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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원초적이고 화끈한 수덕사 다비

연화대 만들기에서부터 산골까지

등록|2008.03.24 14:05 수정|2008.03.24 15:11

▲ 수덕사의 다비 방식은 원초적이고 화끈해서 아름답습니다. ⓒ 임윤수



수덕사의 다비방식은 원초적이고 화끈해서 아름답습니다. 깎고 다듬어서 만든 금은보화의 장식물 보다 홀랑 벗은 인간의 알몸이 더 아름답고 값진 것은 육체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듯 수덕사의 다비방식이 그렇습니다.

수덕사 다비는 원초적이고 화끈

알록달록한 장식과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되는 연화대에 이미 길들여 진 눈으로 볼 때는 조금 거칠어 보이니 꺼끌꺼끌하고 생소한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다비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 해쑥을 뜯어 버무린 쑥버무리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맛과 향 같은 의미가 우러납니다. 혀끝을 감미롭게 하는 사탕처럼 달콤한 맛이 아니니 거친 듯한 느낌이지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단맛과 쑥향이 우러나는 그런 묘미입니다.  

다비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다비란 이런 거구나’ 하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겠지만 장식된 연화대에서 치러지던 다비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황당해 할 수도 있는 게 수덕사 방식의 다비입니다. 

▲ 여느 방식의 다비라면 이미 연화대가 마련되어 있었겠지만 아침에 찾아간 수덕사 다비장에는 이렇듯 장작들만 널려 있었습니다. ⓒ 임윤수



구도자로 평생을 살라온 노승이라 할지라도 인생팔고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만은 피할 수는 없기에 산승이 입적을 하면 스님의 법구를 다비할 연화대가 마련되어야 하니 대개의 다비장엘 가면 이미 연화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연화대를 마련하는 목적이야 다비 한가지지만 주변여건과 문중으로 전해지는 전통에 따라 방법도 재료도 달라집니다. 어떤 절에서는 참나무로 연화대를 만들고, 어떤 절에서는 숯으로 연화대를 마련할 뿐 아니라 어떤 절에서는 지푸라기나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을 쌓아 연화대를 만들기도 합니다.   

연화대를 만드는 재료가 무엇이던 간에 육신을 환원시킬 재료를 쌓고 이렇게 저렇게 장식을 하는 게 대부분이니 다비식이 있는 날 다비장엘 가면 연꽃모양을 하고 있는 연화대나 뭔가로 포장되어 있는 연화대를 보게 되는 게 일반입니다.

▲ 스님의 법구를 모신 사여가 다비장으로 들어옵니다. ⓒ 임윤수



스님의 법구를 모신 관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까지 안성맞춤으로 되어있으니 긴 만장행렬과 함께 이운된 스님의 법구를 서랍을 밀어 넣듯 연화대 속으로 밀어 넣고 순서에 따라 거화만 하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덕사의 다비장엘 가보면 연화대가 마련되어 있지도, 만들어 지지도 않습니다.

아름드리 생나무를 가지런하게 깔아놓고, 연화대를 쌓아 올릴 때 소용될 마른솔가지나 생솔가지, 마른 장작이나 생나무토막만 덩그렇게 놓여있을 뿐입니다. 수덕사, 덕숭총림의 방장이신 원담스님의 다비식이 봉행되던 22일의 다비식장도 그랬습니다.

생전이라면 노구일지언정 당신의 발걸음으로 찾았을 다비장이지만 적멸에 드신 스님은 더 이상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하고 하얀 연꽃잎으로 장식된 꽃상여를 타고 솔바람처럼 오셨습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상여였지만 상여를 따르는 만장과 인파는 대단합니다. 스님 생전에 보이신 하나하나의 가르침이 천리 길 마다 않고 찾게 한 추모지정을 이뤘으니 추모행렬 자체가 스님께서 남긴 법력의 사리입니다.

▲ 아름드리 생소나무 위로 연화대가 꾸며집니다. ⓒ 임윤수



스님의 법구가 영결식장에서부터 다비장까지 장엄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게 이운한 상여에서  연화대로 옮겨집니다. 대개의 연화대라면 이미 마련된 공간에 서랍을 밀어 넣듯 그냥 쑥 밀어 넣으면 되겠지만 수덕사 다비장의 연화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작과 생나무 쌓고, 솔가지로 장식

양쪽이 막히지 않은, 사람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야 통과 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로 바닥이 파진 곳에 아름드리 생나무 10개가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게 전부입니다.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아름드리 생나무등걸은 연화대를 쌓아 올리는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나무와 숯, 시신과 유골을 가늠하고 거르는 경계이며 관문입니다.

