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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계단이 끔찍한 살인현장이 됐으니..."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 현장검증 실시... 주민들, 피의자 정씨에 계란 투척

등록|2008.03.22 18:38 수정|2008.03.22 19:22

▲ 현장 검증에 모습을 보인 피의자 정모씨 ⓒ 최병렬


경기 안양 초등학생 유괴·살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경찰청 수사본부는 22일 안양 실종 어린이 이혜진(11), 우예슬양(8)을 납치해 살해한 정아무개(39)씨의 안양8동 집에서 오후 1시 10분부터 2시 20분까지 검찰 입회 아래 약 1시간 10여 분 동안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피의자 정씨가 사는 집은 경기도 안양시 안양8동 (구) 안양경찰서 사거리에서 성결대학교 방향으로 가는 길에서 좌측의 다소 비탈진 골목 언덕길을 올라가면 있다. 정씨네 집에서  혜진이네 집은 130m, 예슬이네 집은 40m 떨어져 있다.

피고인 정씨를 경찰 차량에 태워 안양경찰서를 출발한 경찰과 검찰은 오후 1시 8분께 범행 현장인 안양8동 정씨 집앞 골목에 도착해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가 정씨가 두 아이들을 살해해 훼손하고 두개의 김치독에 넣어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재현했다.

▲ 피의자를 태우고 안양8동 검증 현장으로 들어서는 경찰 ⓒ 최병렬


▲ 현장검증에 대해 논의를 하는 검찰과 경찰 ⓒ 최병렬


이날 경찰은 현장 검증이 실시된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 정씨 집으로 연결되는 모든 골목길 입구를 차단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대로변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피의자 호송차량에 탄 정씨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또 정씨 집 이웃에 사는 연립·다세대 주택 담벼락에도 200여 명의 동네 주민들이 빼곡히 얼굴을 내밀고 처참하게 살해된 어린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정씨를 비난했다.

"얼굴 보자! 무릎 꿇고 사죄하라 해라"

▲ 피의자 정씨를 보기위해 현장에 나타난 이혜진양 어머니 ⓒ 최병렬


"그놈 얼굴 한번 보면 돼. 마스크와 모자는 왜 씌워.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해라. 우리 막내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 텐데 엄마가 이러면 안되겠지? 그런데 자식 잃은 부모의 처지는 또 달라."

오후 1시 20분께 현장검증을 실시중인 정씨의 집앞. 살해된 이혜진양 외삼촌들과 함께 도착한 이양 어머니 이달순(42)씨는 경찰들에게 "그놈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며 "왜 얼굴을 가리느냐. 모자도 마스크도 벗기고 무릎을 꿇리고 사죄케 하라"고 요구했다.

이양 어머니는 경찰이 현장 검증을 마치고 정씨를 경찰 차량에 태우기 직전 "그 놈 얼굴을 보여달라"고 소리를 지르다 형사들이 이를 제지하고 나서자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해지켜보는 이웃 주민들과 취재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 눈물을 흘리는 이웃 주민과 혜진.예슬이 학교 학부모들 ⓒ 최병렬


정씨 집앞 골목길 입구에서 정씨를 기다리던 이양의 외삼촌도 정씨가 경찰에 이끌려 범행 현장인 집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자 "이놈, 네가 우리 혜진이를 죽여. 얼굴 한번 보자. 범인 얼굴 공개하라"고 소리 지르며 어머니 이씨와 함께 오열했다.

오후 2시 20분께 경찰이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오자 혜진이, 예슬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학부모들과 주민들은 차량에 타려는 피의자 정씨를 향해 계란을 투척하면서 "혜진이와 예슬이를 살려내라" "경찰은 범인 얼굴을 공개하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또 정씨를 태운 경찰차량이 골목길을 나서자 이혜진양 어머니 이달순(42)씨는 이양 외삼촌들과 함께 큰길까지 쫒아가며 "우리 막내 살려내라"고 소리치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해 지켜보던 이웃을 안타깝게 했다.

"천국의 계단이라 불렀는데 살인현장이라니"

▲ 범행 현장 검증 과정을 지켜보는 이웃 주민들 ⓒ 최병렬


▲ 범행현장인 피의자 정씨 집앞 골목길 ⓒ 최병렬


정씨 집앞 골목길 오른쪽으로 불과 10여m 떨어진 다세대 주택에 사는 김혜숙(43)씨는 "이 동네서 여자 속옷들이 자주 없어져 주민들 사이에 인근에 성도착증 환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해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관심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김씨는 "혜진이, 예슬이 실종 전단이 처음 뿌려진 후 옆집에 사는 정씨 집에 의심이 가 경찰에 신고도 했었다"고 밝히고 "경찰이 수색할 때도 말했는데 결국 아이들이 참혹하게 죽었다"면서 "아이들의 살해를 미연에 막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현장검증후 정씨집을 보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 ⓒ 최병렬


- 정씨 집에 동네 어린이들이 자주 놀러 갔었다는데 보신 적 있나요?
"아이들이 그 집 앞에 가서 자주 놀고 그랬어요. 청소년들이 술먹고 담배 피기도 하고요. 그 집을 가려면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하잖아요. 하늘 위로 계단이 나 있어서 동네에서는 천국의 계단이라 불러요. 그런데 끔직한 살인현장이 됐으니…."

이어 김씨는 "처음부터 그 집을 의심을 했지만 정말 이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며 "(피의자 정씨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딸을 키우는 처지에서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가 아파트도 아니고 빈민가에 살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범죄가 발생해 시민이 신고하면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경찰의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놓았다.

▲ "우리 막내 살려내.." 큰길까지 달려온 이혜진양 어머니 ⓒ 최병렬


▲ "우리 막내 살려내" 길바닥에서 통곡하는 혜진이 엄마 ⓒ 최병렬


한편 어수선한 골목길에서 이혜진양의 외삼촌이 "할 말이 있다"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이양 외삼촌은 "지난 17일 혜진이 영결식에서 유가족 입장에서 그동안 실종된 혜진이를 찾기위해 애를 써준 주민들과 안양시민들,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했으나 행사에 포함되지 못해 화도 나고 죄송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양 외삼촌은 수원 연화장에서 혜진이를 화장하면서 그같은 유가족의 뜻을 방송사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말했으나 방송에도 나오지 않았다면서 "우리 가족들이 혜진이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만큼 감사하는 마음도 갖고 있음을 꼭 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성탄절인 12월 25일 피의자 정씨에게 유괴돼 살해된 두 어린이 중 실종 77일 만인 지난 11일 수원의 한 야산에서 토막난 사체로 먼저 발견된 이혜진양은 명학초등학교 학부모회가 주관하는 가족장으로 치러져 안양시립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됐다.

현재 경찰은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에서 우예슬(9)양의 시신을 찾고 있으나 머리 부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우양의 시신이 언제 가족에게 인도될지 아직 미정인 상태. 한편 영결식을 두번이나 치러야 하는 명학초교 학생들이 받을 충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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