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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한테 듣는 ‘사람 사는’ 슬기

[책읽기가 즐겁다 174] 타샤 튜더,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등록|2008.03.29 19:49 수정|2008.06.12 13:31

겉그림타샤 투더 할머님 이야기책입니다. ⓒ 윌북

- 책이름 :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 글 : 타샤 튜더
- 사진 : 리처드 브라운
- 옮긴이 : 공경희
- 펴낸곳 : 윌북(2006.8.20.)
- 책값 : 9800원

 (1) 비와 술과 골목가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저녁입니다. 이제 막 여섯 시를 넘겼는데 날은 꽤 어둡습니다. 매지구름이 짙게 깔렸습니다. 이번 비는 지난주에 내린 비처럼 차갑지는 않습니다.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참말로 봄을 부르는 비로구나 싶습니다.

봄내음 맡으면서 밟아 줄 흙이 없는 도시이지만, 나긋나긋한 바람을 느끼면서, 집에서 가까운 송현시장으로 걸어가 보면, 아주머니랑 할머니랑 차려놓은 고무 대야에는 풋풋한 봄나물이 가득가득.

찬거리로 무엇을 살까 망설이다가 나물 대야 앞에 멈추자, 나물집 아주머니는 "이거는 냉이고, 이거는 진달래고, 이거는 취나물이고 …" 하면서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이름을 알아보는 나물이 있지만, 언뜻선뜻 아리송한 나물이 있는데, '젊은이가 고것도 모르남?' 하는 투는 조금도 없습니다. 마치 어린아이한테 가르쳐 주듯 차분하게 알려줍니다.

1830년대의 미국인들은 젊은 조국에 대해 열등감을 지녔다. 그들은 유럽이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면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보면 안다. 이 순결한 나라를 상상해 보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밑에 덤불이 자라지 않는 숭고한 나무들, 순수한 강과 호수, 하지만 우리는 이 나라의 숲을 없애버렸다. 나무는 사람들의 적이었고, 땅을 개간하느라 거대한 뿌리와 밑동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에 자욱했다. 우리 국민은 받은 것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다.  (130쪽)

시장을 죽 둘러보니 봄나물을 이곳처럼 가지가지 늘어놓고 파는 데가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사고, 앞으로도 이 집에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묻습니다. "어떻게 주세요?" "한 근에 1500원씩이요." "음…." 무슨 나물을 할까 망설입니다. 쑥을 할까? 냉이를? 홑잎나물을? 그래도 이때 아니면 먹기 힘든 나물을 먹자는 생각으로, 진달래 한 근과 냉이 한 근, 취 천 원어치를 삽니다.

취나물은 천 원어치만 사는 데에도 거의 한 근만큼 담아 줍니다. 가만히 보면, 한 근어치 산 다른 나물도 말이 한 근이지, 아주머니가 저울도 안 달고 담아 주는 품새가 한 근 반이나 두 근쯤 될 듯.

.. 20∼30년 간 기른 화초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설레는 일이다 ..  (34쪽)

집으로 돌아와서 옆지기하고 나물무침으로 밥을 먹습니다. 큰 그릇에 된장을 비벼서 나물밥을 먹습니다. 취나물은 물에 씻어서 그냥 먹습니다. 물에 씻을 때 보니, 나물집 아주머니가 먼저 손질을 깔끔하게 해 두셨습니다. 흙도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문득, 한 근 천오백 원은 무척 싼값이 아니냐 싶습니다. 봄철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나물을, 하나하나 손질해서 파는데, 아주머니 품삯을 헤아리면 다만 500원이라도 더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 어머니와 오빠는 내가 중요한 일에 무관심하자 몹시 실망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 청년 연맹(상류 여성들의 사회봉사 단체)’과 ‘빈센트 클럽’을 심드렁해 했으니까. 보스턴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도 그렇고. 난 오로지 정원에서 일하고 소젖을 짜고 싶어했다 ..  (42쪽)

냠냠짭짭 맛나게 밥을 먹다가 또다른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주머니는 저한테 내내 높임말을 쓰셨습니다. 아주머니 나이를 헤아리면 저는 아들 뻘일 텐데, 아들도 맏아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쯤 될 텐데, 어쩌면 손주를 본 할머니일지 모르는데.

