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 운문사 스님들 원을 그리며 돌면서 기도하고 있다. ⓒ 최종수
스님들을 기다리는 동안 낙동강변의 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덤프트럭이 시계추처럼 들랑거렸다. 모래를 싣기 위해 덤프트럭이 200미터 이상 줄지어 서 있다. 지자체가 서두르고 있는 대운하는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대운하가 시작되면 강변의 모래는 컨소시엄 회사들의 것이 된다.
▲ 모래채취낙동강 모래를 채취하고 있는 현장 ⓒ 최종수
“오늘 낙동강을 모시며 부처님의 마음과 생명의 눈으로 우리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며 걷겠습니다. 경부운하 백지화의 물결이 큰 흐름이 되어 생명의 근원인 강이 강답게, 강의 의지대로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국토와 자연환경을 우리는 잠시 빌려 쓰고 가는 나그네일 뿐 후손들이 살아갈 소중한 삶의 터전입니다. 큰 사안인 국토문제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손실을 터럭만큼도 양보할 수 없는 백년지 대계, 아니 천년지 대계여야 합니다.”
고요한 산사의 정기가 스민 가사장삼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가 우러나왔다. 타원형으로 제방에 둘러선 은광스님이 참회문을 낭송했다. 자연에 대한 탐욕과 무지를 씻어내는 생명수였다.
▲ 기도운문사 스님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최종수
남지읍 ‘아지리’에서 ‘용산리’까지 낙동강 벼랑에 나 있는 작은 오솔길 2.5km의 ‘개비리’. 옛날 아지리 주민들이 남지장에 가기 위해서 이용하였던 ‘개비리’에는 자생 ‘마삭’과 ‘부처손’이 발걸음을 따라 함께 걷고 있었다. 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좁은 오솔길은 자연스레 침묵의 기도가 되었다.
▲ 순례개비지 벼랑길을 걷고 있는 스님들 ⓒ 최종수
강가 배밭에서 전지를 하고 있는 주민(이두희, 46세)을 만났다. 쓸모없는 가지를 자르는 것처럼 단호한 입장을 들었다.
“대운하가 지역주민들에게 무슨 혜택이 돌아오겠습니까? 저 강물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꽉 찰 텐데. 누구를 위한 대운하입니까? 물류기지 생길 주변의 땅이 대부분 외지 사람들 것입니다. 대운하는 땅 부자들을 위한 잔치 아닌가요?”
▲ 희망똑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배꽃가지들을 전지하고 있다. ⓒ 최종수
진달래 개나리가 손을 흔들어 주던 오솔길을 뒤로 하고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제방에서 잠시 쉬었다. 낙동강의 대표적인 상습 홍수피해 지역이었다. 아스팔트 제방을 따라 남지읍으로 향했다. 간간히 피어난 강변 유채밭을 이르렀다. 푸른 생명의 길을 맑은 정신으로 걷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멀리 서울에서 '마중물' 회원들이 준비해온 팥 칼국수와 곰탕 국물에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40분, 오후 순례가 시작되었다. 청아한 목탁소리에 독경을 들으며 순례단은 원을 그리는 안행기도를 바쳤다. 그 기도의 마음을 모아 정안 스님이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했다.
▲ 남지공원남지공원 유채밭을 순례하고 있다. ⓒ 최종수
‘대운하 반대’를 외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연에 빚지지 않고는 살 수 없으면서도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오히려 탐욕만 키워가는 몰염치한 우리네 삶이 뒤돌아보기 위해서다.
몇몇 정치인의 권력 의지를 ‘애국’으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라며, 대운하로 인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있는 그대로 밝히시기를 바란다.
▲ 순례강과 스님이 하늘과 땅처럼 맞닿았다. ⓒ 최종수
간곡하고 단호한 호소문은 오후 순례의 길을 힘차게 시작하게 해 주었다. 모타 사이클 경기장 관중석에서 잠시 쉬는 동안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먼저 천주교 최종수 신부의 춤과 재롱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대운하가 취소되었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대운하 말도 안 돼 억지 쓰지마! 대운하가 취소되었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원불교 김현길 교무, 불교에 이어 금산의 간디학교 학생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산다는 것 배운다는 것 가르친다는 것”
▲ 희망노래간디학교 학생들의 노래에 스님들이 박수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 최종수
“우선 정밀한 진단 없는 경제성 공약이 부담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생태학교의 교사로서 환경훼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대운하는 실체도 없을뿐더러 대운하는 미래세대의 재앙을 초래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5년의 임기를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재앙을 물려줄 순 없습니다. 저희 간디학교에서는 청소년 캠프를 열어 운하관련 프로그램, 토론회 등을 펼치며 운하 저지를 위한 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입니다.”
순례단은 홍수 범람이 잦아 이주정책으로 폐허가 된 동네를 지났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언덕위의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아래 매화꽃 향기를 맡으며 찜질방이 된 폐교에 잔디밭에 도착했다. 44일의 순례 중 첫 발언을 하신 수경스님의 말씀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 격려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하루 희망을 마무리 하는 순례단. ⓒ 최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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