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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인권이사회 '보편적 정례보고'에 포함된 양심적 병역거부

등록|2008.03.18 13:44 수정|2008.03.18 13:44
지난 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UN인권이사회에 제출된 2004~2007년 한국의 인권 상황을 평가한 ‘보편적 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보고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보고서에서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의 ‘시민적·정치적 권리’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유엔 등에서 권고한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제도 도입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뒤이어, 외교통상부도 2008년 5월 7일 시작되는 UN인권이사회의 UPR회기의 심의를 대비하여 UPR국가보고서(안)을 작성중이며 이와 관련하여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초안 중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내용은 이러하다(보고서 '정부의 정책적 노력' 21쪽 87항)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향후 개선될 국방제도 중 하나인 사회복무제도의 범위 안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편입하여 추진하기로 하는 방침을 세우고 여론조사 및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향후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의 현실에 적합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할 예정입니다.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통상부는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UN을 비롯한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국제인권단체들의 인권차원의 해결 압력을 국제적으로 받아왔다.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티끌만큼의 인권적인 시각을 가졌었다면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시기상조’라는 구호로 외면을 하면서 국내외적인 압력을 자초한 것이다. 매년 병역거부로 700여명을 수감하여 13,000여명을 범죄자로 낙인찍은 국가가 아직도 ‘시기상조’라고 하면 도대체 13만명을 수감시켜야 ‘시기도래’인가? 논리가 없는 주장은 반발이 더 거세어지게 한다.

미국무성 산하 민주주의 인권 노동국은 해마다 ‘국제종교자유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종교자유의 제한’ 항목에는 수년 간 단골메뉴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언급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처벌일변도였던 사법부의 개별 법관들이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 열린 시각으로 재판을 하고 있다. 추상같은 선고 대신에 ‘안타깝다. 곤욕스럽다’는 말로 피고인들의 양심을 추슬러주고 있다. 실형선고를 하되 상고심까지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배려한다.
향토예비군 대원으로 양심에 의해 훈련을 거부한 피고인에게 2007년 4월30일 울산지방법원에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결정을 하여 현재 헌법재판소(2007헌가12)에서 심리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최종 판례는 이미 2004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유죄와 합헌으로 결정된바 있다. 하급심은 대법원에서 판례위반으로 파기될 만한 판결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재판 실무상 판례의 구속력은 막중하다. 더욱이 심리사건이 국가의 체제나 안보와 관련된 경우에는 교과서적인 법 해석은 금물이고 현실의 여론에 더 다가서는 판결을 해야 한다. 양심과 소신에 따른 인권지향적인 판결을 하는 법관은 무모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튀는 판사‘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는 변하고 있다. 양심에 의해 입영을 거부하는 행위를 처벌해온 대법원의 판례가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기에 시대적 상황의 변화는 이렇게 기존 판례의 변경을 강요하고 있다.

그동안 사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공론화 되면서부터 이 문제의 해결을 주도해 오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과 무죄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행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법부의 압력이 더 거세어 질 것이라는 신호이다.

2006년 11월 UN인권이사회 산하 위원회에서는 한국정부에 대해서 2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처벌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권고했다. 그동안 줄기차게 국내의 사법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주장해 온 병역거부자들도 이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UN에 권리구제청원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 국가에서 동일한 사유로 한 해에 700명씩 신청을 하면 UN의 관련부서는 업무량 때문에 마비가 될지도 모른다. 국방부가 능히 그 외풍을 막을 내공이 얼마나 튼튼할지는 시간이 말 해 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개인권리청원은 연간  40여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동안 국방부는 일관되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권이사회의 권고는 권고일 뿐, 이행해야 할 의무가 없다면서 UN의 결의안 자체를 우습게 여기 왔다. 그러던 국방부가 이외로 UN인권이사회의 결의안을 유도하는 작전을 하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던 국방부의 인식변화가 신기할 따름이다. 2008년 1월 14일자 국방부의 보도 자료는 다음과 같다.

국방부는 “유엔총회 및 유엔인권위원회에서 (국군포로) 송환 결의를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유엔 결의는 특정 인권위반국에 대한 국제적 제재와 원조 결정의 객관적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어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방부는 “특히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유엔인권센터에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청원할 수 있다며 이들 단체의 청원서 제출운동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대한민국 국방부는 인권규약을 준수하고 있는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는 수차례의 UN결의에는 코웃음을 친 국방부가 어째서 북한은 UN결의에 약발을 받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가? 포로의 존재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이 인권이사회의 결의에는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국방부의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권단체의 동참까지 호소하고 있지 않는가?

국방부의 예상이 적중하여 북한이 손을 들게 되면, 이는 강도가 절도를 만나서 기절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북한 보다 더 경직된 조직임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참으로 기막힌 역설이다.

북한인권 개선의 요구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솔선하여 국제인권규약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따라서 국방부의 2009년 1월 1일 사회복무제에 병역거부자를 편입시키겠다는 약속은 요지부동이어야 한다. 만에 하나 인권이사회를 기만하기 위한 지연술이라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국방부는 사회복무법안의 입법이 될 때까지 병역거부자에 대한 입영기일을 일괄 연기 조치함으로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혜를 베푸는 관점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시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치권력에 기생해온 보수개신교의 반대에 절대로 눈치를 보아서는 안된다.
세계 역사상 기독교계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국가는 대한민국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뿐이다.

국가권력에 기웃거리며 급성장해 맷집은 비대한데 속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채우지 못한 탓이다. ‘국가가 있어야 종교도 있다’ 는 스스로의 근본을 부정하는 설교는 지도급 교직자들의 영성이 얼마나 세속화 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개신교의 비극이다. 원시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일탈한 이들이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가 버렸다. 사탄이 천사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군인은 총을 들고 국방을 하고 나머지는 삽을 들고 국방을 하는 것이 사회복무제도를 도입한 취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박애와 희생의 정신으로 인간국방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열어주자. 2007년 9월 18자 국방부의 보도자료가 나온지 이미 6개월이 지났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중간 보고 정도는 하는 것이 '국민을 섬기겠다'는 국군통수권자의 자세와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국방부의 시행 발표이후에도 월 60여명이 병무청의 고발을 받고 기소되어 상고심 재판을 대기하면서 생업에 많은 지장과 함께 휴학중인 학생들은 학업에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을 섬기겠다'는 구호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병역거부자들은 국내의 사법절차를 마무리하고 UN인권이사회에 개인권리구제청원을 계속하여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방부 관계자들의 인식 자체가 기본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해결의 의지가 취약하다. 종교적인 양심 혹은 사상, 신념, 인권에 대한 소양교육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인권기준에 부합되는 사회복무제 법안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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