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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시골버스는 365일 화이트데이~

버스운전 경력 20년 베테랑 기사의 승객 사랑

등록|2008.03.19 14:50 수정|2008.03.19 21:24
 

시골버스지금은 하루 중 제일 한적한 시간대이다. 다들 노인 분들이 타고 있다. ⓒ 송상호



여기는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시골버스 안입니다. 헐레벌떡 겨우 버스를 잡아탄 마을 아주머니 두 분이 숨을 몰아쉽니다.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는 한 번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당연지사일 겁니다. 차비를 요금함에 내고 아직도 채 자리에 앉기도 전, 그러니까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두 분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정말 인상적이라 귀에 확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사탕 아저씨'"
"뭔 소린 겨?"
"그거 몰랐던 겨. 이 아저씨가 사탕 주잖어."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왜 그런다고."

그러고는 그 두 분은 자리를 잡아 앉습니다. 지금은 오전 11시대 버스라 앉는 자리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옆에서 못 들은 척 빙긋이 웃고 있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바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우리 마을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입니다.

교통카드 체크기 바로 옆엔 사탕바구니가

이 아저씨가 왜 그렇게 불리느냐고요? 그것은 아저씨의 운전대 옆에 사탕 바구니가 있어서 승객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랍니다. 사탕바구니의 정확한 위치는 교통카드 체크기 바로 옆입니다. 그 바구니 안에는 항상 사탕이 들어 있습니다.

그 아저씨가 우리 마을 버스를 운전한 지도 몇 년 되었지만, 사탕 바구니의 전통은 스스로 잘 이어가십니다.  그 사탕을 준비하도록 버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 아저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사탕 바구니에 사탕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시골 마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박하사탕·누룽지사탕 등을 비롯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청포도사탕·오렌지 사탕 등. 그래서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 수밖에 없나 봅니다.

한 번은 우리 마을 아이들이 탔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이 버스를 탈 때 사탕을 몇 개 집어 듭니다. 그것도 아저씨 눈치를 슬그머니 보면서 말입니다.

그러더니 웬걸요. 마을 앞에 버스가 서니 그 꼬맹이들 중 하나가 부리나케 운전석 옆으로 가서 사탕바구니에 손이 들어가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버스엔 타는 입구가 운전석 옆이고, 내리는 출구가 버스 중간쯤에 있잖습니까. 그 아이가 사탕을 많이도 집지 않고 달랑 두 개를 집어 들었던 겁니다. 그 날따라 그 꼬맹이가 좋아하는 사탕이 들어 있었나 봅니다.

그 꼬맹이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볼 새도 없이 버스에서 내립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야단 한 번을 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사탕바구니문제의 사탕 바구니다. 여기엔 각종 사탕이 매일 같이 끊이질 않는다. 아저씨의 승객사랑이 빛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 임영조


더운 여름날, 꼬맹이 승객에서 아이스크림 쏜 아저씨

이 아저씨가 글쎄 지난 해 여름엔 버스 내릴 때를 놓친 우리 마을 꼬맹이를 상대로 친절을 베풀지 않았겠어요?

우리 마을에 내려야 되는데 깜박 잠이 든 꼬맹이가 내리지 못했나 봅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아저씨는 그 아이를 태우고 안성 시내에 있는 종점까지 내려오신 겁니다. 아저씨는 그 아이가 어디 사는 누군지 잘 알기에 편안하게 자도록 했다가 종점에서 깨운 것입니다.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버스가 이쪽 종점과 저쪽 종점의 거리라고 해봐야 버스로 20분 정도밖에 안 되긴 합니다.

그 아이를 깨우던 아저씨는 아이가 땀에 젖어 있는 걸 보았나 봅니다. 버스의 맨 뒷좌석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기에 더운 여름날 덕(?)을 톡톡히 본 모양입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평소 하는 행동인지 아저씨는 조그만 버스표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주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쪽쪽 빨고 있을 때 마침 내가 안성시내 종점에서 버스를 탄 게지요. 그리고 그 따스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고요.

이제 우리 집 막둥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둥이가 한 번은 버스를 내리면서 교통카드 목걸이를 두고 내린 겁니다. 그 날도 내가 안성시내 종점에서 막 버스를 타려는데 아저씨가 말을 건네옵니다.

"바다(우리 막둥이 이름) 아버지시죠. 이거 댁의 아드님이 두고 내린 겁니다."

이렇게 챙겨주신 아저씨의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나는 차마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버스표 매점에 가서 '피로회복 드링크'를 사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그 드링크를 전해주었죠.

사탕 주는 아저씨, 껌 선물한 사람들... 아저씨 고마워요~

이 아저씨가 바로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는 시골버스의 운전기사 김용환 아저씨입니다. 아저씨는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부터 버스를 운전해온 20년 이상 된 베테랑 운전기사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거 아니지만 사탕바구니 하나로 세상을 이어주는 아저씨의 마음만큼이나 인상도 포근합니다. 그 고마움의 대가로 시골 승객들이 졸릴 때나 심심할 때 먹으라고 각종 통에 담긴 껌을 선물하게 만든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아저씨의 사탕 바구니에는 예쁜 사탕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흔들리는 시골버스를 타고 여행중일 겁니다. 그 사탕이 바구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아저씨의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싣고서 말입니다. 

승객들로 부터 사랑을 돌려 받은 아저씨의 증거다. 고마운 마음을 시골 어르신과 아주머니들이 표시한 것이다. ⓒ 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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