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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날에도 '기름과의 전쟁'을 했습니다

등록|2008.04.01 14:35 수정|2008.04.01 14:35

모항항 작업 시작태안성당 '기름제거 자원봉사자 지원본부'는 3월 15일부터 소원면 모항리 모항항으로 자리를 옮겨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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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기름 냄새나는 해변에서 생활한 세월이 달수로 벌써 넉 달을 넘기고 다섯 달째로 접어들었다. 해변 '기름과의 전쟁'이 이제는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자원봉사자 수가 많이 줄어서, 태안성당을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작업 현장을 총괄하는 나도  바다에 가지 않고 쉬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주초인 어제(3월 31일)도 집에서 쉬었다. 오전에는 글도 좀 썼고, 오후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2시간 동안 걷기 운동도 했다. 모든 일상이 거의 망가진 상태로 여러 달을 생활하다가 모처럼 만에 낮에 집에서 글도 쓰고 걷기 운동도 하니 색다른 감회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설핏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오늘(1일)도 집에 머물고 있다. 오늘 화요일은 태안성당 '기름제거 자원봉사자 지원본부' 요원들 모두 쉬는 날이다. 지난 2월 설 연휴를 지낸 다음부터 우리는 매주 화요일을 휴무 날로 정했다. 자원봉사 신청 접수를 할 때 화요일은 비키기로 했다. 그 덕에 매주 하루씩, 화요일은 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쉬는 날인 화요일은 더 바빴다. 밀려 있는 소소한 일들이며, 해미성지 물긷기 공사며, 이런저런 일로 집에 차분히 앉아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집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오전 시간이 확보되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치르는 행사인 해미성지 물긷기 공사도 내일로 미루었다. 종전에는 수요일 행사였는데, 기름유출 사고 이후로는 정해진 요일이 없는 행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화요일 휴무'가 정해진 다음부터는 화요일 행사가 되었는데, 이번 주는 원래의 수요일에 그 일을 하기로 했다. 내일 수요일에도 자원봉사 신청 접수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목요일부터 주말까지는 작업 계획이 잡혀 있다.

이처럼 태안반도 해변의 기름방제작업은 상당 부분 소강 국면이다. 천주교 신자들 쪽으로는 4월에도 자원봉사 신청 건수가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있긴 하지만, 지난 3월까지의 상황과 견주면 4월은 아무래도 하프타임 성격이 될 것 같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예견해왔다. 더불어 내 나름대로 방제작업 양상을 네 가지 단계로 구분 짓고, 그것을 자원봉사자들에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작업 요령을 잘 설명해 주자면 그것도 필요한 항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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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초기 3∼40cm 두께로 밀려온 기름을 양동이로 퍼낸 일은 1단계 작업이었다. 제방과 갯바위며 크고 작은 돌들에 덮여 있는 기름을 걸레나 흡착포로 닦아내는 일은 2단계 작업이었다.

3단계 작업은 갯바닥이나 자갈밭을 포크레인이나 삽으로 파헤치고 땅 속으로 스며든 기름을 색출해 내는 일이다. 4단계 작업은 고압세척기를 사용하여 제방 돌 틈이나 갯바위 구석구석에 파고든 기름을 잡아내는 일이다.

이 4단계 작업에는 물을 100℃ 정도 끓여서 사용하는 고온 세척기도 필요하고, 조약돌들을 끓는 물 속에 넣어 삶아내는 방법도 동원된다. 고온 세척기는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제방이나 갯바위의 기름으로 코팅이 된 부분들에도 상당히 유효하다.

유전발굴지난달 16일 자원봉사에 참여한 서울 수유1동 성당 신자들이 '유전발굴을 축하한다'는 태안성당 총회장의 말에 기뻐하고 있다. ⓒ 지요하

현재는 2, 3, 4단계 작업이 동시적으로 진행된다. 굴착기가 파헤친 곳곳의 웅덩이는 곧잘 '유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 요령을 설명할 때 '유전발굴식 작업'이라는 용어도 입에 올린다.

