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 시절이 그립다

울 엄마가 '소비자는 왕이다' 하던 시절

등록|2008.03.29 13:22 수정|2008.03.29 13:22
  울 엄마는 그랬었다. 식품점 하던 때 가게 봐주는 짬짬이 책 읽고 있다가 100원짜리 하드 사면서 읽던 책 줄거리 끊어놓는 손님이 왔다간 뒤 내가 짜증나서 “손님 좀 안 왔으면 좋겠어”하면 “그 분들이 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거라”고 하며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인정스럽게 대했다. 무뚝뚝한 엄마였으면서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차피 거드는 거였고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내 밥은 엄마가 당연히 먹여줄 터였다. 날 먹여 살리는 사람은 분명히 엄마였다. 두고두고 그 말씀을 하셨다. 철딱서니 없는 딸이 손님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어제, 내가 열기로 한 교습소 비품을 사기 위해 가구 단지에 갔다. 생활용품 가구점은 많았으나 사무용품 매장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두 군데 갔다. 첫번째 들른 가게서 별로 환영 받지 못하고 나왔다. 오든지 말든지 오불관언 자세다.

두번째 가게에 들르니 아주 친절하다. 자그마한 가게였지만 필요한 건 2층에 있다면서 열쇠로 열고 보여주기도 하고 제품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성실한 태도가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상냥한 마음에 우리가 원하는 몇 가지 물건을 골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려던 것이 있었고, 나머지는 보고 사야겠기에(예를 들어 내가 앉을 의자는 직접 앉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들른 가구단지였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고른 물건 얘기를 하자 돌변했다. 사나운 표범으로. 그 때부터 우리 모녀(큰 딸과 함께였다)를 막 몰아세웠다. 독기를 품고서…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말인즉 인터넷에서 사놓고 매장에서 구입한 것처럼 A/S를 받는다는 거였다.

숨도 안 쉬고 따발총으로 쏘아대니까 우리 딸이 한마디 한다.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나는 몰라서 그런 건데 이렇게 기분 나쁘게 하느냐고 말하고는 카탈로그와 명함을 얻어 나왔다.


집에 와서 내일 가보기로 한 매장에 전화한 뒤, 아까 그 매장 카탈로그는 버리려고 현관 입구에 내놓았고 명함은 찢어버렸다.

소비자가 왕이었던 시절은 정령 갔는가. 참 서글펐다. 장사하면서 기분 좋게 할 수는 없는가. 설사 손님이 망발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먼저 묻는 게 순서가 아닐까. 왜 그러는지를 말이다.

이러이러한 피해를 본 일이 있어 그런다고 조근조근 이야기 하면 그러냐고 오히려 위로해줄 수도 있고 다소 손해 보는 기분이 들더라도 필요 물품 모두 신청해 줄 수도 있다. 진정 소비자가 왕인가. 울 엄마의 뻥(지론)일까.

요즘 아주 조그만 교습소를 내면서 여러 인간상을 본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사회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그런대로 굴러간다는 엄마의 말씀도 상기하면서.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