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도 칙칙함 벗고 발랄하게 가야"
[인터뷰] 민주노동당을 깨고 나온 입, 진보신당 신장식 대변인
▲ 신장식 진보신당 대변인 ⓒ 이종필
다짜고짜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을 깨고 나온 이유부터 물었다.
"너무 후졌다."
후졌다? 솔직히 이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단어였다.
"민노당은 국민들을 너무 모른다. 상식과 생활을 모른다. 자영업자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자고 하면 당내 과격좌파들은 쁘띠 부르조아들과 어떻게 같이 하냐면서 반발한다. 요즘 자영업자들 웬만한 직장인보다 훨씬 살기 어렵다."
-소위 종북주의자들은 어떤가?
"정책위의장이 북한에 갔을 때의 일화다. 노래 한 곡 하라는 주변의 청을 한사코 마다하던 한 접대원이 윗사람의 눈짓에 곧바로 노래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집단주의의 아름다운 품성'이라고 논평하던 사람들이다.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이정훈 최기영에 대해서도… 그들은 너무 표리부동하다."
그 표리부동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당내 자주파와 평등파 비율은 대체로 52(자주):48(평등)이라고 한다. 자주파 중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은 그 15% 정도이고 나머지는 선량한 민족주의자라고 분석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외치는 민노당 내에서 왜 종북주의가 문제된 것일까?
-종북주의가 왜 문제인가?
"그들은 항상 북한을 기준으로 남한을 바라본다. 북핵문제가 터졌을 때 '핵이 몇 개만 더 있으면 남북한이 모두 해방되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이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다. 이웃나라가 핵무기를 많이 가졌다고 우리를 보호해 줄 것 같은가.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북한 핵문제와 반미투쟁밖에 없었다."
민노당은 대선에서 참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종북주의는 이런 대선 결과를 놓고서 크게 증폭된 면도 있다.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실제 권영길 후보가 종북주의자들의 주장을 별로 한 것이 없지 않냐는 반론도 많은데….
"문제의 본질은 자주파 일부도 인정하듯이 당내 경선 때부터 분당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주파는 대중적인 정치인이 없으니까 권영길을 밀었다. 노회찬이나 심상정만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 전체의 진로보다 자기들의 패권에만 눈이 멀었다. 그리고 그 패권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종북주의라는 그들의 이념적 지향이다."
-그럼 권영길 후보를 선출한 것 자체가 문제였나?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권영길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내 조직적인 문제이다."
-권영길 후보도 이런 사정을 잘 알텐데 왜 후보로 나섰나?
"그 속내는 잘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나왔으면 대선 전체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문국현 후보는 아마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선 과정에서 특히 노회찬 후보에 대한 엄청난 인신공격이 있었다."
그래서 노회찬 후보의 부인이 무척 힘들어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신 대변인은 대선이 끝난 후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평범하지만 매우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던졌다고 했다.
"첫째, 이제 권영길은 어떡하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 속에는 어쨌든 그가 후보였으니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이제 누가 대표하냐, 비례대표의원은 누구냐 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민노당 전체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셋째, 부유세 좀 그만 얘기하라는 주문이 많았다. 부유세가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이제는 식상해진 면이 있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책과 아젠다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올바른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랬기 때문에 분당까지 온 것이다. 자주파는 대선평가도 무척 안일했다. '참패'조차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심상정 비대위를 거부했듯이 그들은 새로운 리더십을 거부했다. 국민과의 소통능력이 너무 저열하다. 대선 평가와 그 수습 과정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확인했다."
아무리 그렇기는 해도 민노당 이전부터 진보정당 운동을 해 온 그에게 민노당의 의미는 각별할 것 같았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정리는 필요한 것이니까.
-민노당 8년을 평가한다면?
"단적으로 말해 진보정당이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만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폐쇄적이고 종파적인 활동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반면에 국민들의 상식과 생활이 무엇이고 어떠한지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진보를 위한 가능성의 줄기세포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지만 진보의 내용이 새롭게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위에서 강림하듯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소통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여기서 나는 예전에 홍세화가 단병호에게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천만 노동자 계급의 계급의식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라는 홍세화의 질문에 단병호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응수했다. 신당의 대변인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홍세화가 던진 질문을 다시 묻고 싶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어디로 갔나?
"노동자가 더 이상 균일하지가 않고 그 분화가 매우 심하다. 고전적인 의미의 노동자 계급의식을 말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지금의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좁은 틀로 다 묶이지도 않는다.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정치를 통해 계급의식을 고양할 수 있어야 한다."
-민노당은 서민의 정당이라는데, 이는 오히려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서민의 욕구를 빼앗는 것 아닌가.
"그런 면이 있다. 민노당의 이미지는 칙칙하다. 40대의 고전적인 노동자만 떠오른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혹자의 말처럼 100가지 질문에 한 가지만 답변할 줄 알았다. 진보신당은 최대한 발랄하고 생기있게 가려고 한다. 우리로부터 새로운 문화나 가치가 나와야 한다."