아주머니는 당신 나물집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한테 높임말을 쓰지 않았을까요. 또한, 나물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젊은내기한테도 높임말로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요. 그저 돈 몇 푼으로 사먹을 줄은 알아도 손수 들판이나 산으로 가서 뜯거나 캐어 먹을 줄 모르는 우리들 젊은내기를 안쓰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이나, 귀엽고 애틋하게 돌아보아주는 마음결은 아니었을까요.

.. 나는 개들을 제대로 먹이려고 무척 애를 쓴다. 깡통에 든 사료는 먹이지 않는다.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녀석들에게 집에서 만든 수프나 염소 고기를 먹이고, 마늘을 듬뿍 먹게 한다 ..  (56쪽)

나물밥시장에서 사 온 나물로 밥을 먹습니다. ⓒ 최종규


우리 집 둘레에는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골목마다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우리 동네 구멍가게는 열한 군데? 아니 큰길 건너편까지 치면 열다섯? 열일곱? 스물? 걸음이 닿는 데까지 치면 서른이나 마흔 군데가 넘습니다. 전철역 둘레까지 치면 쉰 군데도 넘고 예순 군데, 아니 백 군데까지 헤일 수 있을 만큼 아주 많습니다.

이 구멍가게는 말 그대로 ‘구멍 하나 낸 듯한’ 가게들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당신님들 사는 집에서 방 한 칸을 터서 만든 구멍가게로 보입니다. 달삯 받고 내어주는 그런 가게가 아니라, 조그맣게 꾸리면서 골목집 동네사람을 마주하며 장사하는 가게입니다. 골목골목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디 먼 데까지 가서 장만해 오기에는 멋쩍고 그때그때 써야 할 자잘한 물건을 갖추고 있는 가게입니다. 150원짜리 볼펜부터 귀후비개에 손톱깍이에 라면에 장기판과 바둑알에 100원짜리 소시지에 50원짜리 초콜릿과 알사탕을 갖춘 작은 가게.

며칠 앞서였습니다. 우리 동네 골목가게 가운데 한 곳에 찾아갑니다. 저는 이곳이 그다지 내키지 않아 발길을 끊고 있는데, 옆지기가 가 보자고 합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거든요. 그러면 옆지기 구경삼아 가야지 하고 들어갑니다. 들어갔으니 무어라도 하나 들고 나와야겠다 싶어서, 저는 막걸리 한 병을 고르기로 합니다. 냉장고를 열고 막걸리 한 병을 꺼내는데 유통기한이 두 주 지났습니다. 헉, 두 주나 지난 막걸리……. 꺼낸 막걸리를 집어넣고 옆엣것을 봅니다. 한 주 지난 막걸리입니다. 다른 막걸리 유통기한도 비슷비슷.

뒤에서 구멍가게 할머니가 부릅니다. “왜? 유통기한 지났어?”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거듭니다. “뭘, 젊은 사람들이 눈이 좋으니까 알아보지.”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를 치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유통기한이 두 주가 지난 막걸리라면 석 주 앞서 들여놓은 물건일 텐데, 맥주나 소주가 아닌 막걸리를 이렇게 두고 있다니. 한두 병도 아닌 모든 막걸리가.

.. 하지만 오래된 물건들을 지닌 것은 내가 소중히 다루기도 했고, 집안 어른들이 잘 간수한 덕분이다 …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 물레질, 뜨개질, 직조를 하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자급자족하고 싶고, 내가 쓰는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익히고 싶다 … 내 물레는 1700년대부터 집안에서 쓰던 것이라, 페달이 많이 닳아서 매끄럽다. 혹시 오래된 나무의 감촉을 좋아하지 않는지? 쇠처럼 차지 않고 손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난 하루에 한 시간씩 천을 짠다. 이런 일은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 우리는 선물을 다 직접 만들려고 애썼다. 뜨개질을 하고 종이상자를 꾸미고 나무를 깎아 엄마 거위와 아기 거위 네 마리를 만들었다 ..  (142∼158쪽)

