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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정세 판단능력도 10년 전"

시민단체, 북한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당직자 철수 요구는 '정부가 자초'

등록|2008.03.27 19:35 수정|2008.03.27 19:35

▲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 시 대처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이 핵을 가지고 있을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며 '북한 핵기지 선제타격론'을 주장한 것에 대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합참본부 앞에서 항의하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첫번째 물리적 행동을 취했다.

27일 새벽 개성 남북경협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던 남측 당국자 11명이 북한의 요구에 따라 철수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일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자 간담회에서 "북핵 문제가 계속 타결되지 않고 문제가 남는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발언한 것이 직접적 이유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당당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혀 당분간 기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며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북한의 남북경협사무소 당국자 철수 요구, 한국정부가 자초한 것"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팀장도 "핵 문제 해결에 대한 아무런 방안이나 정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핵 문제 해결 없이 경협 확대 없다는 정부의 태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경협에 대해서도 남측이 이행할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핵문제와 연계하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니까 북한도 정치적 압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를 자초한 것이다. 남북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문제인데 남북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다."

그간 이명박 정부가 계속해 북한을 자극해왔던 점을 지적한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전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4일 유엔인권이사회 기조발언에서 북한에 인권개선 조치를 촉구하는 등 북한의 '역린'을 자극했다. 특히 지난 25일 통일부 업무보고 때는 6.15 공동선언이나 10.4 공동선언에 의한 합의 부분은 빼고 '비핵개방3000'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비핵개방3000'은 사실상 '선핵포기론'으로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 방향을 돌린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지난 26일 김태영 합참의장 후보자는 '북한 핵기지 선제공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의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박 팀장은 이를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그런 분이 합참의장 후보자라니 군사·교류 문제 다 총체적 난국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거꾸로 가면 94년, 2002년 '선제 공격' 문제가 있었다. 15년 경험을 통해 외교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온 것이다. 핵 갈등에 대해 이해가 없는 거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네오콘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유영재 정책실장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가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경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그 정도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냐"며 비판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면 유리할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만 북한과 강경대치로 나아간다면 오히려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다. 권력을 잡았다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 북한보다 경제력이 앞선다고 유세를 떨어서 될 일도 없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더니 정세 판단 능력도 10년 전이다."

유 정책실장은 "새 정부의 인선이나 정책을 보면 이미 미국에서도 퇴조하고 있는 네오콘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했던 남주홍 교수를 봐라. 개성공단을 핵 문제와 연결시키고 북한의 인권 문제도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남북관계를 한미동맹에 종속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70~80년대 냉전시대 수준의 대북 인식을 가지고 있다."

▲ 개성공단의 한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신발을 만들고 있다. ⓒ 권우성

한편, 다른 진보시민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한 목소리로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비판하고 있다.

남북선언실천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개성공단 협력사무소 철수 사태의 책임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대결적인 행보에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북측의 경고를 비중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경제침체로 동반 파탄의 위기에 처한 마당에 남북경협까지 중단하면 이는 앉아서 죽자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취임 한 달 만에 사상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마저 파탄나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 파탄과 한반도 위기상황 초래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민족적 피해의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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