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들 위해 555km 달리는 마라토너
시청각장애 마라토너 차승우씨와 일본의 헬렌 켈러들
▲ 남산에서 도우미와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는 차승우씨(사진 왼쪽). ⓒ 김수현
더욱이 그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시청각장애인'을 알리기 위해 등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둠과 적막을 뚫고 우리는 달린다"라는 구호를 달고 뛰었다. 차승우씨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달린 170여명의 시각장애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과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함께 달린 지원자들도 함께였다.
차씨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 시청각장애인이란 장애 유형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나 장애인 단체 등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은 매우 낯선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재활에 대한 정보도 전무한 상황이다.
일본의 헬렌 켈러들
그럼 우리나라 이웃의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 역시 시청각장애인이 사회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나라보다는 나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조차 부족한 상태이며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민간 단체의 활동이 전무한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사회복지법인 '전국 시청각장애인협회'를 중심으로 많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우리의 시, 도에 해당하는 토, 도, 부, 현에는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자조 모임인 '모-로-사 토모노카이(시청각장애인 친우회)'가 구성되어 있어 서로 간의 정보를 교환하고 사회 참여의 기회를 넓혀 나가고 있다.
기자는 지난 23일 있었던 '일본 도쿄도 시청각장애인 친우회'의 교류회에 다녀왔다. 일본의 시청각장애인이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하며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도쿄도 시청각장애인 친우회의 교류모임은 매달 네 번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동안 열리는 이 모임은 도쿄에 거주하는 시청각장애인과 그들을 지원하는 지원자(통역자)들의 교류와 정보 교환을 위한 모임이다.
기자가 23일 모임이 시작되기 조금 앞선 낮 12시 30분 경에 도착했을 때 벌써 여러 명의 시청각장애인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양한 의사 소통 방식들
교류회는 간단한 서로 간의 소개와 게임, 그리고 자유 교류시간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참석한 시청각장애인들을 한 사람씩 소개를 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진행을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한다는 것이다. 어제 모임에는 모두 18명의 시청각장애인과 27명의 통역지원자들, 그리고 친우회의 사무실에서 지원하기 위한 스태프 3명이 참석하였다.
기자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의사 소통방식의 다양함이었다. 사실 참가하기 전 시청각장애인의 의사 소통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그 다양함을 직접 대하고 보니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어려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기자와 처음 이야기를 한 시청각장애인은 '수화'와 '손가락 점자'를 통해 이야기를 하였다. 기자는 상대방 장애인에게 손가락에 점자를 찍는 방식인 '손가락 점자'를 통해 말을 하였고 상대방은 수화를 통해 수화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를 전달했다.
두 번째로 이야기한 참석자는 역시 기자는 참석자에게 손가락 점자로 이야기를 전달했고 참석자는 기자에게 손바닥에 일본 히라가나로 글자를 써서 대화하는 방식(print-on palm)을 사용하였다. 그 밖에도 손으로 히라가나의 글자 모양을 만들어 만져가며 하는 방식이나 수화를 만져서 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동원되었다.
교류모임의 스태프로 참가한 오쿠보씨는 "시청각장애인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면서 "오늘 교류모임에서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한 게임으로 하였지요"라고 설명하였다.
실제로 1시간 30분가량 걸친 게임은 시청각장애인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이용한 게임이었다. 시청각장애인과 통역 지원자가 서로 중간 중간 배치되어 맨 뒤에서 앞으로 낱말을 전하는 게임이었다.
처음 약속된 커뮤니케이션 방법대로 전하는 방법인데 처음 게임에 나선 이들은 손바닥에 글자를 쓰는 방식을 변형한 등에 글자를 써서 전달하는 게임이었다. 즉 뒷 사람이 앞 사람의 등에 정해진 3-5 글자로 이루어진 낱말을 전달하는 게임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통역지원자들이 쩔쩔매는 반면, 시청각장애인들은 매우 쉽게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게임이 끝나고 약 두 시간에 걸쳐 자유 교류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평소 바깥 나들이를 잘 못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자유로운 대화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기자도 여러 명의 시청각장애인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틈틈이 연습해 둔 덕분에 손가락점자를 통해 여러 시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시청각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였다. 나와 대화를 하자마자 내 손바닥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글자를 읽었을 때 기자는 매우 놀랐다. 그 참석자가 쓴 것은 "우리 일본이 전에 한국인들에 대하여 나쁜 짓을 한 것을 사과한다, 정말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아직도 군국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가들과, 가장 힘들게 의사 소통을 하는 시청각장애인을 보면서 "정말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모임은 오후 5시가 되어 아쉬움 속에 끝나고 다음 교류 모임은 장소를 바꿔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겸해 하자며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시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교류 모임에 참석한 후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명의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는 그래서 이 사회에서 제일 외면 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인간의 가장 기본인 타인과의 의사 소통조차 자유롭지 못한 시청각장애인들이 조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니 들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하는 시스템이 절실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차승우씨는 이달 말 동두천에서 울산까지 555km에 이르는 구간을 달린다. 역시 시청각장애인을 알리기 위한 구호를 등에 달고 달릴 예정이다. 그의 노력대로 한 사람이라도 시청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신경호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의 장애인과 그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사를 기사화하고 있으며, 역경을 이겨내고 분투하는 장애인의 진솔한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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