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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환갑 넘어도 버라이어티 할 겁니다"

[2008 예능스타 릴레이 인터뷰] 이경규

등록|2008.04.01 10:22 수정|2008.04.01 10:22
이경규는 한국 리얼리티 코미디의 현재 진행형 인물이다. 1981년 MBC <개그맨 콘테스트>로 데뷔한 그는 1985년 MBC <청춘 만만세>를 거쳐 1991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 카메라'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 이경규 ⓒ MBC

일반인을 상대로 한 미국의 '히든 카메라' 포맷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차용한 '몰래 카메라'는 신성하게만 여겨졌던 연예인들의 당황한 모습을 안방에 그대로 전달했다. 이후 그는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법을 지키는 이들에게 '양심 냉장고'를 선물하는 공익적 예능 프로그램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월드컵 경기의 뒷이야기들을 전달하는 또 다른 '이경규가 간다'를 보여주며 1인 버라이어티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성공작 뒤엔 실패작도 많았다. 영화 <복수혈전>은 실패를 두고두고 개그 소재로 쓰이는 빌미를 제공했고, 2005년 10월 정통 코미디에 도전한 MBC <웃는 데이>는 4개월 만에 막을 내리기도 했다. 2005년 <돌아온 몰래 카메라>는 이전보다 눈치 빨라진 연예인들 때문에 이전보다 커진 스케일과 구성에도 101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누리꾼들의 조어 '규라인'을 바탕으로 집단 버라이어티에 도전한 SBS <이경규·김용만의 라인업>은 폐지의 기로에 놓여있다.

MBC <일밤> '간다투어' 녹화를 위해 전라도 여수로 지난 21일 새벽 4시 30분에 떠난 이경규는 SBS <퀴즈! 육감대결> 2회분을 찍기 위해 서울로 복귀, 밤 12시가 되서야 녹화를 마쳤다. "맨 정신으로는 이 일 못해. 크크크"하고 웃으며 커피와 담배를 연신 번갈아 마시고 피던 그를 경기 고양시 탄현 SBS제작센터에서 만났다.

- 28년 코미디언 인생을 맞이했다.
"돌아보면 항상 아쉽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은 시장 자체가 채널도 많아지고 시청률 경쟁도 훨씬 치열해졌다. 프로그램 제작하는 것도 이전보다 많은 품을 요구한다. 옛날에는 2시간 녹화하면 끝났는데 이제는 이틀씩 걸리는 경우도 많아졌으니 말이다. 지금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라 야외에서 촬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과거 실내 촬영이 많았던 오락프로그램과 달리 난 89년부터 야외에서 뛰어 다녔다. 리얼로 말이다. 사실 <몰래카메라>가 리얼 버라이어티 시초 아닌가.(웃음)"

- 어릴 적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나.
"원래는 연극배우 되려고 했다. 어릴 때 꿈꿨던 것들은 영화도 만들고 방송도 하는 것이었는데 꿈은 다 이뤘다. 코미디언이 된 것은 대학교 다닐 때, 81년 6월 MBC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대학생들이 콘테스트를 도전하는 붐이 일었다. 친구들은 내가 웃기니까 나가 보라고 해서 나갔는데 그게 개그맨으로 가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 1998년 일본유학을 홀연히 떠났다.
"MBC <일밤> '이경규가 간다'에서 양심 냉장고를 전달하면서 이미지가 공익적으로 굳어져버렸다. 사람들이 사회 저명인사처럼 나를 생각하는 것을 느꼈을 때 '내가 웃기는 게 생명인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 것도 재충전 기회를 갖게 만든 것도 있었다. 그 때가 39살이었는데 '나도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본에 가보니 역시 코미디언들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오버하고 왕성하게 활동들을 하더라. 그래서 나도 계속 오버를 하고 있다."

- SBS <라인업>에 대한 애착이 큰 것으로 안다. 최근 언론을 통해서 폐지설이 나왔는데.
"<라인업>은 내가 총대를 메고 한 프로그램이라 애착이 크다. 경쟁상대(무한도전)가 너무 강력해서 묻혀 버렸다. 원래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는데 아쉽게도 시점이 한 발 늦었다. <라인업>도 마니아 층에서는 재미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폐지 얘기가 나와 솔직히 속상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실험도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 여한은 없다."