제가 단골로 가는 구멍가게, 가장 자주 찾아가는 구멍가게에는 냉장고에 술이 하나도 없는 날이 있습니다. 이곳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늘 알맞춤하게 물건을 갖추어 놓기 때문에, 그날 따라 잘 팔려서 금세 동이 나는 물건이 있으면 더 팔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더 많은 물건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물건이 떨어져서 없으면 “오늘은 다 팔렸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하면서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다음 구멍가게로 갑니다. 다음 구멍가게에도 우리가 바라는 물건이 없으면 또다른 구멍가게로, 그 옆에 있는 구멍가게로, 또 그 구멍가게에서 스물이나 서른 걸음 떨어져 있는 구멍가게로 갑니다.

이 가운데 어느 집은 밤늦도록 불을 켜 놓기도 하지만, 웬만한 집들은 저녁 열 시나 열한 시면 문을 닫습니다. 더 일찍 닫는 집도 있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있는 그대로 동네사람을 만나고 동네장사를 합니다.

.. 바랄 나위 없이 삶이 만족스럽다. 개들, 염소들, 새들과 여기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다.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해 줄 이야기는 없다. 철학이 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 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그게 내 신조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을 ..  (174쪽)

어제는, 단골 구멍가게 할배 할매가 저녁을 자시고 있더군요. 집에 곁달린 구멍가게에 밥상을 차려놓고 두 분이 마주앉아서 저녁을 자시더군요. 그래서, 한 말씀 여쭈었습니다. “아이고, 저녁 드시는데, 사진 한 장 찍어야겠네요!”

저녁밥구멍가게 할배와 할매가 저녁을 먹습니다. ⓒ 최종규


 (2) 몸 냄새

오늘은 조금 나아졌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 집과 도서관을 잇는 계단에 담배 연기 자욱하고 냄새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도서관은 3층에 있고, 우리 집은 1957년에 지은 집이라 그때 문화를 보여주듯이 계단이 참 많습니다. 올라오는 계단짬에는 언제나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아래층에서 일하는 학습지 도매상 아저씨들이 담배를 태운 뒤 계단에 그냥 버려 놓습니다. 이걸 어찌할까 어쩌면 좋나 한참 생각한 끝에, 빈 깡통 하나 놓으면 될까 싶어서, 큼직한 참치깡통 하나를 놓았습니다. 계단짬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비질을 하여 깡통에 쓸어 넣습니다.

이렇게 하니 아래층 일꾼들이 계단짬에 꽁초 버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그래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담배를 태울 때 깡통 옆에서 태우곤 합니다. 이웃한 다른 가게 일꾼도 우리 계단으로 놀러와서 담배를 태웁니다. 아마, 당신네들 일하는 가게 임자가 담배 태우는 모습을 싫어하는가 봐요.

.. 저녁에 염소 우리에 내려가다가 날씨가 추워지리란 걸 깨달았다. 맨발로 걸으면, 땅의 냉기가 느껴져 다음날 날씨를 짐작할 수 있다 ..  (25쪽)

그런데 말이지요, 어제 아침에, 이 담배깡통에 불이 났습니다. 갑자기 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나 해서 들여다보니까, 누군가 불을 제대로 안 끄고 깡통에 넣어서, 그 안에 있던 종이컵이며 종이붙이(담배 태우는 이들이 버린 쓰레기)에 불이 옮겨 붙었더군요.

콜록콜록 재채기를 하면서 물을 부어서 불을 끕니다. 그러는 사이 담배 냄새가 제 몸에 배어듭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동안임에도 옷이며 몸이며 온통 담배 냄새가 …….

.. 내 삽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 본인의 창의력에 흠뻑 사로잡혀 계시는군요’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상업적인 화가고, 쭉 책 작업을 한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내 집에 늑대가 얼씬대지 못하게 하고, 구근도 넉넉히 사기 위해서! ..  (37쪽)

계단가 창문을 활짝 열고 여러 시간 있으나 냄새가 안 빠집니다. 오늘까지도 냄새는 다 빠지지 않습니다. 하긴, 불타며 나던 냄새가 빠진다 해도 새로새로 담배를 피우실 테니, 새로운 냄새가 자꾸자꾸 올라올 테지요.