아래가 비어있는 바닥에 놓여있는 아름드리통나무 위로 스님의 법구를 모신 관을 올려 놉니다. 그리고 관 옆으로 마른 장작을 차곡차곡 쌓으면 더 이상 관은 보이지 않으니 그냥 장작더미가 됩니다.

수덕사 연화대.

ⓒ 임윤수



장작더미 위에 생나무 토막들을 한 켜 올리고, 어른 키만 한 길이에 허벅지 정도의 굵기인 생나무들을 둘레에 둘러 놉니다. 언뜻 보기에는 마구잡이로 대충 세워 놓는 듯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워지는 생나무 모두는 밑동이 위로 올라가게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화염의 특성을 고려한 지혜라는 생각입니다.

아름드리 생나무만 덩그렇게 놓여있던 곳에 관이 올리고, 마른장작과 생나무를 쌓은 더미가 생기더니 그 위에 마른 솔가지와 생솔가지를 척척 올려놓으니 색 푸른 산하를 닮은 연화대가 마련됩니다. 비록 여느 연화대처럼 알록달록 하지는 않지만 수북하게 쌓아올린 소나무에서는 송진 냄새가 풍겨 나오고 푸릇푸릇한 생솔가지에서는 소나무 향이 송송한 연화대가 되었습니다. 

거칠거칠한 모습이지만 장엄하기조차 한 연화대가 30분이 걸리지 않아 마련되었으니 걸림 없이 살아가는 구도자의 무애함이 느껴집니다. 불쏘시개로 얼마만큼의 석유를 뿌리고, 마련해 놓았던 솜방망이 불로 거화를 하니 허공을 가르는 화염들이 너털웃음 같은 춤을 춥니다.

▲ 연화대 불꽃사이로 스님의 유골이 드러났지만 자연스레 돌아가는 한원의 모습이기에 누구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 임윤수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도 얼굴이 후끈거릴 만큼의 뜨거움이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멈추지 않은 불꽃들이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불쏘시개로 뿌린 석유가 한줄기 눈물이라도 쏟아내듯 시커먼 연기로 피어오르지만 얼마가지 않아 차분해진 불꽃입니다. 연꽃모양을 내느라 척척 올렸던 청솔가지쯤은 이미 다 타버리고 굵직한 생나무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불꽃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떠났고, 어수선했던 주변도 적막 속으로 잦아듭니다. 안쪽에 쌓은 마른 장작이 빨리 타버리니 척척 걸치듯 세워 놓았던 생나무등걸 사이로 화염이 솟구칩니다.

거화를 하고 두서너 시간이 지나니 연화대의 속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흘끔 들여다 본 연화대 불꽃 사이로 스님의 법구 일부분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치장을 한 연화대라면 드러나는 법구에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들판에 피었다 사그라지는 야생화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고, 원초를 지켜 나가는 여유가 있으니 감출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었습니다. 

▲ 사그라지는 연화대를 뒤로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애별이고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 임윤수



하늘이라도 녹여낼 듯 치솟아 오르던 불꽃이 잦아들고, 숯덩이가 되어 얼기설기 얽혀있던 장작들도 점점 사그라지니 스님의 법구를 괴고 있던 아름드리 굵기의 생나무들도 한참이나 가늘어 졌습니다. 나무가 가늘어지며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면 조심스럽게 나무를 밀어 촘촘하게 되도록 붙여줍니다.

슬픈 사람의 표정처럼 흐렸지만 그때까지는 멀쩡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통곡이라도 한 듯 퉁퉁 부어있던 보름달빛, 흐느끼기라도 한 듯 흐릿하기만 했던 아침 햇살에 담겨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지정이 꾹꾹 참았던 눈물이라도 된 듯 빗방울로 떨어집니다. 한 쪽에 마련되어 있던 비 가림 시설로 연화대를 가립니다.     

땅을 파고 만든 공간, 아름드리 생나무가 놓여 진 아래쪽으로 타버린 불덩이들이 뚝뚝 떨어집니다. 처음에야 재들만 떨어졌겠지만 나무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고, 타버린 장작들이 자잘한 숯덩이가 될 때쯤이니 별똥별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습골.