"오늘 운이 좋은 성당은 유전을 발굴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을 발굴하는 성당에는 천주교 신자 작업 현장을 총괄하는 태안성당 총회장인 제가 책임지고 채굴권을 드립니다. 무상으로 드리는 채굴권을 꼭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성당은 오늘부터 부자가 됩니다."

이 같은 농담을 하기도 한다. 굴착기로 파헤친 웅덩이나 도랑에서 기름이 보이면 봉사자들은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다가 주변에 붓는다. 그러면 웅덩이나 도랑 안의 물에 검은 기름이 뜨게 된다. 물에 뜬 기름을 잡아내는데는 흡착포가 유리하다. 흡착포는 한번 붙잡은 기름을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흡착포는 새카맣게 될 때까지 여러 번 사용할 필요가 있다.

돌이나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는데는 걸레가 유리하지만 걸레는 물에 젖으면 기름이 분리되므로, 사용한 걸레는 반드시 자루에 담아 가지고 나와야 한다. 물론 내가 매번 강조하는 사항이다.

2단계 작업이 거의 종료된 시점에서, 그동안 유전발굴식 작업으로 재미를 본 이들이 꽤 많다.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일부 해변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해변들이 표면적으로는 깨끗하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기름은 이제 거의 없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실망(?)을 하는 이들도 있고, 작업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 유전을 발굴한 듯한 상황도 종종 생겨나니,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묘한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아무튼 이런 작업 상황으로 해서 4월은 다소간 소강 국면이 될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일러 '하프타임 성격'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하지만 5월로 접어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바다 수온이 25℃ 이상으로 올라가면 제방의 돌 틈이나 일명 '삼발이'라고 하는 제방 시멘트 구조물 구석구석으로 깊숙이 파고든 기름들이 녹아서 흘러나오게 된다. 

재난 초기 막대한 유화제를 살포하여 바다 밑으로 가라앉힌 기름도 있다. 사실은 많은 양의 기름이 가라앉았지만 잠수부들의 조사 결과로는 바다 밑에 많은 기름이 남아 있지는 않다고 한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물살이 빠른 관계로 많은 양의 기름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바다 밑의 깊은 골짜기들에 남아 있는 기름들이 5월부터는 수면으로 떠오르리라고 한다. 바다 수온 상승에 의해 바다 밑과 해변 구석에 은거해 있던 기름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을 처리하는 일을 일러 나는 후반전이라고 부른다. 그 후반전은 6월말까지 진행될 전망이다.

유전발굴지난달 27일 작업에 참여한 대전 문창동 성당 신자들이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웅덩이에서 기름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지요하

그 후반전을 6월말까지 잘 치르면 우리 지역의 해수욕장들은 7월에 개장을 할 수 있다. 전반적인 생태계 복원이야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충분히 대폭 단축시킬 수 있다), 해수욕장들만이라도 올 7월에 개장을 해야 지역경제가 숨통을 틀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간절히 바라고 고대한다.

지난 겨우내 태안의 바다를 찾아 추위와 싸우며 기름을 닦아주신 전국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가족과 함께 여름에는 태안의 해수욕장들을 찾아주실 것으로 믿는다. 여름바다에 많은 피서객들의 살 기운이 퍼져야 전반적인 생태계 복원이 앞당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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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태안성당을 통해 기름방제 자원봉사에 참여한 천주교 신자 수가 3만 명을 훨씬 넘었다. 전체 자원봉사자 100만 명을 돌파하던 지난 2월 21일,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 수는 2만3581명이었다. 그 후의 봉사자 수와 태안성당 봉사 팀의 연인원을 합하면 3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일반 사회단체라든가 직장 등, 다른 갈래로 자원봉사에 참여하신 분들은 부지기수일 테지만, 태안성당을 통해 확실한 천주교 이름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하신 분들이 3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에서 보람과 함께 큰 위안을 얻는다.