'서민' 문제는 기자가 꼭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민노당의 이념적 지향이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간에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그 궁극적 목표일 터인데, 아무래도 민노당의 서민이라는 단어를 접한 사람들은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자"로 받아들일 것만 같다. 화제를 돌려 코앞으로 다가 온 총선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신장식 진보신당 대변인의 선거 사무소 개소식 ⓒ 이종필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사회연대전략이라는 것인데 정부, 자본, 노동이 합의해서 저소득층에 대한 국민연금 지원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둘째, 연간 2000시간으로 노동시간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잔업·특근 모두 포함된다. 비정규직을 포함해서 우리도 이제 인간답게 살 때가 됐다. 셋째, 등록금 문제다. 우리는 300대 기업이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공약을 추진 중이다."
민노당에서 자주 듣던 핵심공약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부유세는 철회한 것인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어떻게 되나?
"부유세의 경우 각론이 중요하다. 특히 주택과 부동산에 집중할 생각이다. 1가구1주택 법제화를 관철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시대가 되면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의료보험 문제다. 건강보험 의무지정이 폐지되면 병원들이 너도나도 의료보험에서 빠져 나간다. 이렇게 되면 서민들은 돈 없어서 아프지도 못한다. 마침 이 지역구에 대한병원협회장이 출마했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생각이다."
막 분당해 나온 사람들에게 좀 지나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정당의 목표는 권력을 잡는 것이니만큼 그 문제를 빼놓을 수 없었다.
-민노당 시절 노회찬 의원이 2020년 경 수권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안다. 진보신당은 수권계획은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에서 수권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삶의 동선이 바뀌어야 한다. 브라질에서는 PT당이 국가의 2/3를 지배해 본 경험이 있었다.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체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민노당은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성이나 완결성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국방과 외교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구호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도 동북아 프로세스 등 여러 제안들을 냈지만…. 현실적인 힘이 없는 것도 한계로 작용한다. 검증해 볼 기회조차 못 가지니까."
예전 어느 선거에서 민노당의 공약 중 '공격무기 도입 반대'라는 것이 있었다. 이에 따라 대당 1조원을 호가하는 조기경보기 도입을 반대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밀리터리 마니아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국방에 대한 감각이 너무 없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새로운 국방개념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판 전체를 보는 시야가 필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미국 일본하고만 사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계급적인 친미를 하고 있다. 호주에 가 보고 느낀 것은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호주의 외제적 변수를 일본의 군사대국화, 중국의 팽창, 한반도 정세 등 이 세 가지로 압축해서 보고 있다. 룰라 집권의 마지막 관문은 해외자본과의 관계설정이었다. 국민들은 대외관계나 경제문제의 급격한 변화에 잠재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해소해야 한다."
기자의 본업이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우리나라의 기초학문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했다.
-진보신당도 기초학문에 대한 관점과 시선을 확 바꿔줬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겠다. 그러나 예컨대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자들 밥벌이의 위기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다. 소통과 가치의 상실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본다. 특히 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한번은 윈도우 미디어의 라이브러리를 보고 정말 놀랐다. MS가 한국의 모든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 작업이라면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갔을 게다. 한국은 그런 일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 신장식 진보신당 대변인 ⓒ 신장식
"진보신당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상식과 소통을 중심으로 능력 있는 진보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초체력이 필요하다. 기본 종잣돈 마련과도 같다. 수치로 말하기 어렵지만,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수도권 지역구로 당선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민노당은 지역구 당선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지지율 10% 이상 얻어서 비례대표로 약 6석 이상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 정도면 진보정당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서울 노원병의 노회찬 후보가 근소하나마 1위로 나서고 있다는 결과 때문에 이곳 선거사무실도 분위기는 꽤 고조되어 있었다. 이 분위기를 선거판 전체로 이어 나갈 수 있을까?
-대변인으로서의 포부가 있다면?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재구성해서 가치논쟁을 제대로 하고 싶다. 이명박의 당선은 시대적 변화를 말하고 있다. 국민이 선택이 반영되어 있다. 경쟁, 효율, 시장이라는 논리에 맞서 나눔과 연대와 분점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사안 하나하나를 놓고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가치논쟁을 하고 싶다. 이 과정에서 정말로 후진 것들은 낙후될 것이다."
신장식 대변인 약력 |
1971년 출생 1990년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 1991~1999 봉천2,3,5,6,9동, 신림 7,10동, 신대방1동, 신정7동 재개발 지역 주민 지원 활동 1996~2000 관악주민연대 정책실장 1998~2000 관악실업극복운동본부 정책실장 1998~1999 관악구 구립어린이집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2001~2003 이자제한법(고금리제한법) 부활추진위원장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노동당 관악을 후보 2003 학교급식조례제정 관악운동본부장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노동당 관악을 후보 2007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범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2008 진보신당 대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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