- 시청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작설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라인업>의 태안봉사활동 조작설, <몰래 카메라>의 출연 게스트와 사전 교감 등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인터넷이라는 공간 자체가 긁어서 부스럼 만드는 공간인 것 같다. 안 좋은 얘기라고 하면 익명으로 가장해 사람들이 달려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하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너무 심해지면 국민 정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남에 대한 비방은 본인을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많다."

- "내게 있어 영화는 꿈"이라고 했다. 왜 영화인가.
"사실 영화는 너무 어렵다. 돈도 많이 들어가고 꿈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 한편에 쏟아 붓는 에너지와 경제적 부담이 크다. 남들한테 얘기하기는 폼 나 보이지만 정말 당사자에는 힘든 분야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래도 왜 하느냐면 그냥 꿈이다. 그게 이유다. 앞으로 5, 6년 후에는 영화공부를 정식으로 하고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 시대에 맞아 떨어지는, 봉준호의 <괴물>처럼 아무도 하지 않은 소재를 갖고 국내에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다."

- 이경규하면 강호동을 빼놓을 수 없다. 강호동은 자신을 연예계로 데려 올 때 "네가 안 되면 옷을 벗겠다"는 말을 늘 소름 돋는다며 말을 하곤 한다.
"그 때 당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스포츠 선수들이 이미 연예계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 강호동이라는 씨름 선수를 연예계에 데려 오면 관심이 증폭될 것 같았다. 큰 확신이 있었다기보다는 단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동이 인기를 얻으니까 '야. 내가 트렌드를 읽었구나'하는 생각은 들었다."

▲ <전파견문록>을 진행할 당시의 이경규 ⓒ MBC

- 가장 애착이 갔던 프로그램은.

"MBC <전파 견문록>을 꼽고 싶다. <뽀뽀뽀>같은 프로그램을 빼고 당시에 어른들과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늘 새로운 것이 재미있고 하고 싶다. <이경규가 간다>, <몰래 카메라>는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 <전파 견문록>은 다시 못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애착이 간다. 참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떻게 극복하나.
"난 3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 프로그램도 3년마다 폐지와 신설을 반복해서 그렇다. (웃음) 히트작을 내놓기 전까지는 슬럼프를 겪게 된다. 89년부터 5, 6차례 겪었다고 보면 되겠다. 넘기가 힘들 때 그 때 어떤 PD를 만나느냐, 어떤 프로그램을 만나는가도 슬럼프 극복에 중요한 요소다. 시청자들에게 캐릭터가 알려져 있기 때문에 본인이 변화를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강)호동이도 (유)재석이도 다 위기가 찾아온다. 결국 본인 스스로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철학은.
"신구조화를 이뤄야 프로그램의 생명력도 길어진다고 본다. 온가족이 보는 프로그램이 돼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마니아만 보는 프로그램은 생명이 그리 길지가 않다. <전국노래자랑>을 봐라. 온가족이 보지 않나. 자극성이 없고 행복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자극적이어서 성공할 것 같았으면 케이블TV가 벌써 지상파방송을 이겨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TV가 전 세대를 불문하고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되는 것은 '따뜻함이 살아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 이경규의 버라이어티 꿈은.
"천장이 없는 야외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최장수로 뛰는, 그래서 환갑을 넘겨서도 프로그램을 계속 하고 싶다. 힘이 들어서 프로그램을 못한다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디어가 없어서 못하겠다는 것은 용납될지 몰라도 말이다. 체력이 다하는 그 날까지 야외에서 뛰어다니고 오버할 것이다. 최장수로 예능계에 남아서 후배들이 봐도 '야! 저 형님 환갑이 넘었는데도 버라이어티를 하네'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런 희망을 후배들에게 주고 싶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행복은 이런 곳에 있지 않을까."

- PD들에게 하고픈 말은.
"너무 시청률에 일희일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시청률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재밌고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계속 끌고 나갔으면 한다. 시청률에 얽매이는 것이 안타깝다. 뉴스는 시청률 떨어진다고 없앤다는 얘기 안하지 않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PD저널'(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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