태안성당은 재난지역 성당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이 크지만(전체 신자 2500명 중에서 직간접 피해자가 500명이 넘는다), 새 성전건축 완공 시기에 재난을 만나게 되어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기름재난 덕분(?)에 태안성당은 단기간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다녀간 성당이 되었다. 전국의 모든 신자들 가운데 태안성당을 모르는 신자는 한 분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전발굴소원면 법산리와 송현리 주민들은 지난달 27일 포크레인이 파지 못하는 곳을 삽으로 파서 '유전'을 발굴했다. ⓒ 지요하

지난달 30일(부활 제2주일)에도 전국의 여러 성당에서 900여 명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이중에는 대전가톨릭대학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총장 신부님과 14분의 교수 신부님들, 200명이 넘는 신학생들이 포함되어 있다.

태안 해변 '기름과의 전쟁'에 참여한 성당들 외로 수도회를 비롯한 가톨릭 기관과 단체들이 무척 많지만, 한 개 신학대학교의 전체 교직원과 신학생들이 왕창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치 대전가톨릭대학교를 태안성당과 소원면 모항리 모항항으로 옮겨놓은 듯한 형국이었다.

김종수 총장 신부님은 1990년대 중반 해미성당에 계실 때부터 나를 반가워해 주시는 분이시고, 김한승 라파엘 교무처장/대학원장 신부님은 우리 태안 본당 출신 제1호 사제이신 분이다. 또 황용연 바오로예례미아 사회복지과장 신부님은 교구교회 차원에서 북한동포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일에 앞장을 서시는 분으로 내가 매월 일정 금액을 보내드리는 분이고, 이대근 론지노 동양철학과장 신부님은 한때 대전가톨릭문우회 담당 사제로 나와 친숙한 분이다.

그런데 나는 방제복을 입으신 총장 신부님과 교수 신부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방제복을 입은 채로 땅바닥에 둘러앉아 떡국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도, 신학생들과 함께 하는 작업 장면도, 또 작업을 마친 신부님들과 한동안 담소를 나누면서도 뭐 한가지도 카메라에 담아놓는 일을 하지 못했다.

조끼 주머니에 디지털 카메라를 잘 모셔놓고 있으면서도, 그걸 완벽하게 잊어먹었다. 왜 그렇게 오래도록 카메라를 생각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신부님들과 신학생들 모두 버스에 올라 마지막으로 작업 현장을 떠날 때 일일이 손 흔들어 배웅해 드리는 일을 마치고 났을 때서야 카메라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심정이었다. 어처구니없고 한심스러운 가운데서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니 나도 이제 늙었구나!'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에 스스로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늙었구나!'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나는 엊그제 환갑을 먹었다. 지난달 30일은 음력 2월 23일로 내 환갑날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주일 아침미사에 참례하고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환갑축하연지난달 30일 환갑날에도 현장 근무를 하고 성당으로 돌아오니, 신부님과 재난봉사본부 요원들이 환갑축하연을 베풀어주었다.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 지요하

그리고 오전 9시쯤 바다로 출근(?)해서 오후 4시까지 해변 방제작업 현장에 머물렀다. 총회장으로서 주일에는 성당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도 많이 듣지만, 전국에서 900명 이상의 신자들이 오시는 날이니, 성당에 있을 수가 없었다.

환갑날을 고스란히 기름냄새 속에서 지내고 오후 4시 30분 성당으로 돌아오니, 재난봉사본부 요원들이 전원 성당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관 지하식당에서는 여러 자매들이 바삐 손을 놀리고 있었다. 재난봉사본부 요원들이 비용을 추렴하여 내게 환갑축하연을 베풀어주려는 까닭이었다.

그날 저녁 참으로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신부님과 수녀님들, 재난봉사본부 요원들 모두 내 환갑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하 잔치를 풍성하게 베풀어주었다. 이때는 카메라 생각을 했지만, 내 카메라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 성당 사무장님이 성능이 더 좋은 카메라로 사진 촬영을 전담해 주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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