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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선배님, 이제 그만 자연인으로 돌아오세요"

그 당, 이 당, 저 당으로 옮겨다니는 선배에게

등록|2008.03.28 13:39 수정|2008.03.28 22:31
선배! 저 당에서 그 당으로 이젠 이 당으로 당적을 또 바꾸셨네요. 며칠 전엔 당명을 바꿔 선거 사무소 개소식도 했고 새롭게 바람몰이를 기대하게 되었군요.

선배! 돌이켜 보니 선배가 저 당에 있을 땐 그 당에 있는 사람들 어지간히 까발리며 정치 뉴스 화면을 장식했었어요. 당시엔 저 당과 그 당이 원수처럼 지내더니 시간이 조금 흘러 느닷없이 두 당이 합쳐 버리대요.

그리곤 합쳐버린 그 당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 당에서 상당히 높은 직책도 수행하였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 당에서 당연히 공천 받을 줄 알았는데 공천에서 떨어지고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열고 이 당으로 또 옮기셨어요.

선배! 솔직히 고백컨대 그 동안 선배가 몸담고 있었거나 현재 몸담고 있는 당을 전혀 지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안다는 이유로 관심을 갖는 척 왈가왈부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 잃어도 사람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그냥 사람으로서 선배를 존중할 뿐입니다.

오늘은 어떤 분으로부터 선배를 적극 도와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마음 안에서는 심히 불쾌감이 작동합니다. 그분에게 너무 섭섭합니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가로막거나 강요하는 것은 신성한 투표권의 근간을 훼손하는 모리배 사고라고 봅니다.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과정에 여전히 학연, 지연을 들먹이고 동문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여 배신자로 낙인찍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배! 정책과 공약, 인물 평가는 실종되고 그때그때 정치 지형이나 분위기에 편승하여 금배지를 가로채는 선거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십시오.

선배가 추구하는 정치 철학이 뭔지, 선배가 지키겠다는 정치 공약이 뭔지 챙겨 아는 것은 저의 몫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선배를 온당한 정치인으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선배가 그 당, 저 당, 이 당으로 소속을 바꾸며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마음이 저립니다.


선배! 우리가 살면서 어떤 조직 안에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소속된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조직을 찾는 것은 개인에게 합리적 선택일 수 있고, 그 합리적 선택으로 인생 역전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선배! 정말 합리적 선택을 하신 건가요?

선배! 정치는 한번 맛 보면 쉽게 끊지 못하는 마약과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그 당에서 빠져나와 저 당에서 '팽' 당하고 이 당에서 뿌리내릴 자존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일까요? 후배로서 진정 바람이 있다면 어서 빨리 자연인으로 돌아와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문득 '풀은 바람이 불면 눕지만 결국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시인 김수영이 말하는 '풀'이 떠오릅니다. 억압하는 세력에 맞서 꼿꼿하게 일어나는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정치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들이 모인 수많은 당들도 존재했으면 좋겠습니다.   

선배! 만약 이번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해도 저는 여전히 선배를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 당, 저 당, 이 당으로 옮겨다니며 철새로 비유되는 정치판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한 대한민국 정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어디 선배뿐이겠습니까? 하나하나 세심하게 뜯어보면 이 나라에 지조 있는 정치가가 몇 명이나 될까요? 철새 정치가들이 마약보다 강한 금배지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유권자의 몫이겠지요. 그러니 4월 9일에는 반드시 소중한 한 표를 투표함에 넣으렵니다. 아아, 누구를 찍어야 할까요?

선배! 부디 건강 챙기시고 다시는 울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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