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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건 다른 나라 교과서인데요?"

[주장]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로 학생들과 토론해보니

등록|2008.03.24 18:16 수정|2008.03.24 18:16

▲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 ⓒ 오마이뉴스

경제 성장이 곧 근대화이며, 근대화가 곧 역사의 발전이자 선이라는 '단순명쾌한' 논리로 무장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가 발간돼 나왔습니다. 당장 일선 학교에서 기존 교과서를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출현'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문제의 본질은, 정권이 바뀐 후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과거로 회귀하는 사회 분위기를 틈타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조차 '좌파'로 몰아 문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 강행에 이어지는,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공부가 시험에 종속돼 있고, 특히 역사는 '대표적인' 암기 과목으로 꼽히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의식을 생활 속에서 보수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곧, 경쟁시험의 정기적 실시와 시험에 출제될 내용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암기만을 강요받는 공부와 시험은 내용의 옳고 그름을 생각할 여유마저 빼앗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동학난이 동학운동을 거쳐 동학농민혁명과 갑오년 농민전쟁으로 불리는 데에 무려 수십 년이 걸렸고, '국부'로 추앙받던 이승만이 분단을 획책한 친미사대주의자로 인식되는 데 걸린 시간과 노력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5·16 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10월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5·18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로 부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현실에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도발'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행태임이 틀림없습니다.

'공통적인 주제'를 찾아낸 눈 밝은 아이들

오랜 기간 학교에서 배우고 기억된 개별적인 내용은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어 웬만하면 지울 수 없는 '상식'이 됩니다. 삶 속에서 그 상식은 교양이 되고, 다른 생각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 편견으로 작동하기 십상입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릴 내용이 급변하는 시대를 더디 따라갈지언정,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치밀하게 검토하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 후 객관적으로 검증이 끝난 것이라야 비로소 공인을 받게 되는 이치입니다.

여러 일간지에 올라와 있는 몇 구절을 오려 중학교 3학년 수업에서 보여주며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책에 밑줄 그어 가며 교과서 내용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이라며 앞다퉈 발표했습니다.

'민주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장면 내각'이라는 교과서 내용은 '사회경제적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없는 구정치인들'로 폄하되고,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쿠데타 세력'이 '유능한 엘리트 장교 집단'으로 서술된 것은 아예 상반된 내용이라는 겁니다.

또, '백성들이 스스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 자주 국가를 세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던' 동학농민혁명을 '하층 농민들이 경제생활의 안정을 추구한 왕권옹호적 농민 봉기'로 깎아내리는 부분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건 완전히 '다른 나라 교과서'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 아이는 복사해 나눠준 몇 구절을 읽다가 서술된 내용에 '공통적인 주제'가 있다며 눈을 흘겼습니다. 내용인즉슨, 경제 성장만 되면 모든 게 다 이해되고 용서될 수 있다는 역사 서술이라는 겁니다.

일제강점기가 비록 억압과 수탈의 시기였지만 경제 성장이라는 과실이 분명 있었고, 이승만은 친미사대주의자였지만 경제 성장의 토대를 닦았으며, 10월 유신체제 또한 권위주의 통치 시기이기는 했으나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룬 발전 단계였다는 '논리적인 주장'을 비아냥거린 겁니다.

'일본스럽게' 느껴진 '그들만의 교과서'

단언컨대, 보수 학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쓰여진 이 책은 '그들만의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논리를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조차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지청구 듣는 상황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당분간 이 대안 교과서의 내용을 두고 높으신 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테지만, 정쟁으로 비화되지 않는 한 흐지부지 묻힐 것입니다. 새로 출범한 정권이 대운하 마냥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로 교과서 채택을 강제하지만 않는다면, 학교에 발붙일 공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30년도 넘게 지속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들을 위해 '찌라시' 역할을 해야만 했던 굴욕의 교과서에 대해 참회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외려 그때를 그리워하는 듯한 흉측한 '괴물'이 뻔뻔스럽게 머리를 내밀고 있으니 참담할 따름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려니, 아이들이 이 대안 교과서에 별명을 지었다며 아우성입니다. '다께시마 교과서'로 부르기로 했다며, "도서관에 (달랑) 한 권 구비해 놓고 잠이 올 때 한 구절씩 읽어 각성제로 쓰자"며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제시합니다. 수업 중 특정 내용을 거론한 적이 없는데도, 아이들이 읽기에 유난히 대안 교과서의 내용이 무척이나 '일본스럽게' 느껴진 모양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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