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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의 '민주화 대부', 한나라당 벽 넘을까

[18대총선, 이곳이 뜨겁다 ④ 서울 도봉갑] '인물론' 김근태에 '안정론' 신지호 추격

등록|2008.03.23 11:34 수정|2008.03.27 15:59

▲ 4·9 총선 서울 도봉갑에서 맞붙는 김근태 통합민주당 후보(왼쪽)와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 ⓒ 최윤석 권우성

"김근태 의원? 잘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것도 없지."
"경제 살리려면 한나라당에 힘 실어줘야지, 근데 신지호가 누구지?"

22일 오전 서울 도봉구 쌍문1동 백운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다. 과일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김근태 의원은 총선 때나 오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1년에 대여섯 번 동네를 방문해서 이미지가 좋다"고 말했다.

방앗간에서 깨를 찧고 있던 김수민(46)씨는 "이곳은 호남인구가 많고, 지역구 자체가 야당성향"이라며 "김근태 의원에 대한 평이 좋아 웬만해선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김 의원이 지역구 관리를 잘 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반면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서는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치 신인인 신 후보의 인지도는 아직 낮은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은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안정론'에 동감을 표시했다.

이날 찾은 서울 도봉갑의 민심은 아직까진 인물은 김근태 의원을, 당은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서울 도봉갑... "4‥9 총선의 하이라이트"

▲ 22일 오후에 낮은 서울 쌍문역 인근의 김근태 의원 선거사무소 모습. ⓒ 선대식

서울 도봉갑은 오는 4.9총선에서 주목해야 할 지역구 중 한 곳이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9총선의 하이라이트는 도봉갑"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야당 중진의원에 대한 한나라당 정치신인의 도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불꽃 튀는 맞대결이 펼쳐지는 곳이 도봉갑이다. 원 의원은 "역사의 흐름에 대한 국민 평가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서 진보를 대변하는 김근태 의원은 4선에 도전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여당 의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한 민주당의 거물이다.

뉴라이트 진영의 기수인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보수를 상징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했던 그는 서울 도봉갑을 '뉴라이트 대 올드레프트의 대결, 구시대와 새시대의 충돌'이라고 규정하며 "새 시대의 상징인 내가 당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봉갑의 총선 결과는 중도개혁세력의 지지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지역은 김근태 의원이 내리 3선을 할 정도로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양 캠프 모두 호남 출신이 지역 전체의 30~40% 정도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신 후보가 승리할 경우, 서울에서 민주당이 발 디딜 곳은 더는 없게 되는 셈이다. 신 후보 스스로도 "나의 승리는 선거 혁명"이라고 규정했다.

현재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는 김 의원이 신 후보에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21일 발표된 <한국일보> 조사에서는 김 의원의 지지도는 43.3%로 신 후보(29.8%)를 14.4%p차이로 따돌렸다.

같은 날 MBC-<동아일보> 조사에서도 김 의원이 41.0%, 신 후보가 27.3%의 지지도를 기록, 13.7%p의 격차를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서 서울 도봉구 지역 주민들이 한나라당에 몰표(53.12%)를 던진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여론조사 앞서가는 김근태... '안정론' 바람이 불면?

지난 17대 총선 때는 중앙 정치무대에서 바빴던 김근태 의원은 이번 선거에선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대선 참패 직후부터 거의 지역구를 떠나지 않고 밑바닥부터 발로 누비고 있다.

그는 22일 오전 6시 반부터 도봉구의 한 공원에서 시민들과 축구를 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 22일 오후에 찾은 서울 도봉구 쌍문역 인근의 거리 모습. 서울 도봉갑의 민심은 아직까진 인물은 김근태 의원을, 당은 한나라당을 선택하고 있었다. ⓒ 선대식

이날 만난 지역 주민들은 "김근태 의원이 잘 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에 찾은 쌍문역 인근 창동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신지호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의견과 함께였다.

시장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낙원(59)씨는 "손님들과 얘기해보면 '신지호가 누구냐, 김 의원의 상대가 약하다, 김 의원이 당선될 것이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자리를 함께 했던 손님 이아무개(68)씨는 "반대쪽에서 김근태 의원이 지역 발전을 못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오면 금방 발전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번엔 미장원을 찾았다. 총선에 대해 묻자 진귀동(46)씨는 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잔뜩 늘어놨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잡은 걸 실감 못하겠다, 유세하면서 경제 살린다고 잔뜩 기대하게 했다가, 계속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복재(43)씨는 "투표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그 때 잠이나 잘 걸 그랬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이어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크다"면서도 "아직 기대가 조금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김씨의 말처럼, 한나라당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은 상태에서 김 의원이 지지도에서 신 후보를 10~15%p 앞서고 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21일 <한국일보> 조사에선 이 지역 주민들의 경우 정당 투표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겠다는 쪽이 40.3%로 민주당을 찍겠다는 쪽(29.3%)과의 격차는 컸다.

그래서 김 의원 쪽은 한나라당-민주당 싸움이 아니라 인물 싸움으로 가져가려 한다. 이와 더불어 신 후보의 인지도 상승을 경계하고 있다.

인지도 낮은 신지호...새 정부 비판하면서도 '안정론'에 기대

▲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서울 도봉갑)가 22일 오전 도봉구 초안산 근린공원에서 아침운동중인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인물·학력·당 다 좋은데 인지도가 낮아서 걱정이다."

오전 8시 서울 도봉구 창동 초안산 등산로에서 신 후보가 명함을 건네자 한 시민이 던진 말이다. 인지도가 낮다는 점은 신 후보도 인정하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다. 신 후보는 "지지도에 뒤쳐지는 건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 것이다, 열심히 뛰고 있으니 급상승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푸른 색 점퍼에 푸른 색 운동화를 신고 이날 오전 7시부터 자신을 알리는 데 힘을 다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지역 주민이 지나가면 인터뷰를 중단하고 뛰어가 명함을 건넬 정도였다.

이종완 수행팀장은 "(신 후보가) 한 달 전 공천을 받은 다음부터 오전 6시부터 9, 10시까지 강행군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후보도 "선거 때는 괴력이 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신 후보의 발목을 잡는 것은 낮은 인지도뿐이 아니다. 새 정부의 실정도 지지도 정체에 한몫하고 있다. 그는 2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의욕이 지나쳐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새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한 신 후보가 기댈 곳은 역설적이게도 '새 정부가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힘을 주자'는 안정론이다. 신 후보가 초안산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여당 후보를 뽑아야 지역 발전이 될 것 같다"며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 후보는 "도봉구가 서울에서 제일 낙후됐다, 김근태 의원이 12년 동안 한 게 없다"며 "제가 당선되면 뉴타운을 유치하는 등 침체된 도봉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김승교 민노당 후보 "새 진보 변화 바람 일으키겠다"

양대 정당의 후보 사이에서 김승교 민주노동당 후보의 활동도 눈에 띈다. 서울 도봉구에서 처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내기도 한 김 후보는 이날 오전 7시 30분 쌍문역에서 출근 인사를 한 데 이어 오전 11시 반에는 청소 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는 "서민들의 이익 올곧고 꼿꼿하게 대변하고, 새로운 진보의 변화 바람을 일으켜 나가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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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가 되겠지...한나라당 후보는 누구여?" ⓒ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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