ⓒ 임윤수



텅 비어 있던 공간이 재와 숯덩이들이로 쌓여갑니다. 아름드리 생나무위에서 스님의 법구와 한바탕 화염잔치를 벌인 나무들이 재가 되고 숯덩이가 되어 아래쪽으로 떨어집니다. 쌓여가는 숯덩이 위로 스님의 유골도 희끗희끗하게 떨어집니다. 연화의 불꽃과 춤이라도 추듯 한바탕 어울렸던 스님의 법구니 육신이거나 나무이거나를 가리지 않는 환원의 순간입니다.

잔불처럼 남아있던 불덩이조차 다 타버리니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반쯤은 가늘어진 통나무, 연화대 제일 아래쪽에 깔았던 아름드리 생나무를 한쪽으로 밀어냅니다. 연화대도, 연화대 위에서 어깨춤을 추듯 바람결을 따라 어우러지던 불꽃도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 텅 비어있던 아래 공간이 탔거나 타다 남은 숯들로 가득합니다.

일말의 다비가 끝났습니다. 여느 다비식이라면 하룻밤을 지내야 하지만 거화를 하고 너덧 시간 만에 다 끝났으니 화끈할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곱게 접은 한지고깔에 유골을 주워 담는 습골

스님들에게 한지로 접어 만든 고깔과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젓가락이 하나씩 나눠집니다. 연화대 아래 쌓여있던 숯 더미를 한 삽 푹 퍼서 빙 둘러선 스님들 앞으로 휙 펼칩니다. 재와 숯불사이로 희끗희끗한 뭔가가 드러나니 아름드리생나무등걸위에 있던 이승의 법구가 온 곳으로 돌아가던 중 숯들과 도반이 되느라 남게 된 스님의 유골입니다.

산골

ⓒ 임윤수



수덕사 다비방식이 원초적이라서 아름다운 것은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이 습골과정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조심스런 표현이지만 사리는 형이상학적인 대상이기에 법력이니 뭐니 하며 혹세무민의 수단이 되거나 수행의 결정체니 뭐니 하며 세속인들의 입방아 꺼리가 될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수덕사 다비에서는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 꾸밈도 남김도 없는 원초적 환원과정이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샅샅이 살피며 흩어진 유골들을 주워 담습니다. 모래 한 톨에 가려진 유골, 흙 사이로 스며든 작은 유골조차도 빠트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레 주워 담은 유골들은 한곳에 마련된 백자항아리로 모아집니다. 여느 때 같으면 연화대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만들어져 있는 돌절구에서  쇄골, 아직은 덩어리로 남아 있는 유골을 가루로 만드는 쇄골이 이루어지겠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우중이니 예비로 준비한 돌절구에서 천막 안에서 쇄골을 합니다.

스님의 영정 앞에 돌절구와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놓여있습니다. 항아리에 담겨있던 유골을 꺼내 돌절구에 넣고 돌로 된 절굿공이를 몇 번 돌리고 나니 고운 가루만 남습니다. 덕숭산을 넘어 한국 불교계의 승풍을 이어가던 큰스님의 법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다비와 쇄골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한 줌도 되지 않을 만큼의 재만 남았습니다.     

한줌의 재가 된 유골을 네 개의 고깔에 나눠 담고, 유골이 담긴 고깔을 하나씩 든 스님 네 분이 동서남북으로 걸어갑니다. 다비장에서 조금 벗어난 숲으로 들어간 스님들은 솔바람에 실어 고깔에 담아온 유골을 흩뿌리는 산골(散骨)을 합니다.

▲ 스님께서는 ‘올 때도 한 물건은 온 일이 없고, 갈 때도 이 한 물건은 갈 일이 없다.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르름이다..(來無一物來 去無一物去 去來本無事 靑山草自靑)’하는 임종게를 남기셨습니다. ⓒ 임윤수



스님들의 손끝에서 산골 된 하얀 가루가 솔바람이 불어주는 장단에 맞춰 바라춤이라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리다 초목사이로 스며듭니다. 산골까지 마치니 제자스님들이 큰스님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다비장 가는 길을 거슬러 법당을 향해 이동합니다.

‘올 때도 한 물건은 온 일이 없고, 갈 때도 이 한 물건은 갈 일이 없다.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일이 없어, 청산과 풀은 스스로 푸르름이다.(來無一物來 去無一物去 去來本無事 靑山草自靑)’라는 임종계로 마지막 남긴 스님의 가르침조차 덕숭산 자락에 불꽃이 되어 뿌려졌으니, 눈에 보였던 것은 가루가 된 한 줌의 유골이지만 가슴에 담기는 것은 삼독을 깨치게 하려는 스님이 ‘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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