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새벽별 보고 집을 나서, 일몰 보며 퇴근

부산 기장군 일광초등학교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등록|2008.03.25 09:03 수정|2008.03.25 09:03

일광 해수욕장의 삼성대귀양살이 하던 고산 윤선도가 동생 선양을 떠나 보내며 두 수의 시를 지어주었다. ⓒ 정근영


해가 바뀌고 나서 일광초등학교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다. 한 해 만에 자리를 옮기게 되니 사람들은 이외인 듯 그 사연을 묻는다. 부산의 서쪽 끝인 하단에서 동쪽 끝인 해운대까지 먼 거리를 통근하는 나를 두고 측은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그 사연이 더욱 궁금한가 보다.

사실로 말하면 하단은 부산의 서쪽 끝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해운대 신시가지 역시 부산의 동쪽 끝도 아니다. 행정구역이 넓어지면서 부산의 서쪽 끝은 강서구가 되었고 동쪽 끝은 기장군이 자리잡게 되었다. 해운대 신시가지 그 너머에 기장군이 더 있었던 것이다.

하단에서 해운대까지는 내 생애 처음 겪는 먼 통근 거리긴 하였지만 지하철이 있고 급행버스도 있어 그런대로 불편을 견딜 만했다. 2호선 종점인 장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꾸벅꾸벅 졸다 보면 갈아타야 하는 서면역을 놓치고 사상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던 일도, 버스에 몸을 싣고 아침부터 한 섬 푹 자고 나면 신시가지 해운대 종점에 도착하던 일이 이제는 모두가 추억이 되었다.

일광초등학교 본관 모습인조잔디로 단장한 운동장, 잘 꾸며진 교사가 참 아름답다. ⓒ 정근영



2008 일광초등학교 입학식 기념사진올해 입학생은 두 학급으로 합해서 서른 명 남짓하다 ⓒ 정근영


하단에서 기장군 일광까지 바로 가는 찻길이 없다. 자가용 승용차가 아니면 안 된다. 동서고가로를 거쳐 황령터널을 지나 광안대교를 타고 다시 송정터널을 지나 기장읍을 거쳐서 학교까지 갔다. 40Km를 훨씬 넘는 길이다. 거기다가 하루 통행료만 해도 4천원이 넘는다.

이 번엔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석대 인터체인지로 내려 반송, 기장을 거쳐 간다. 편도 40Km, 왕복 80Km 길에 한 시간 가량 걸렸다. 일광초등학교는 두 대의 통학버스가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운전기사는 하루 60Km나 운행한다고 힘들다지만 교원인 내 출퇴근거리보다 더 짧은 거리다. 운전기사의 하루 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출퇴근에 소비하는 셈이아닌가.

기장군 곳곳에 아침이 편안한 고장이라는 선전탑을 볼 수 있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광고하는 것인가 보다. 일광 해수욕장, 그 푸른 동해 바다에서 붉은 태양이 솟구친다. 삼성대 그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삼성대는 귀양살이하던 고산 윤선도가 아우를 떠나보내며 그 서러운 심사를 시로 토로한 곳이다. 고산은 이곳 기장에서 4년 7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여기서 아우 선양을 떠나보내며 ‘증별소제’란 제목의 시 두 수를 주었던 것이다.

부활하는 고목나무80년 역사의 일광초등학교 죽은 듯한 고목이 다시 살아난다. ⓒ 정근영


네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 얼마나 많은 산이 막을 것이며
세파를 따르자면 얼굴이 부끄러워짐을 어찌하리오
이별을 당하여 오직 천 갈래 눈물만이
너의 옷 자락에 뿌려져 점점이 아롱지네

내 말은 내 달리고 네 말은 더디지만
이 길 어찌 차마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 있으랴
제일 무정한 건 이 가을 해이니
헤어지는 사람 위해 잠시도 멈추지 않네

일광 해수욕장아직은 이름없는 일광 해수욕장이지만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아름다운 곳이다. ⓒ 정근영



일광초 병설 유치원 입학식인형탈을 쓴 육학년 언니의 몸짓을 따라하며 유치원 어린이로서 지켜야 할 학교 생활에 대한 공부를 한다. ⓒ 정근영



학리 분교의 굳게 닫힌 교문두해 전에 폐교가 된 학리 분교는 교문이 굳게 닫혀 있다. 언제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 작은 학교의 교정을 메우게 될 것인지? ⓒ 정근영


고산의 분노, 고산의 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병중견회’는 불의에 맞서 바르게 살고자하는 그의 강력한 의지가 보인다. ‘병중견회’란 회포를 보낸다는 뜻이다.

편히 살기 위해서 도깨비를 막음이 어찌 나만의 즐거움이랴
나라사랑하는 마음 먼저 가졌기에 모든 것이 절로 걱정이네
산 넘어 옮겨사는 괴로움을 가련하게 여기지 마오
서울 바라보니 도리어 막힘이 없구나

고산 윤선도가 분노로 맞던 일광의 아침을 나는 행복으로 맞는다. 일광해수욕장, 고산이 분노를 토로하던 삼성대 그 자리에 서서 붉은 태양이 동해 바다를 치솟아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아침 해를 바라본다. 아침 햇살은 갈매기가 날개에 실려 온 산천으로 퍼져간다.

일광초등학교. 전교생이라고 해 보았자 모두 200백 명도 채 안 되지만(196명) 교정은 넓고 아름답기만 하다. 연전에 만든 새파란 인조잔디가 마당을 덮고 있다. 인조잔디도 생명이 있는 것인지 아침이면 이슬을 머금은 이파리가 푸른 날개를 편다. 동해 바다에서 거친 바람이 불어와도 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문득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말이 화두가 되어 떠오른다. 나의 하루 일과는 해바라기다. 별을 보고 집을 나서 아침 해를 안고 기장으로 들어선다. 햇살이 눈을 찌른다. 선글라스로 차광막으로도 가려보지만 아침 햇살은 막무가내다. 퇴근시간이면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길을 달린다.

아침이 아름다운 기장군 일광면 동해의 푸른 물결을 가르고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아침을 열고 싶다. 고산이 울고 간 그 길을 나는 웃으며 걷고 싶다. 일광엔 학리라는 마을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학리이니 고향을 찾아온 셈이다. 교직생활 35년 만에 다시 학리로 돌아온 셈이다. 내 고향 학리가 산골 마을이었다면 이곳 학리는 갯마을이다. 오영수의 갯마을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는 학리에서 동해바다 저 넓은 바다 위로 나르는 학이 되련다.

소나무 숲일광의 어린이들도 이 소나무와 같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 거센 외세의 바람을 막아내게 될 것이다. ⓒ 정근영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