아이고, 담배 냄새가 이리도 모진지, 이리도 오래 가는지, 이리도 안 빠지고 남는지 이번에 처음 압니다.

.. 난 항상 삽화의 가장자리에 나뭇가지나 리본, 꽃을 그린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가장자리를 꾸미지 않은 적도 없다. 사람들은 가장자리 그림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를 즐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나오기 때문일 터다. 젖소의 어느 쪽에서 젖이 나오는지, 말을 탈 때 어느 쪽으로 올라타야 하는지, 어떻게 건초더미를 만드는지 난 훤히 알고 있다. 그러니 적당히 짐작으로 그리지 않는다. 내 그림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내 손자들, 친구들이고, 주변 환경은 실제 내 환경이다. 꽃들은 내 정원이나 주변 들판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  (53쪽)

그러나, 우리 몸에 배어 있는 냄새는 담배 냄새만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 몸에는 술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 몸에는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과 운동선수한테는 땀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제가 충주에서 살던 때, 자전거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할라치면, 적잖은 사람들이 제 옆에 앉거나 서기를 싫어했어요. 몸에서 땀 냄새가 너무 난다고. 하루 대여섯 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몸은 아무리 씻고 씻어도 땀내가 빠지지 않습니다. 땀내를 자연스럽게 여기거나 좋아한다면 모르되, 요즘 사람들은 몸에서 땀내가 나도록 몸을 쓰는 일이 드물다 보니까, 이 냄새가 더없이 고약하거나 괴롭다고 느낄밖에 없구나 싶어요. 여름에는 춥게 살고 겨울에는 덥게 살잖아요. 자가용뿐 아니라 버스나 전철도 에어컨 바람이 얼마나 빵빵한가요. 요즘 도시사람한테는 땀흘릴 겨를이 없어요.

.. 정원을 가꾸면 헤아릴 수 없는 보상이 쏟아진다. 다이어트를 할 필요도 없다. 결혼할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가 아직도 맞고, 턱걸이도 할 수 있다. 평생 우울하거나 두통을 앓아 본 적도 없다 ..  (68쪽)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한테는 흙냄새와 거름냄새, 사무실에서 펜대 잡고 일하는 사람한테는 사무실 냄새와 펜 냄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기름 냄새가 납니다. 누구나 자기가 일하는 곳 냄새를 몸에 풍깁니다. 누구든 자기가 몸담은 곳 냄새가 몸에 스밉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하고 부모 삶을 몸에 받아들이듯, 우리들 어른도 우리가 깃든 곳 문화와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옳은 마음과 생각으로 옳은 일을 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저절로 옳고 아름다운 쪽으로 자리잡습니다. 우리가 얄궂은 마음과 생각으로 비뚤어진 일을 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비틀리고 뒤틀리고 구린내를 풍깁니다.

우리 생각에 따라, 우리 마음 가는 데에 따라, 우리 몸이 움직이는 데에 따라, 우리가 깃든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 냄새는 바뀝니다. 꼭 시골에서 산다고 하여 자연스러운 냄새가 가득하지 않아요.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라 해서 억지스럽거나 딱딱한 잿빛 냄새를 풍기지 않습니다.

.. 가을마다 배가 열리면 나는 병조림을 만든다. 시장에서 산 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 ..  (115쪽)

저는 충주 산골짝에 살 때부터 고무신을 신었습니다만, 도시인 인천에 와서도 고무신을 신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무신 값이 쌉니다. 한 켤레에 3000원이거든요. 그러나 값보다 좋은 대목은, 고무신을 신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한결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요. 바닥이 아주 얇으니, 제 발이 밟는 대로 땅 느낌을 받아들입니다. 시골에서는 흙 느낌을 받아들이고 도시에서는 아스팔트나 시멘트 느낌을 받아들입니다.

