르게 내자"(소득 맞춤형 등록금의 예)
     - 소득 하위 10%(저소득층): 등록금 제로
     - 소득 하위 10~30%: 반의 반(2007년 기준 학생 1인당 평균 년 146만원 학기 73만원)
     - 소득 중하위 30~60%(4~6분위): 절반(2007년 기준 년 293만원 학기 146만원)
     - 소득 상위 40%(7분위) 이상: 등록금 100%(2007년 기준 년 587만원 학기 293만원)

필요 재정: 2007년 기준으로 3조 2천억원
     - 국공립은 전액 정부 부담, 사립은 정부와 재단이 2:1 매칭펀드로 부담할 경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무상교육이 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무상교육이 있었다.  국립대학 격인 국학·국자감(고려)이나 성균관(조선)을 다니게 되면, 따로 돈을 내지 않았다.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학이 발달하면서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이 점차 쇠퇴해지자 고려 숙종과 예종이 국립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지금부터 약 900년 전인 고려 예종 14년에 설치된 양현고는 이후 조선시대 성균관까지 이어진다. 그러면서 고려와 조선의 국립대학에서는 무상교육이 이루어진다. 조선 고종이 양현고를 폐한 1894년까지 그랬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등록금 천만원의 나라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면서도 등록금 천만원이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알바하고 신용불량자되는 나라다. 불과 100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 대학 무상교육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구 나이 45억살에 비하면 실로 찰나의 순간인데, 그새 같은 땅에 있지만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다. 어르신들의 말씀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만고의 진리는 한줌 흙이 되었다.

양현고를 다시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가 부자들의 장식품이 아닌 이상, 특별회계든, 기금이든, 장학재단이든 간에 대한민국에는 지금 양현고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송경원 기자는 노회찬과 심상정의 진보신당에서 주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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