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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비에 작사·작곡가 이름을 찾아주세요

창작물은 작가의 피와 땀으로 만드는 결실

등록|2008.03.20 14:57 수정|2008.03.20 17:12
최근에는 문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연구 논문까지 걸핏하면 자기 것처럼 표절하여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 말썽이 되고 있다. 발각되면 그만이고 발각 안 되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만연되고 있는 것 같다.

창작물은 한 작가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는 고통의 결실이다. 어느 분야고 한가지일 테지만 창작물은 기계에서 과자를 찍어내듯 마구 찍어 내는 상품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색하고 연구하고 살을 깎는 고통 속에서 겨우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다. 여북하면 산고(産苦)에 비유할까. 아이 낳는 것만큼 힘이 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각 지방마다 자기 고장의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 음악가들의 작품을 시비나 노래비로 만들어 그 고장의 관광명소로 자랑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는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생 동안 돈과 담을 쌓고 가난에 시달리며 작품에 몰두한 예술가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테니 말이다.

문제는 큰 공원에 세워져 있는 시비나 노래비에 작사가나 작곡가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악보나 노랫말만 달랑 집어넣고 누가 작곡을 하고 누가 작사를 했는지 기록이 안 되어 있다. 고의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아직도 이런 작은 실수가 예술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제작할 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실수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사·작곡가 이름 없는 노래비

나는 무심코 부평공원(인천광역시 부평구 소재)을 지나가다가 큰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석(烏石)으로 가로 2미터 30센티, 세로 1미터 30센티의 대형비석이었다. 이 정도의 비석이라면 값도 만만찮게 나갈 것이다. 더구나 이 공원은 위치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쉼터다. 4만 3천 여평의 넓은 공원에 작은 언덕과 놀이시설, 우거진 나무들, 걷는 길 등이 잘 조성되어 시민공원으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비석 한쪽 면에는 부평공원이라는 글씨가 새겨지고 또 시민들이 자주 다니는 쪽 면에는 누구나 즐겨 부르는 '고향의 봄' 악보가 실려 있다. 한쪽으로 보면 공원 이름이지만 다른 한쪽으로 보면 노래비인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노래비에 악보와 가사만 있고 누가 작곡(홍난파)하고 누가 작사(이원수)했는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알맹이가 빠진 노래비만 덩그러니 서 있는 셈이다.

공원측은 우리가 늘 그리워하는 고향을 연상하리만큼 조용하고 숲이 우거진 아늑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선택한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도 작사가나 작곡가의 이름은 빼먹지 않을 것이 아닌가. 작곡가나 작사가의 이름을 넣음으로 더 아름답고 더 고향 같은 공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그곳에 가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동산이 있고,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냇가. 그리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감이 영글어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있고, 언제나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집이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고향이 없다고 한다. 고향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 오면 고향에 온 듯 가슴이 찡해 온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고향의 봄' 노래비에 작곡가와 작사가의 이름을 밝힌다면 더 아름다운 공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이동에서 한번 뵌 이원수 선생님

나는 이원수 선생님을 생전에 한 번 뵌 적이 있다. 우이동 골짜기에 정말 그림 같은 작은 집에서였다. 명성에 비해 너무 작은집이어서 조금 당황했지만 노년의 선생님은 행복하셨다. 선생께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작은 뜰 앞에서 포즈를 잡아주시며 환하게 웃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린 아이처럼 사진 찍는 것이 수줍어 얼굴을 붉히던 선생님은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나는 우이동을 지날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하곤 한다.

오늘 아침 부평공원에 들렸다가 '고향의 봄' 노래비를 보고 문득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 반가움에 앞뒤 양면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노래만 있고 선생님의 함자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하루속히 그 분들의 이름을 밝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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