이러는 동안 제 몸부터 흙을 밟을 때 제 몸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밟을 때 제 몸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낍니다.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기를 때가 되면, 이 느낌이 고스란히 제 몸에 남아 있을 테니, 아이한테도 무엇을 가르치면 좋고, 무엇을 보여주면 좋으며, 무엇을 함께하며 살아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추스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동네 분식집초등학교 앞에 자리한 동네 분식집. 저녁이 되니 이제 가게문 닫고 들어가시려고 물건을 거의 다 치워 놓으셨습니다. 동네 가게를 찾아가면서, 동네 분들 삶도 가만히 느끼며 함께할 수 있어서, 편의점 나들이보다 훨씬 좋습니다. ⓒ 최종규


 (3) 사람이 살아가는 뿌리를 밝히는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우리 옛사람한테 물려받은 우리 나라 우리 땅 우리 바다 우리 하늘 우리 산과 들 우리 논밭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는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을 읊을 줄 알지만, 몸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고 느낀다면, 시화호와 새만금을 어찌 ‘죽음이 떠도는 바다’로 만들 생각을 하겠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왜 이리 자꾸 늘리려고만 하겠습니까. 전기를 덜 쓰면서 발전소를 줄일 수 있는 삶으로 바꿔야지요. 찻길이 모자라다고 외치지 말고, 찻길을 줄여서 우리 삶터를 고이 지켜야지요. 자동차를 만들어 팔아야 나라살림이 북돋울까요. 자동차 만드느라 더러워지는 이 나라 삶터는 얼마나 큰돈을 들여야 되살릴 수 있는데요. 아니, 더러워지고 무너진 자연 삶터는 돈으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다.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모든 것은 내게 만족감을 안겨 준다. 내 가정, 내 정원, 내 동물들, 날씨, 버몬트주 할 것 없이 모두 ..  (22쪽)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타샤 튜더 할머니 책을 봅니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서도 그렇지만, 금세 읽고 한 번 더 읽고, 두 번 다시 봅니다. 며칠 사이에 여러 번 다시 봅니다. 그러고도 아쉬워서 다시 한 번 더듬은 뒤, 이제야 책꽂이에 살며시 얹어놓습니다.

.. 조경 계획 같은 것은 없다. 난 계획해서 화초를 심지 않고, 되는대로 쑥쑥 심는다. 많은 꽃이 뒤섞여 자라는 게 좋다 … 뱀의 얼굴을 찬찬히 본 적이 있는지? 얼마나 낙천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다. 늘 배시시 웃고 있다 ..  (86쪽)

타샤 튜더 할머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당신은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살고픈 대로 자기 삶을 꾸리려고 하다 보면, 어느 누구도 돈을 갖다 앵기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니 그림을 그릴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할머님은 먹고살려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요, 당신이 남긴 이 책 《행복한 사람, 타샤 투더》를 읽어 보니까, 그저 당신 입만 채우는 먹고살기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는 삶을 꾸려 나가는 길’ 가운데 하나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골목길 걸상골목길마다 으레 놓여 있는 걸상들. 동네 할머님들은 낮 동안 이 걸상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가만히 들어 보면 이 말씀은 당신들이 온삶을 이어온 살가운 슬기가 담겨 있곤 합니다. 이야기주머니인 당신들입니다. ⓒ 최종규


밥은 밥이고 삶은 삶이면서 꿈은 꿈일까요. 밥을 놓을 수 없는 가운데 삶 한 자락을 다부지게 붙잡은 타샤 투더 할머님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품어 온 당신 꿈이 소록소록 묻어난 《행복한 사람, 타샤 투더》를 읽으면서, 또 책을 덮으면서, 할머님 목소리가 조곤조곤 들려옵니다. ‘네가 아무리 기쁘게 살더라도 그 기쁨이 너한테만 기쁨이라면 너한테도 기쁨이 아닐 수 있다, 네가 아무리 슬프게 살더라도 그 슬픔을 이웃과 나누면서 살 수 있다면 너한테는 슬픔이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가.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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